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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AI 물결에도 손 놓은 대학 커리큘럼 [지금, 대학을 묻다]

'벚꽃 피는 시기로 망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의 대학은 위기다. 상아탑의 권위를 지키면서도 변화한 사회에 맞는 인재 배출에도 충실한 새로운 대학의 좌표를 전문가 칼럼 형식으로 제시한다.

AI 물결에도 손 놓은 대학 커리큘럼 [지금, 대학을 묻다]

편집자주

'벚꽃 피는 시기로 망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의 대학은 위기다. 상아탑의 권위를 지키면서도 변화한 사회에 맞는 인재 배출에도 충실한 새로운 대학의 좌표를 전문가 칼럼 형식으로 제시한다.

경남대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기반의 자율 제조 시스템이 구현되는 모습을 담은 영상. AI가 공장 장비의 상태를 제어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인공지능(AI)이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다. 학생들이 AI를 이용해 논문을 쓰거나 시험답안을 만들어 제출했다가 적발되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시장에서는 AI 때문에 대졸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프로그래머, 회계사, 변호사, 의사 등 많은 전문직 일자리가 AI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걱정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언론과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 각 산업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이 늘어난다고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그의 걱정과 달리 미국의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 늘어나 왔다. 사실 18세기 말의 1차 산업혁명부터 최근의 4차 산업혁명까지 기술발전은 오히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

예를 들어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도입되었을 때도 은행 직원수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현금을 세고 관리하는 업무가 줄어드는 대신 금융상품 판매업무, 복잡한 고객서비스업무, 전산기술 관련 업무 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비용이 줄어들면서 지점을 더 많이 개설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에 자동차가 대중화되었을 때 마차를 끄는 마부의 숫자는 급격히 줄었지만 자동차 운전기사라는 새 직업이 생긴 것과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AI는 기존의 기술과 다른 매우 혁신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자리 총량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줄어드는 일자리가 일부 있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나타날 것이다. 기술혁신은 생산성 향상과 소득 증가를 낳고, 소득 증가는 수요 증가와 일자리 증가를 낳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몇 차례의 산업혁명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AI가 일자리 총량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AI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일자리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라 하는데,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임금도 올라가고 있다. 화이트칼라 일자리 가운데 고객서비스 업무나 행정지원 업무는 줄어들고 있지만 보다 복잡한 지적능력이 필요한 업무는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진보는 일자리 총량보다 구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직업별 취업자 추이를 살펴보면, 임금이 높은 화이트칼라 직종인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의 일자리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3.9% 늘어났고 '사무 종사자'의 일자리도 1.9% 늘어났다. 전체 일자리가 1.5% 늘어났던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높은 증가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대졸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1960년대 미국 우주항공청(NASA·나사)에서 일하던 인간 계산원들이 컴퓨터 등장에 맞추어 스스로 포트란(FORTRAN) 프로그래머로 변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AI 시대를 맞아 대학들은 이처럼 교육내용과 교육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대학들이 보여준 혁신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정부가 등을 떠미니까 성과가 불분명한 노력을 억지로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감이 부족해 보인다. 그 피해는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고영선 한국교육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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