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한경DB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신생 사모펀드(PEF)를 동원해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사두게 한 뒤 넘겨받았다는 이른바 '파킹딜' 의혹이 제기됐다. 지분을 늘리는 과정에서 직접 주식을 사들이지 않고 사전에 PEF 등을 거쳐 우회적으로 사 모았다는 것이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의 불공정거래 신고서가 지난 4월 금융감독원에 접수됐고, 이후 두 차례 더 제출됐다. 신 회장 측은 "어느 누구와도 사전에 약속을 하고 주식을 매수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신 회장은 올해 세 차례 장외 매입으로 지분을 37.13%까지 늘려,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라데팡스파트너스 합산 지분(약 40.8%)과의 격차를 3%포인트대로 좁혔다. 신 회장은 2024년 경영권 분쟁 당시 모녀 측,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함께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는 ‘4자 연합'을 꾸렸지만, 이후 대표 교체 갈등과 소송전 등으로 사실상 갈라선 상황이다.
신생 PEF, 단순 우호세력인가 파킹인가
금감원에 제출된 신고서에는 쉴드스톤사모투자 출자자들이 신 회장으로부터 한미사이언스 지분 매수를 권유받고, 지난해 7월부터 신 회장과 협의해 주식을 사들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신 회장의 거래계획보고서에 등장한 미공개 매도인 가운데 쉴드스톤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쉴드스톤은 e스포츠·콘텐츠 투자사 에이티유파트너스가 지난해 7월 세운 펀드로, 대창·서원과 에이티유파트너스의 최대주주인 기보스틸이 50억원씩 출자했다. 지난해 말 주주명부에는 한미사이언스 주식 29만8366주(0.44%)를 가진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쉴드스톤은 신 회장의 올해 7월 거래 대금 결제가 끝나고 사흘 뒤인 8월 14일 해산했다. 같은 운용사는 9월 '쉴드스톤2호'를 새로 세웠다.
이와 관련해 신 회장 측은 "공시에서 밝히지 않은 사항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에이티유파트너스 측 역시 쉴드스톤이 신 회장 거래의 매도인이었는지에 대해 "내부 정책상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다만 "특정인과 사전에 약정을 하고 주식을 매매한 사례가 전혀 없다"며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10월 거래계획서에서도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PEF가 매도인으로 등장했다. 코리아밸류업사모투자는 신 회장의 7월 계약 사흘 뒤 설립돼 석 달 만에 지분 2%를 모아 신 회장에게 넘기기로 했다. 운용사 트라이앵글프라이빗에쿼티는 2024년 설립된 곳으로, 본점은 경기 양평의 9.5평짜리 사무소다. 외부에 알려진 투자 실적이 거의 없고, 직접 자금을 모아 만든 펀드는 코리아밸류업이 사실상 처음이다.
특정 종목에 투자하기 위해 펀드를 만들거나 우호세력이 지분을 사들이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건은 사전 약정이 있었느냐다. 자본시장법은 다른 사람 명의라도 자신의 돈과 책임으로 보유한 주식이나, 함께 사고팔기로 합의한 사람의 주식은 본인 지분과 합산해 보고하도록 한다. 신고서 주장대로 신 회장과 협의해 주식을 샀다면, 펀드가 사들인 지분은 처음부터 신 회장 지분과 합산해 공시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세 따로, 거래가격 따로
신 회장은 올해 2월(6.45%)과 7월(5.27%) 거래로 11.72%를 사들였고, 10월 계약분 2.02%는 오는 9일 넘겨받는다. 모두 13.74%, 약 4557억원어치다.
거래 가격도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웃돈을 노리고 지분을 사들이는 투자는 흔하다. 신 회장의 거래계획서에 등장한 미공개 매도인들 역시 그런 투자자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거래가는 계약 시점의 시세와 협상력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앞선 두 차례 거래의 가격은 시세와 관계없이 일정했다.
공시를 토대로 계산하면 신 회장은 2월과 7월 거래에서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 일가에는 두 번 모두 주당 4만8800원을,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매도인들에게는 2월 약 4만6138원, 7월 약 4만6083원을 줬다. 그사이 계약 직전 거래일 종가는 4만1900원에서 3만1800원으로 24% 떨어졌다. 시세가 4분의 1 가까이 빠졌는데도 값은 거의 같았다. 가격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신 회장 측은 의혹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신 회장 측은 "신 회장은 어느 누구와도 사전에 약속을 하고 주식을 매수한 적이 없다"며 "특정 세력이 신 회장을 흠집 내려는 악의적 의도로 아무런 근거 없이 익명에 숨어 의혹이라는 형식으로 사실 왜곡을 기도하는 정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영권 분쟁중인데, 금감원은 7개월째 '잠잠'
신 회장은 2024년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에서 모녀 편에 서며 승부를 가른 '키맨'으로 떠올랐다. 같은 해 12월 모녀 측, PEF 라데팡스파트너스와 '4자 연합'을 꾸리고 의결권을 함께 행사하기로 주주간계약을 맺으면서다. 4자의 계약 기간은 5년으로 2029년 말 끝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연합은 사실상 와해됐다. 지난해 반포 시니어케어 사업 투자를 두고 갈등이 불거지자 모녀와 라데팡스 측은 신 회장이 협약을 어겼다며 600억원 규모 위약벌 소송을 냈다. 신 회장도 임 부회장 보유 주식 100억원어치를 가압류하며 맞섰다. 올해 3월에는 신 회장과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던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연임에 실패했다.
신고서가 접수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금감원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7월 거래는 결제가 끝났고, 10월 거래도 오는 9일 결제된다. 금감원은 "조사 착수 여부에 대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4자 연합 계약은 2029년 말 만료된다. 이후엔 각자 보유한 지분이 경영권의 향방을 가르게 된다. 경영권 분쟁 중인 상장사의 지분 이동은 주가와 소액주주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번 의혹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금감원 출신 변호사는 "대량보유 보고와 공개매수 규정 위반 여부가 조사돼야 할 사안"이라며 "상장사 지분 문제는 시장에 계속 영향을 주는 만큼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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