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는 관광에서 쓰는 관광으로 (5) 일본 유후인, 온천에 머무는 발길
온천·문화 앞세워 체류형 휴양지로 성장
간판·건축 기준 마련해 마을 경관 보존
지역 농가와 상생하고 주민 자부심 키워
관광객 체류를 소비로 연결한 지역의 전략을 분석합니다. 경남 관광이 ‘보고 떠나는 관광’을 넘어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소비를 남기는 관광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합니다.
인구 1만 명이 채 안 되는 일본 오이타현 유후인.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은 한국인에게도 사랑받는 온천 휴양지다. 유후인을 품은 유후시는 인구 3만여 명인 소도시지만 지난해 관광객 419만여 명이 찾아 약 280억 엔을 썼다. 외국인 관광객 130만여 명 가운데 절반가량은 한국인이었다.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온천만이 아니다. 유후산이 보이는 풍경과 개성 있는 작은 가게, 조용히 쉬어갈 료칸이 어우러져 마을 전체가 여행지가 됐다. 그 바탕에는 자신들만의 휴양지를 만들고 마을 경관을 함께 가꾸며 주민들이 자부심을 공유하는 지역으로 키운 노력이 있다.
일본 오이타현 유후인 유노츠보 거리에서 관광객들이 상점가를 둘러보며 거닐고 있다. 거리 뒤편으로 유후산이 솟아 있다. /이원재 기자
사라질 뻔한 마을 온천 휴양지로
유후인은 처음부터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 아니었다. 농업과 임업, 소를 기르는 목축업 등으로 살아가던 인구가 적은 마을이었다. 옛날에는 인근 오이타나 벳푸에서 아이들이 잘못하면 “유후인으로 보낼 거야”라고 혼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찾아와 쉬어가는 휴양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한때는 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길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주민 반대로 계획은 무산됐지만 삶터를 지킨 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았다. 농업 외에 지역 성장을 이끌 산업이 필요했던 주민들은 온천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가까운 곳에는 이미 이름난 온천도시 벳푸가 있었다. 대형 호텔과 단체관광이 발달한 곳이었다. 유후인은 작은 숙소에 머물며 조용히 쉬는 휴양지에서 길을 찾았다. 단체·남성 중심 온천관광에서 벗어나 여성 혼자서도 밤길을 안심하고 산책할 수 있는 마을을 목표로 삼았다.
도미나가 기이치 유후인온천료칸조합 대표는 “같은 것을 하면 제2의 벳푸가 될 뿐”이라며 독자적인 길을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1971년 지역 료칸 경영자 3명은 독일 온천마을을 찾아 오래 머물며 건강을 돌보는 보양지 모습을 살폈다. 이들은 온천과 자연을 즐기며 충분히 쉬어가는 체류형 휴양지를 유후인에 접목하고자 했다.
하루보다 이틀, 이틀보다 일주일을 머물고, 나중에는 살고 싶다는 마음까지 드는 곳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영화제와 음악제, 미술관과 갤러리 등 문화적 요소도 더해 온천 밖에서도 즐길 거리를 마련했다.
지금 관광객 눈길을 끄는 쇼핑과 길거리 먹거리도 이런 기반 위에 발달했다. 유노츠보 거리에는 유후인산 우유로 만든 치즈케이크와 푸딩, 닭고기 튀김인 ‘도리텐’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유자와 고추로 만든 양념 ‘유즈코쇼’와 말린 표고버섯을 파는 가게에서는 지역 식문화도 엿볼 수 있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잡화점부터 유리 공예품과 도자기를 갖춘 소품점까지 가게마다 다른 물건을 구경하고 고르는 재미도 더해진다.
쇼우노 케이지 유후시 마치즈쿠리 관광국 사무국장은 온천과 문화로 차별화를 시도했고,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쇼핑 상권이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온천을 즐기는 데서 나아가 마을에 머물 이유를 쌓아온 셈이다.
일본 오이타현 유후인 관광명소인 긴린코 호수에서 관광객들이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이원재 기자
함께 지키는 마을 경관
유후인은 좋은 온천수를 품고 있다. 지역마다 수질과 온도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무색무취한 맑은 물이 특징이며, 원천 온도가 90도에 이르는 곳도 있다. 염좌와 타박상 회복, 피부 보습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온천수를 화장수로도 활용한다.
다만 좋은 온천수만으로 지금처럼 관광객을 끌어모은 것은 아니다. 마을 곳곳에서 고개를 들면 두 봉우리가 솟은 유후산이 눈에 들어온다. 낮은 건물 지붕 너머로 산자락이 펼쳐지고, 작은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일본 소도시 특유의 정취가 묻어난다.
유노츠보 거리를 따라 가게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긴린코 호수에 닿는다. 호숫가 나무와 건물이 수면에 비치고, 물가를 따라 산책하며 거리와는 또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온천에서 쉬고 마을을 걸으며 산과 호수를 감상하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풍경 뒤에는 경관을 함께 지키려는 주민들 노력이 있다. 유노츠보 거리에서는 약 20년 전부터 주변 경관을 지키는 주민 모임이 활동해왔다. 가게 규모와 간판 크기·높이·색상·개수 등에 공통 기준을 마련해 개별 가게가 마을 전체와 어우러지도록 했다.
기도 히로히사 유노츠보 상점회 대표는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지킬 기준을 마련한 것”이라며 “벌금이나 불이익을 주기보다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 경관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료칸조합도 새로 가게나 건물을 짓는 이들이 참고할 건축 가이드북을 마련했다. 눈에 지나치게 띄는 색상을 피하고, 건물은 도로에서 2m 물려 짓고, 터 일부는 정원과 녹지로 남기도록 권했다. 바깥으로 큰 음악을 틀거나 과도하게 호객하는 행위도 자제하도록 했다.
건물 외관뿐 아니라 소리와 영업 방식까지 살핀 것은 녹음과 여유로운 공간, 고요함을 지키기 위해서다. 새소리와 물소리를 듣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쉴 수 있는 환경이 온천 휴양지 매력을 더한다는 생각이다.
쇼우노 사무국장은 “대규모 쇼핑시설은 편리하지만 작은 가게들이 보여주는 개성은 줄어들 수 있다”며 “작은 가게는 외관부터 개성이 시작된다. 그런 고유한 모습을 지키는 것이 방문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일본 오이타현 유후인 한 료칸에 마련된 노천온천. /이원재 기자
지역이 살아야 관광도 산다
유후인 관광이 강조하는 것은 지역이 살아야 관광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관을 가꾸는 일도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려는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웃이 함께 누려온 일상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도미나가 대표는 대형 호텔 건설 움직임에 주민들이 반대했던 일을 떠올리며 “큰 호텔이 들어서면 유후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생긴다”며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이 유후산이 보이지 않는 아침을 맞이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료칸 식탁에도 이어진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다. 료칸은 지역 농산물을 구매하는 데서 나아가 필요한 채소를 농가에 먼저 제안하고 재배를 부탁한다. 주문해 기른 만큼 일반 유통업체에 납품할 때보다 높은 값을 치른다는 설명이다.
관광객이 즐기는 한 끼가 농가 소득으로 이어지고, 농민이 생산을 이어가야 논밭과 목가적인 풍경도 유지된다. 모든 식재료를 유후인산으로 한정하지는 않지만, 지역 농가와 거래를 이어가며 관광과 농업이 함께 살아갈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도미나가 대표는 “아름다운 풍경과 지역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업도 가능한 것”이라며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을 돌보는 일도 료칸 역할로 봤다. 조합은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한 활동에 비용을 들이고 있다. 마을 미래를 이어갈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재해가 발생하면 료칸을 개방하고 식사와 온천도 제공한다. 료칸이 숙박객을 맞는 시설이면서 주민들이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센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쇼우노 사무국장도 관광지 성장과 함께 주민들이 자기 마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를 중요하게 봤다. 그는 “예전에는 유후인이 잘 알려지지 않아 어디 출신인지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유후인 출신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아이들이 우리 지역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이 보이는 풍경을 지키고, 농가와 상점이 함께 살아가며,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마을을 만드는 일. 유후인이 지향한 관광은 주민들이 살아갈 지역을 가꾸는 일과 맞닿아 있다.
/이원재 기자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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