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9000피 블랙홀’ 갇힌 가상자산…韓 거래대금 90% ‘증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깊은 침체에 빠졌다. 투자자들의 자금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국내 증시로 이동하면서 거래 규모가 급감한 탓이다.

‘9000피 블랙홀’ 갇힌 가상자산…韓 거래대금 90% ‘증발’

고점 대비 80% 넘게 줄어든 거래대금

국내 증시 강세에 투자자 자금 대거 이동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깊은 침체에 빠졌다. 투자자들의 자금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국내 증시로 이동하면서 거래 규모가 급감한 탓이다. 비트코인의 제도권 편입 이후 증시와의 경쟁이 본격화한 데다 금리와 규제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시장에서는 거래량 회복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1일 코인게코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총거래량은 12억1482만달러(약 1조7000억원)로 집계됐다. 올해 최고치를 기록한 2월 6일 78억8400만달러와 비교해 80% 이상 감소했다. 가상자산 투자자 수가 1825만명,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12억1982만달러(17조2000억원)를 기록했던 2024년 12월 말과 비교하면 현재 국내 시장의 거래 규모는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각각 65조3318억원, 10조6501억원이다. 양대 증시 거래대금은 75조9819억원으로 가상자산 시장과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자금 이동은 증시 상품의 다양화와 수익률 격차 때문이다. 특히 지난 5월 말 상장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가상자산 시장의 초단타 투자 수요를 흡수했다. 이들 상품은 상장 직후 일평균 매매 회전율이 120%를 돌파하는 등 높은 유동성을 보이며 변동성 선호 자금을 끌어모았다. 한 시장 관계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 자금 쏠림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이후 나타난 비트코인의 특성 변화도 자금 이탈 요인으로 꼽힌다. 현물 ETF 출시 당시에는 기관투자자 자금이 대거 유입되며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이끌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ETF를 통한 자금 유출이 시장 약세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타이거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는 23억달러(약 3조5000억원)가 넘는 자금이 빠져나가며 올해 들어 월간 기준 최대 이탈 규모를 기록했다. 안광호 타이거리서치 연구원은 "지난해까지는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로 기관 자금이 유입되며 시장에 호재로 작용했지만, 올해는 기관이 자금 이탈을 주도하고 있다"며 "가격 하락 과정에서 가상자산 선물시장의 레버리지 포지션 청산까지 겹치면서 낙폭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량 회복은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점도표를 통해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공식 시사한 데다, 한국은행 역시 매파적 기조를 이어가고 있어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상자산 규제 체계를 명확히 하는 미국 '클래리티(CLARITY) 법안'의 처리 여부도 주요 변수다. 이 법안은 가상자산의 증권·상품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하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관할을 구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법안은 현재 미국 하원 통과 이후 상원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어 최종 입법까지는 추가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법안 처리가 지연될 경우 규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기관 자금 유입 속도가 더 둔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외 주식시장이 강세를 이어가면서 상대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 매력도가 낮아진 상황"이라며 "반도체와 AI 등 증시 주도주의 랠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가상자산 유동성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pjw19786@dt.co.kr

비트코인 일러스트레이션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