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근거, 녹색·전환금융비율 제시없는 ‘깜깜이’...숫자만 있고 설명은 부족
‘녹색’ 라벨만 슬쩍...탄소중립기본계획 예산사업도 태반이 기존사업 재탕
산업투자와 에너지전환 불균형...화석연료가 신규 실행액 재생에너지 압도
선언적 구호 넘어, 탄소중립에 어떻게 기여하는지...구체적 방향 전제돼야
환경부가 녹색금융 분류체계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 = 픽사베이
지난 2월 25일, 정부는 ‘기후금융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기후금융을 양적으로 확대하면서 전환금융을 도입하겠다는 것으로, 2035년까지 총 790조 원 규모로 기후분야 정책금융을 늘리겠다고 한다.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높게 설정된 만큼, 2024년 발표한 2030년까지 420조 원 투입 계획으로는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790조 원이라는 금액은 보통이 아니다. 정부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큰 숫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올해 대한민국 예산 총액이 729조 원이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5년 간 국내에 투자하겠다는 돈이 450조 원이다. 압도적인 숫자인 만큼 대번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왜 790조 원인가? 어디에 어떻게 쓴다는 것인가? 어떤 방식의 금융인가? 어느 분야에 쓰겠다는 것인가? 누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공급하는가?
정부의 발표는 알려주는 것이 별로 없다. 연도별 총액만 개략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추계 근거도, 투입 업종도, 기업도, 프로젝트도, 투자형태도, 녹색금융과 전환금융의 비율도, 어떤 기준으로 자금이 제공되는지, 단순한 총액인지 내역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다
.
민간 투자도 아닌 공적 자원의 배분에 해당하는 정책금융의 규모라는 점에서 이는 문제적이다. 정부의 예산안이 이런 식으로 발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 50조 원 정책금융, 어디에 쓰였나?
돌이켜보면
2024년 420조 원 규모 기후금융 발표 때도 그랬다. 숫자가 앞섰고 설명은 부족
했다. 그나마 그 때는 처음으로 금융당국이 기후분야에 대규모 정책금융 확대를 천명했다는 의의가 있었다. ‘미래에너지펀드’와 ‘기후기술펀드’의 설립안과 재생에너지 투자 추계와 같은 의미있는 근거 자료들이 제시되기라도 했다.
2년이 지난 이 시점에
‘업그레이드 버전’을 발표한다고 하면, 마땅히 이전 계획의 분석과 평가에 기반해야
한다. 소위 ‘420조 원 투입 계획’에 따라 2024~2025년간 투입되었다고 하는 연 50조 원의 녹색금융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기후대응과 관련하여 무슨 성과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최소한 제시해줘야 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50조 원이라는 정책금융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하는 수준이다. 통상 탄소중립을 위한 인프라 투자 규모를 연간 GDP의 5% 내외로 잡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의 40%에 해당하는 막대한 투자다. 여기에 대한 분석을 생략하고 기후금융의 미래를 논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몇몇 우려가 자연스럽게 따라나온다. 지나치게 높아 보이는 공급액은 어차피 했을 정책금융 지원에 ‘녹색’이라는 라벨을 슬쩍 붙였기 때문일 수 있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의 예산사업도 태반이 기존사업의 재탕이었다. 특정 대기업이나 배터리 같은 일부 업종에만 자금이 집중되었을 수도 있고, 액화천연가스(LNG)나 그레이수소 같은 화석연료 투자 사업이 상당 수준 포함됐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숫자만이 아닌, 의미와 내용을 제공하라
이번 발표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천편일률적이다. 단편적 정보만 알려주면서 그 내용과 의미를 말해 주지 않는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드물다. 이는 정부의 의도일 수 있다. 790조 원이라는 숫자로 의지를 과시하면서도, 설명 의무는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다.
정보공개청구나 공개자료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알려져 있는 기후분야 정책금융의 현황에 근거할 때,
기존의 관성에 따라 양적 확대만 도모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아
보인다. 정책금융 내 산업 투자와 에너지전환 사이의 불균형이 매우 크다. 공적금융의 화석연료 신규 실행액이 재생에너지를 압도하는 현실이다.
대부분의 기후금융을 LNG에 투입하는 기관도 있다. 규모만큼이나 ‘어디에’, ‘어떻게’, ‘왜’가 중요
하다.
정부는
‘얼마를 공급하겠다’는 선언적 구호를 넘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자금을 배분받으며 그것이 탄소중립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명세서를 제시해야
한다. 기후금융은 의지를 과시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이제는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전략이 되었다. 지난 계획에 대한 평가와 구체적 방향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790조 원’은 공허한 숫자 놀음으로 남을 수 있다.
[ 녹색전환연구소 최기원 경제전환팀장]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선임연구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