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일가족 5명 순식간에 추락사
곤돌라 뒤집혀… 조부, 손녀만이 구조돼
책임자들 모두 불기소 또는 집행유예로
관련자들 태만 무책임이 만든 명백한 인재
언제나 어디선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납니다. 일부만이 세상에 알려져 역사로 기록됩니다. 산업화 이후 부울경에서 벌어진 많은 일 중, 기억하고 되짚어야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기록합니다. 실화입니다만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입니다. 극단적인 사건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집중했습니다. [편집자 주]
화려한 놀이 기구 사이로 우뚝 솟은 대형 회전관람차가 여유로운 속도로 돌아간다. 할아버지, 할머니, 며느리와 손주 등 일가족 7명이 관람차의 곤돌라에 올라탄다. 이제 느긋하게 곤돌라에 앉아, 창밖 풍경을 감상할 차례이다.
그러나 곧 곤돌라가 무언가에 끼인 듯한 충격이 온다. 원 궤도의 4분의 1 지점, 3시 방향 즈음 지날 때였다. 곤돌라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회전하는 휠에 고정되었다.
관람차의 휠은 계속 돌아간다. 휠에 고정된 곤돌라는 바닥이 점점 솟아오르며 옆으로 기울어진다. 그렇게 40여 초가 지났다. 곤돌라는 최고 높이를 지나 원의 4분의 3 즈음 9시 방향까지 왔다. 거의 뒤집어진 수준으로 기울어졌다.
곤돌라 안에는 가족들이 의지할 게 없다. 안전벨트도, 잡을 수 있는 안전봉도 없다. 곤돌라 외형 대부분이 투명한 대형 아크릴 창이다 보니, 발을 디딜 공간도 부족g하다.
이때 뒤 칸의 곤돌라와 충돌한다. 뒤집어진 곤돌라가 뒤 칸이 움직이는 범위 안까지 들어가버린 것이다. 충격에 가족들이 이제는 바닥이 된 아크릴 창 쪽으로 쏠려 버린다. 한 번에 무게가 집중되자 창이 20여 m 아래로 힘없이 빠져 버렸다. 5명의 가족들도 추락했다.
순간적으로 지지대를 밟고 난간을 붙잡은 70세 할아버지가 급히 손을 뻗어 8살 손녀를 지켰다.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손녀를 안고, 다른 손으로 구조물에 매달린 채로 버텼다. 이들이 구조된 건 40여 분 뒤다.
부산 영도구 동삼동 월드카니발 놀이기구 사고 당시 구조작업 모습. 부산일보DB
참사 현장 된 카니발
놀이동산은 추억을 쌓고, 행복해지러 가는 곳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공간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한다. 국내 놀이동산과 유원지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사고는 2007년 8월 13일 부산 영도구 ‘2007 월드카니발 부산’에서 발생했다. 작은 부주의와 소홀함이 모여 상상하기 힘든 비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고였다.
2007년 7월 23일 영도구 동삼동 혁신지구 예정지였던 공터에서 월드카니발 부산이 개장했다. 6만 6000㎡(약 2만 평) 규모에 32가지 조립식 대형 놀이시설이 들어섰고, 매일 화려한 쇼와 퍼레이드가 열렸다. 8월 31일까지 40여 일간 운영하는 이동식 놀이공원이었지만, 웬만한 대형 놀이동산 못지않았다.
지금도 당시에 쓴 월드카니발 후기가 인터넷에 적잖게 남아 있다. 호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운영사는 영국 다국적 기업 ‘월드카니발’사에 뿌리를 둔 기업으로, 이미 홍콩과 베이징 등 아시아 곳곳에서 11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베테랑들이었다. 개장 뒤 그렇게 20여 일이 흘렀다.
8월 13일 오후 5시 25분 즈음, 70세 A 씨를 포함해 가족 7명이 ‘자이언트 휠’이라는 대관람차 곤돌라에 탔다. A 씨 부부와 첫째 아들 가족들은 타지에 거주했는데, 부산에 사는 둘째 아들 가족을 보러 와 다같이 놀이동산을 찾았다.
자이언트 휠은 최고 높이 66m로, 8인승 곤돌라 42개를 매달고 회전하는 놀이기구다. A 씨 가족들이 탄 곤돌라는 대형 휠의 3시 방향에서 휠 펜스에 돌출된 볼트에 끼이면서 휠에 고정됐다. 조립 과정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운영 기간 내내 볼트와 곤돌라는 끼였다 빠지기를 반복했고, 곤돌라 외벽에 페인트가 벗겨지며 선명한 자국도 남겼다. 이번에는 긁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고정되어 버렸다.
그 상태로 곤돌라가 9시 방향에서 뒤집어지기까지 약 40초 정도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자이언트 휠을 조작하던 운영 요원은 상황을 몰랐다. 뒤 곤돌라와 충돌할 즈음 상황을 인지하고 놀이기구를 멈췄다. 곤돌라 안에는 안전봉이나 안전벨트처럼 붙잡거나 몸을 의지할 장비가 없었다.
결국 충돌 뒤 창문 프레임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빠졌다. 순식간에 A 씨의 60대 부인, 40대 며느리, 20대 손녀 2명 그리고 6세 손자가 추락했다. 이들은 사고 현장과 병원에서 사망했다.
A 씨는 창이 빠지자 본능적으로 왼손을 뻗어 8세 손녀를 붙잡았다. A 씨는 거꾸로 뒤집힌 곤돌라 안의 좁은 틈 위에 웅크린 채, 한 손으로 난간을 한손으로 손녀를 붙잡고 40여 분을 버텼다. 소방대원들은 5분이 안 돼 도착했지만, 높은 상공에서 이뤄지는 작업이다 보니 구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A 씨는 육체적 고통보다, 가족들이 추락한 현장에서 겪어야 할 정신적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구조 뒤 A 씨가 “매달려 있는 순간에도 살아 무엇하겠냐 싶어 손을 놓고 싶었지만 왼쪽 품에 안겨 울부짖는 어린 손녀를 보고는 차마 함께 죽지 못했다”고 울먹였다는 인터뷰가 남아 있다.
2007년8월13일 오후 부산 영도구 동삼매립지 월드 카니발 사고 현장에서 부상자를 실은 구 급차량이 행사장 정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부산일보DB
결국은 인재
곤돌라가 뒤집어지는 상상하기 힘든 사고였다. 경찰과 관련 기관은 빠르게 조사에 착수했다.
볼트 위치가 잘못됐다는 게 확인됐다. 원래 자리보다 몇 칸 아래에 있었다. 끼우는 방향도 잘못돼, 볼트의 돌출부가 곤돌라를 향하게 됐다. 그 결과 볼트와 곤돌라의 간격이 비정상적으로 좁아졌다.
창이 맥없이 빠진 것도 설계 문제였다. 15일 사고 현장 설명회에서 유가족이 다른 곤돌라 내부에서 아크릴 창을 발로 찼더니 창이 그대로 빠져,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이 당황하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창을 지지하던 고무 패킹과 알루미늄 프레임의 고정 상태가 부실했다.
현장의 유족들은 “(창밖에) 쇠창살이라도 있었으면 참사를 막았을 것”이라며 호소했다. 곤돌라 내 안전 설비가 없었던 것으로 미뤄, 설계 당시 이런 사고는 애초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도구청에 비난이 쏟아졌다. 업체가 영업 신청을 하자 하루 만에 허가를 내줬다. 구청은 “안전성 검사를 통과했기 때문에 서류상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구청이 놀이기구의 안전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인력이나 전문성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문화관광부의 위탁을 받아 사전 안전 검사를 전담한 곳은 한국종합유원시설협회였다. 그러나 이들은 안전벨트와 쇠창살 미설치, 고정 볼트 설치 오류 등을 지적하지 못했다. 검사 총책임자였던 모 대학 교수는 검사 기간 중 해외 출장을 가, 전화로 지시하고 제자들이 검사를 진행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엔 이동식 놀이기구 안전성 검사에 관한 세부 법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검사 기준이 모호하고, 검사반원들의 의무도 불명확했다. 허술한 검사로 합격을 줘도 문제가 안 되는 구조였다.
현장의 안전 의식도 부족했다. 3명의 현장 요원 상시 배치가 의무였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에 대한 긴장감도 낮았다. 곤돌라 끼임부터 추락까지 40초가량의 골든타임을 허무하게 놓쳤다. 20여 일의 운영기간 동안 볼트와의 끼임으로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일일 안전 점검표에 습관적으로 ‘이상 없음’을 기록했다.
만일 현장 요원이 민첩하게 자이언트 휠을 멈췄더라면, 업체가 긁힌 자국의 의미를 알아봤다면, 안전 검사 요원이 사고 가능성을 경고했다면, 영도구청이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업체에 엄격한 안전 검사를 주문했다면, 참극을 막았을 수도 있었다. 제도도 부실했고, 책임자들도 무책임했다.
월드카니발 놀이기구 사고 현장 검증에서 곤돌라 관람 창이 50대 유족의 발길질 한 번에 떨어져 나가고 있다. 부산일보DB
처벌할 수 없었던 무책임
구조된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한동안 치료를 거부하고 입을 닫았다. 손녀를 구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버텼다가, 구조 뒤 가족을 잃은 충격이 밀려온 것으로 보였다. A 씨는 한동안 말을 잃어 대관람차 그림을 그려 사고 현장을 묘사했다고 한다.
2개월가량이 흐른 뒤 남은 유족들이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인터뷰 기사가 있다. 눈을 감으면 떠난 가족들이 계속 떠오른다고 한다. 어머니, 부인, 조카, 자녀 등을 한 번의 억울한 사고로 잃었다. 남은 가족의 마음을 짐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수사 당국은 빠르게 수사를 진행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외국인 행사 운영 및 기술 관계자 6명을 기소했다. 추가로 기소된 이는 없었다. 안전 검사 부실 등이 확인됐지만, 검사 책임자나 지자체 관계자들은 재판을 피했다. 관련 법규 자체가 없거나 의무 규정이 애매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다.
그해 12월 기소된 6명의 1심 재판 결과가 나왔다. 금고 6개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집행유예였기 때문에 구속기소된 이들도 석방됐다. 외국인이었던 피의자들은 재판 결과를 수용하고 곧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관점에선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20년 전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훨씬 사망 사고에 관대했다.
월드카니발 부산은 폐쇄됐지만, 현장 근로자들의 임금 등 돈 문제가 복잡하게 남아 한동안 잡음이 이어졌다. 아시아 지역의 월드카니발 사업자였던 ‘홍콩월드카니발’사는 2011년 9월, 영국 본사 ‘월드카니발’사도 2012년 2월 해산했다. 사고 이후 사실상 사업이 중단돼, 이들 회사는 경영난을 겪었다.
사고 이듬해인 2008년 관광진흥법과 관련 시행령·시행규칙이 대대적으로 개정됐다. 이동식 놀이기구 운영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고, 안전성 검사 항목이 구체화되는 등 이동식 유원시설 안전규제 법제화가 이뤄졌다.
월드카니발 놀이기구 사고 브리핑 과정에서 유가족 항의하고 있다. 부산일보DB
다만 불성실했을 뿐
사고 9일째인 8월 21일 부산영락공원에서 희생자들의 화장이 엄수되었다. 남은 가족들은 떠나는 가족들을 쉽게 보내지 못했다. 부모들은 어린 자녀의 영정을 어루만지는 손을 차마 떼지 못하고 통곡했다. 화장 절차가 지연되어도, 누구도 쉽게 그들을 위로하고 진정시킬 수 없었다.
자이언트 휠 조립 기술자, 안전성 검사반원, 지자체 담당자, 현장 진행요원 등 어떤 이도 이런 비극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맡은 일을 건성으로 했을 뿐이다.
인재에 의한 사고는 ‘직업 윤리’와 관련이 있다. 안전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의 작은 실수나 순간의 태만은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책임감 있는 이들이 많은 현장이 훨씬 안전할 것이다. 자인어트휠이 조립되고 사고가 나기까지, 책임감 있는 이들이 부족했다.
2007년 여름 발생한 월드카니발 사고를 이제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간혹 A 씨의 극적인 구조 이야기 정도만 온라인에서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참담한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가이다. 작은 태만과 소홀함이 쌓이며 국내 유원지 내 최대 규모의 사고로 이어지는 과정은 기록돼 되짚어봐야 한다.
<참고 문헌>
부산일보 <[곤돌라 충돌 원인] 연결부위 고장 기울어진 채 회전 > 2007. 8. 14
KBS <놀이기구 추락 사고 ‘눈물의 영결식’> 2007. 8. 21
CBS <“죽은 아내와 딸에게 전화걸며 그리움 달래…”> 2007. 10. 30 외 다수 언론보도
문화체육관광부 보고서 <이동식 놀이 구 등 임시 업 허가 합리화 방안> 2008. 03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