최근 주요 식품·유통 기업들이 수요 예측부터 고객 응대, 콘텐츠 제작, 물류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쳐 AI를 도입하며 사업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서비스를 잇달아 도입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속도에만 치중한 ‘AI 퍼스트’ 전략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는 분위기다./일러스트=연합뉴스
[인더스트리뉴스 서영길 기자] 소비자가 검색창 대신 대화로 상품을 고르는 흐름이 빠르게 현실화되면서 식품·유통업계의 경쟁 구도가 재편되고 있다.
다만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서비스를 잇달아 도입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속도에만 치중한 ‘AI 퍼스트’ 전략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는 분위기다.
16일 식품‧유통업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최근 수요 예측부터 고객 응대, 콘텐츠 제작, 물류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쳐 AI를 도입하며 사업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업계 간 경쟁 구도는 이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운영 효율 제고 및 개인화 서비스 중심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흐름이다.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고객 접점을 어디서, 어떻게 선점하느냐가 사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방향은 소비 방식 자체를 흔들고 있다. 온라인 쇼핑의 기본 경로였던 ‘검색-비교-구매’ 구조는 약해지고 AI가 소비자의 의도를 해석해 상품을 제안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제로 클릭’ 환경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기업 움직임도 최근의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롯데웰푸드는 최근 챗GPT 기반 자사몰 서비스를 전용 앱 형태로 선보였다. 이용자가 자연어로 질문을 던지면 제품 추천부터 구매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단순한 온라인몰 확장이 아니라, ‘추천 주도형 커머스’로의 전환을 시도한 사례로 꼽힌다.
같은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하이마트 역시 최근 AI 쇼핑 에이전트 '하비'의 오픈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다. 하비는 AI 기반 쇼핑 서비스로 고객이 검색어를 입력하는 대신 사람과 대화하듯 질문하면 원하는 상품을 찾아주고 비교, 추천까지 지원한다.
아모레퍼시픽도 유사한 방향을 택했다. 챗GPT 기반 ‘아모레몰’ 앱을 통해 피부 타입, 사용 목적 등을 대화로 입력하면 제품 추천과 성분 비교가 동시에 이뤄진다. 아직은 탐색 단계에 가깝지만 결제와 배송까지 연결되면 기존 쇼핑 흐름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롯데하이마트가 지난 2일부터 AI 쇼핑 에이전트 '하비'를 도입했다./사진=롯데하이마트
대형 유통사들은 플랫폼과 인프라 양쪽을 동시에 건드리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신세계그룹이다. 신세계그룹은 글로벌 AI 기업과 협업을 확대하며 쇼핑 전 과정을 하나로 묶는 구조를 구상 중이다.
이마트 앱에는 연내 ‘AI 쇼핑 에이전트’ 기능이 도입될 예정인데, 구매 이력 기반 추천을 넘어 오프라인 방문 시 주차 등록까지 자동 처리하는 기능이 포함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를 줄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울러 현대백화점, CJ올리브영, 무신사 등도 카카오톡 기반 AI 추천 서비스에 참여하며 고객 유입 경로를 넓히는 상황이다. CJ올리브영은 내부적으로 생성형 AI를 도입해 상품기획과 마케팅 업무 일부를 자동화했다. 반복 업무를 줄이는 대신 기획과 판단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이마트와 GS리테일의 경우는 판매 데이터와 고객 동선을 결합해 상품 배치와 재고 운영을 조정하고 있다. 수요 예측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고, 배송 경로 역시 효율화되는 구조다. 비용 절감과 운영 안정성을 동시에 겨냥한 접근이다.
고객 접점에서의 변화는 더 직관적이다. 11번가는 AI 캐릭터를 활용한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실시간 응답 기능을 강화했고, 이디야커피는 생성형 AI 상담원을 도입해 문의 대응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했다. 오아시스마켓 역시 환불과 보상까지 자동으로 제안하는 AI 비서를 운영하며, 고객 응대 방식을 능동형으로 바꾸고 있다.
‘AI 퍼스트’의 역설…연구는 나몰라라 너도나도 ‘속도전’만
다만 이런 흐름이 곧바로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이들 기업의 AI 도입 속도가 AI에 대한 연구‧개발보다 앞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속도전에만 매몰돼 정작 AI를 어떻게 자사에 맞게 내재화할지 전략적 설계에는 소홀했다는 얘기다.
AI가 ‘필수 장비’처럼 인식되면서 데이터 정비나 운영 체계 개편 없이 무턱대고 AI 서비스를 먼저 붙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만들어 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매몰 비용’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외부 플랫폼 의존도도 변수다. 현재 상당수 기업이 챗GPT 등 빅테크 플랫폼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는데, 이는 AI로의 빠른 진입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고객 데이터와 접점이 외부 기업에 쌓이는 구조를 낳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핵심 자산을 스스로 축적하지 못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로 지적된다.
특히 AI 도입 성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물류와 매장, 고객과 상품 데이터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현실에서는 서비스 단위로 쪼개진 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상태에서는 투자 대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챗GPT와의 자연어 대화를 통해 롯데웰푸드 앱을 실행한 모습./사진=롯데웰푸드
조직 내부의 준비도도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AI 기반 의사결정으로 전환하려면 데이터 품질 관리뿐 아니라 이를 위한 인력 재교육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지만 단기 성과 압박 속에서 이런 작업은 후순위로 밀렸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AI는 유통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다. 다만 속도에만 기대어 방향성 없이 확장만 될 경우 혁신이 아니라 비용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결국 승부는 ‘얼마나 빨리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했느냐’에서 갈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AI 도입 경쟁이 본격화된 지금, 식품‧유통업계의 승패는 기술 도입의 속도가 아니라 데이터와 조직, 서비스 전반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엮어낼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AI 퍼스트’ 전략 역시 이제는 양보다 질을 따지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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