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옛 신제국총리관저 부지 일대. 구글어스
독일 베를린에서 잡초 무성한 도심 공터를 둘러싸고 개발론과 보호론이 맞서고 있다. 해당 장소는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 중심지였던 신제국총리관저 지하 벙커가 남아 있는 곳이다. 논쟁의 배경에는 심각한 주택난이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현지시간) 베를린 포츠담 광장과 쇼핑몰 ‘몰 오브 베를린’ 인근 옛 신제국총리관저 부지를 둘러싸고 나치 시대 유적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고 보도했다.
쟁점은 ‘역사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다.
이곳에는 히틀러가 1930년대 후반 세운 신제국총리관저가 있었다. 지상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철거됐지만 지하 벙커 일부가 남아 있다. 독일 일간 빌트는 함부르크 부동산 개발업체 SMV 베를린이 이 부지에 아파트와 사무공간을 조성하는 사업 승인을 받았다고 지난 6월 말 보도했다.
논란이 커진 것은 이 벙커가 히틀러 정권의 핵심 권력 공간 가운데 현재까지 남은 몇 안 되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주 기념물위원회는 지난해 개발업체의 벙커 철거 계획에 우려를 드러내며 당국에 역사적 보호 대상 지정 여부를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위원회는 신제국총리관저를 두고 “제2차 세계대전의 계획과 출발점이었다”며 “나치 체제의 파국적 종말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베를린 옛 신제국총리관저 부지 지하에 남아 있는 대형 벙커 내부. 현재 보존된 내부에는 물이 차 있고 철제문 등이 남아 있다. 디트마르 아르놀트·베를리너 운터벨텐 아카이브
베를린시는 주택 공급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베를린 도시개발·건설·주택 담당 크리스티안 게블러 상원의원은 주택 건설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시개발부 대변인은 “게블러 의원은 이곳에서 주거시설 건설을 우선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WP에 말했다.
당국은 이 부지가 오래전부터 개발 대상이었고 지하 벙커 역시 법적으로 보호받는 기념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개발론에 힘을 싣는 건 베를린의 주택난이다. 미국 부동산 서비스 업체 CBRE는 지난 5월 발표한 분석에서 베를린의 신규 임대료 상승이 ‘상당한 초과 수요와 이용 가능한 주택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했다.
베를린 인구는 2010년 이후 50만명 이상 늘었지만 주택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베를린의 지하 유적을 조사·보존하는 단체 ‘베를리너 운터벨텐’의 디트마르 아르놀트 회장은 성명을 통해 “아파트 건설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벙커는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벙커를 없애지 않은 채 그 위에 건물을 세우고 일부를 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아르놀트 회장은 해당 벙커가 전쟁 당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모자 벙커’와 응급 야전병원으로도 사용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7년 내부를 직접 조사한 그는 “벽 두께가 5피트(약 1.5m) 이상이기 때문에 벙커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1941년 7월 9일 독일 베를린 신제국총리관저 전경. 독일 연방기록원 인스타그램
아르놀트 회장은 “이 장소는 나치 체제의 파국적 종말을 상징한다”며 “바로 이 역사적 장소에 나치 정권의 몰락과 베를린 전쟁 마지막 날들을 다루는 정보·기록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를리너 운터벨텐 측은 지난 6월 개발업체와 관련 논의를 위한 회의를 열었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고 전했다.
미술사학자이자 건축가인 니콜라우스 베르나우는 벙커 철거에 반대하며 “원형 유적이 중세 성의 일부였다면 이를 철거할지를 놓고 아무도 논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WP는 전했다. 그는 해당 벙커가 ‘파시즘과 권력의 역사를 배우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논란은 독일에서 수십년째 이어져온 ‘나치 유산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독일에서는 나치 관련 시설을 보존할 경우 극우 세력이나 네오나치의 ‘성지’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돼왔다. 동시에 나치 범죄 등 불편한 역사까지 인정하고 기억하는 이른바 ‘기억의 문화’ 역시 독일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히틀러가 1945년 자살한 ‘퓌러벙커’ 터는 네오나치 추종자들의 집결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오랫동안 별다른 표시 없이 방치돼 있었다. 베를린시는 2006년에야 이곳에 안내판을 설치했다. 이곳에 대해 WP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안내판만 없다면 평범한 주차장으로 착각하기 쉽다”고 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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