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도 여전히 인문학적 독서가 필요...인간은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기술을 이끄는 존재로 남아남아야
[윤영호 칼럼] 교육 현장에서 드러난 독서에 관한 조사수치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경고에 가깝다. 진학사가 고등학생 1,1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독서습관 및 문해력’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6%가 10분 이상 글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글을 읽다 모르는 단어 때문에 문맥 파악에 자주 실패한다는 학생도 40%에 달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일주일 동안 교과서나 문제집 외의 책은 단 한 권도 접하지 않는 학생이 52%로 절반을 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지금 이 시간에도 개선되지 않고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의 원인은 분명하다. 생성형 AI에 의존해 손쉽게 답을 얻는 학습습관, 그리고 유튜브 쇼츠·틱톡·인스타그램 같은 ‘숏폼 콘텐츠’에 길들여진 인지 구조다. 1분 내외의 짧고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진 뇌는 긴 호흡의 텍스트를 버텨내지 못한다.
즉각적인 재미와 보상에 길들여진 결과, 인내를 요구하는 독서는 ‘비효율’로 인식된다. 검색 한 번으로 답을 얻는 습관은 사고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고, 이는 곧 문해력의 구조적 붕괴로 이어진다. 이것은 단순한 독서량 감소가 아니라 ‘깊이 읽기 능력’의 퇴화다
지식이 클릭 한 번으로 복제되는 시대에, 애써 독서할 의욕이 상실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듯싶다. 그래서 고전적인 종이책이 더욱 외면되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의 환호 뒤에 도사린 혼란스러운 가치 정체성
생성형 AI가 과제와 보고서를 대신 써주고, 질문을 던지면 즉각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신속성과 편리성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느린 독서보다 빠른 AI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의 환호 뒤에 도사린 혼란스러운 가치 정체성은 어두운 현실 그 자체다.
전통적으로 교육은 지식의 위계질서 위에 서 있었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였고, 학생은 그 지식을 습득하여 내면화 하는 수혜자였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보급은 이 견고한 피라미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관찰되는 ‘U자형 심리 곡선(U-shaped Psychological Curve)’은 AI 시대를 맞이한 교육자와 학습자들이 겪는 실존적 당혹감을 대변한다. AI가 익숙해질수록 편안함을 느끼다가, 더 능숙해질수록 오히려 불안이 커지는 역설이다.
AI 도입 초기, 교사와 학생은 자동 채점과 맞춤형 학습에 열광했다. 그러나 곧 과제 대필과 사고력 퇴행 문제가 불거졌다. AI가 완성도 높은 답을 써낼수록 교사는 “나는 무엇을 가르치는 존재인가”를 묻게 된다. 지식의 피라미드가 무너진 자리에, 존재 이유를 묻는 공허가 교육의 방향을 흔들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에단 몰릭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중앙값의 실종’과 ‘인지적 외주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도 AI의 도움으로 평균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만, 스스로 사고하고 논리를 구축하는 능력은 오히려 약화된다. 평균은 사라지고, 최상위와 저숙련만 남는 구조적 양극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분석·요약·판단을 AI에 맡기면서 사고력 자체가 퇴화
‘인지적 외주화’는 더 근본적인 문제다. 인간이 감당해야 할 사고의 과정을 AI에 통째로 맡기는 현상이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며 길 찾기 능력을 잃어 ‘길 치’가 되는 것처럼, 분석·요약·판단을 AI에 맡기면서 사고력 자체가 퇴화한다. 학생이 AI가 작성한 답안을 그대로 제출할 때, 결과물은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다. 지식이 아니라 ‘흔적 없는 통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다시 독서인가.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다. 그것은 맥락을 축적하는 행위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인간 사유의 지층을 통과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어떤 판단이 옳은지 가늠할 기준을 갖게 된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문장을 생성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은 인간 내부의 ‘사유의 축적’에서 나온다.
AI시대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사유 훈련의 장’ 본 기능을 상실해서는 안된다.
첫째, 인간의 정체성을 묻는 독서가 필요하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둘째, 기술과 윤리의 경계에서 비판적 사고를 단련해야 한다. 효율과 정의가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셋째, 거시적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기술이 집중되는 시대일수록 인간 내면의 주도권이 중요해진다. 그 힘은 결국 독서를 통해 길러진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정답 제공’이 아니라 ‘질문 생성'
그러나 독서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질문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출처를 묻고, 맥락을 재구성하며, 가치 판단을 내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 이 네 가지 질문은 ‘지적 주도권’을 회복하는 핵심 도구다. AI의 답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순간 인간은 다시 사고의 주체가 된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정답 제공’이 아니라 ‘질문 생성’이다. 빠르게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깊이 묻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종이책을 넘기며 천천히 사유하는 시간은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느림이 사고의 밀도를 만든다.
AI는 강력한 엔진이다. 그러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다. 더 깊은 사유다. 독서를 통해 질문이 살아나는 교실, 그곳에서 인간은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기술을 이끄는 존재로 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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