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유년사진. (왼쪽부터)故 이병철 선대 회장, 故이건희 선대회장.
1987년 이건희 선대회장 취임식./삼성전자
이병철 선대회장이 뿌린 반도체의 씨앗은 10년 만에 세계 시장의 판을 뒤집는 결실로 이어졌다. 일본이 메모리 시장을 장악하던 1990년대 초, 삼성은 후발주자에 불과했지만 이건희 회장 시대의 선제 투자와 초격차 전략은 결국 세계 1위로 향하는 분기점이 됐다.
1987년 회장 취임 당시부터 이건희 회장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전자와 반도체를 그룹의 미래 축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삼성의 성장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취임식 사진 속 차분한 표정과 달리 내부에서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형성돼 있었다. 일본 기업들이 전자와 메모리 시장을 장악하던 시기, 삼성은 여전히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었다.
이 위기의식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언으로 폭발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강한 메시지는 단순한 조직 혁신 구호가 아니었다. 품질과 속도, 그리고 다음 세대를 먼저 준비하는 방식으로 삼성의 사업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선언이었다. 이 흐름은 반도체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메모리 시장에서 단순 추격자가 아니라 한 세대 앞서 움직이는 체질이 이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출발점은 1980년대 초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사업 진출이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던 시기, 삼성은 명백한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조직 내부에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큰 목표를 가져라!"라는 구호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단순한 슬로건을 넘어 추격자가 아니라 시장의 판을 바꾸는 기업으로 올라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GE와 IBM에서 근무한 경력을 지닌 이임성 박사와 자일로그 출신 이상준 박사 등 핵심 개발자들을 영입한다.
80년대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적어내려간 기록들./삼성전자
(왼쪽부터)1983년 9월 VLSI 1라인 기공식. 1984년 기흥 1라인./삼성전자
이후 현장은 사실상 전쟁에 가까웠다. 내부 기록과 관련 회고를 보면 임직원들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의와 개발 일정 속에서 주 80시간을 넘나드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당시 현장에서도 '전쟁'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 업체 추격을 위한 총력전이 벌어졌다.
실제 이상준 박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토요일 근무는 물론 비교적 일찍 퇴근해도 주 60시간, 급할 때는 100시간까지 일한 적도 있었다"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 분위기가 그랬고, 직급이 높을수록 더 많이 일했다. 밤 10시나 11시에 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이건 전투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결정적 분기점은 1991년부터 1993년 사이였다. 당시 일본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업황 둔화를 예상하고 D램 증설 속도를 조절했다. 반면 삼성은 오히려 라인 증설과 차세대 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시장이 흔들릴 때 더 크게 베팅하는 이른바 '타이밍 경영'이 본격적으로 작동한 시점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이었다. 업황이 둔화되는 국면에서 대규모 라인 증설을 밀어붙이는 결정은 내부에서도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시장이 흔들릴 때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이른바 '타이밍 경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
2011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삼성전자
이는 업황이 꺾일 때 움츠러들기보다 오히려 설비를 늘리고 차세대 제품 개발에 선제적으로 베팅하는 경영 방식이다. 반도체 사업을 두고 "세 번은 망할 뻔했다"는 회고가 나올 만큼 고위험 사업이었지만, 동시에 그룹의 미래를 바꿀 가장 큰 성장 산업으로 판단한 것이다.결과는 시장 판도를 뒤집었다. 예상과 달리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D램 수요가 폭발했고, 일본 업체들이 공급에 주춤하는 사이 삼성은 대량 생산 능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불황기에 단행한 선제 투자가 호황기에 폭발적인 수익으로 돌아온 것이다.이 흐름은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로 이어졌다. 삼성은 이 해 D램 시장 세계 1위에 올랐고, 199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전체 시장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반도체 사업 진출 선언 이후 불과 10년 만이었다. 일본이 지배하던 글로벌 메모리 산업의 질서를 한국 기업이 처음으로 뒤집은 상징적 장면이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것은 단순한 양적 성장만이 아니었다. 품질과 속도, 그리고 세대 전환의 선점이었다. 삼성 반도체 사업은 이때부터 '한 세대 먼저' 움직이는 체질을 갖추기 시작했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라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AI 메모리 경쟁 구도 역시 이러한 경영 유산의 연장선에 있다. 이건희 회장 시대 형성된 초격차 DNA는 이후 삼성의 메모리 1위 체제를 30년 넘게 떠받치는 기반이 됐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57조2000억원의 잠정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낸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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