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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희망 대한민국] AI 시대, 다중 멘토링은 대학이 주는 최고의 선물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AI는 양날의 검과 같다. 자동화로 우리 일상의 풍요로움은 더해주지만, 한편으론 인간적인 가치의 상실이 아쉽기 때문이다. AI 챗봇을 상대할 때마다 복잡한 감정의 배려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희망 대한민국] AI 시대, 다중 멘토링은 대학이 주는 최고의 선물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AI는 양날의 검과 같다. 자동화로 우리 일상의 풍요로움은 더해주지만, 한편으론 인간적인 가치의 상실이 아쉽기 때문이다. AI 챗봇을 상대할 때마다 복잡한 감정의 배려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깊이 있는 도움의 결핍이 느껴진다. 겨울의 추위가 생명체의 내면에 숨겨진 따뜻함을 일깨우듯, 기계의 차가운 효율성은 역설적으로 우리 내면의 인간성을 일깨운다. “AI 시대에는 관계 지능(Relational Intelligence)이 인지 지능(IQ)보다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2024년 스탠퍼드대학 연구진의 이 예측은 지금 AI 기술보다 ‘인간 중심적’인 인재를 30% 더 높게 평가한다는 산업계의 현실과도 일치한다. 2023년-2024년에 걸친 링크드인(Linkedin) 조사에 따르면, 소프트 스킬이 하드 스킬만큼 중요하다고 답한 기업의 비율이 92%에 달했다. 채용 플랫폼 스텝스톤(Stepstone)은 2023년에 소프트 스킬을 요구하는 채용 공고가 2019년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점차 관계적 기술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AI 시대의 넓고 옅어지는 인간관계

우리 삶의 모든 일은 사람과의 관계로 시작되고 끝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 모든 게 마찬가지인 건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사회적 본능 때문이다. SNS 중심의 디지털 세상에서 다양한 접촉이 가능해지고 AI가 인간의 생각과 일을 빠르게 대체할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게 있다. 바로 사람 간의 관계와 소통이다. 관계 지능이란 단순히 ‘사람을 잘 대하는 것’을 넘어서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맞게 행동을 조절하며 신뢰와 협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의 감성지능(EQ)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설계하는 능력인 셈이다. 이는 타고나기도 하지만 물론 학습으로도 강화된다.

소통의 수단이 발달할수록 진정한 관계의 깊이가 얕아지는 게 문제다. AI가 정형화된 일들을 대체하면서 남겨지는 건 창의성과 감성지능, 그리고 인간관계를 다루는 능력 정도다. 기술적 지능이 발달할수록 인간다움의 가치는 그래서 더 높아진다. 이 ‘관계의 빈곤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의도적으로 ‘더 깊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연결의 과잉이 만드는 문제들은 결국 더 의미 있는 연결을 통해서만 해결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가장 혁신적인 기술은 그래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관계의 의미 자체를 그래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AI와 기술의 부정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범위를 넓히는 보완 도구인 셈이다.

SNS와 AI 알고리즘으로 우리의 일상이 바뀌면서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우리나라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에선 ‘주변에 어려움을 의논할 사람이 없다’라고 답한 사람이 21.8%나 된다. 이런 현상은 20·30대에서 더 두드러진다. 대학생들의 역량 쌓기도 이미 강의실에만 머물지 않는 환경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결국 곁에 남는 건 사람이다. AI 시대에 가장 강력한 힘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술 가운데 하나는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연결이 쉬울수록 관계는 어려워지고, AI가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은 더 귀해지며, 외로움을 느낄수록 관계의 가치는 더 분명해지는 변함없는 관계의 역설이다.

신입생들에게 결핍된 ‘관계지능’의 학습 기회 제공해야

대학 신입생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어려움이 눈에 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낯설지만, 곱게 자란 요즘 학생들에게 낯선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 건 또 다른 부담이다. 오직 입시를 향해 달려온 시간 동안, 정작 성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스스로 선택하는 힘과 타인과 관계 맺는 힘을 배울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택은 누군가 대신해 주었고, 관계는 경쟁 속에서 점점 얕아졌다. 대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학생 자신의 역할을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 학습의 기회가 없으면, 지나온 길의 아쉬움을 되새기거나 자칫 AI 시대의 넘쳐나는 SNS 연결망에서 얕은 사회적 관계망에 함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스스로 길을 찾고 함께 성장할 관계를 맺어 가는 사회적 삶의 출발점이다. 자율과 책임의 캠퍼스 문화를 처음 경험하는 신입생들에겐 관계 지능을 학습하는 기회가 그래서 중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관계를 일종의 거래로 생각한다. ‘Give&Take’의 거래적 접근은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훼손시키고 진정한 연결을 방해한다. 마음의 저울로 관계의 무게를 재는 사람들은 결국 가장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관계에서 가장 큰 보상을 바라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타적 행동이 오히려 자신의 만족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관계의 역설이다. 하버드대학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와 같은 이타적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더 강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심리적 웰빙을 경험한다. 이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기여가 오히려 개인에게 더 큰 사회적 자본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이자, 사회적 연결의 선순환이다.

강한 유대감을 형성해 주는 멘토링 효과

필자는 이 대목에서 사회적 연결망이 만들어 내는 우리 대학의 성과지표가 있어 공유하고자 한다. 대학마다 관심을 두고 있는 신입생 중도 탈락률이 우리 학교에선 최근 몇 년 사이 서울 지역 대학의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준인 6%대로 크게 낮아졌다. 그 배경엔 다중 멘토링제가 있다. 입학함과 동시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나를 이해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대학 생활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신입생에겐 대학이 주는 첫 번째 선물인 셈이다.

특히 무전공 입학제와 ‘전공 자율 선택제’의 도입으로 기존 우리 학과의 틀이 옅어지는 환경에서, 전공별 학생회와 멘토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전공 분야마다 교수와 재학생 선배, 그리고 졸업생처럼 다양한 지원 주체들이 함께 학업과 진로, 학교생활 전반을 연결해 주는 다중멘토링이 그들에게 관계의 깊이를 더해주는 안전망을 제공한다. 자칫 전공학과라는 사일로(silo)에 갇히지 않고 개인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환경은 학생에게 융합 교육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혁신 사업으로 대학 본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 선순환 구조에는 대학과 사회에서 학습을 경험한 선배들의 피드백도 작용한다. 이들에겐 주고받음의 이해관계보다는 건강한 사회적 유대감이 먼저 작용한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선후배와 교수 간의 깊이 있는 관계 형성 과정의 경험은 디지털 시대의 신입생들에게 값진 학습의 기회다. 우리는 종종 관계를 기부의 등식으로 단순화하기 쉽다. 그러나 관계의 본질은 등가교환이 아닌 무조건적 나눔의 연결에 있다. 계산 없이 주고, 조건 없이 사랑하며, 기대 없이 받아들이는 관계가 청년들에겐 자연스럽다. 소통이 파편화된 디지털 시대에 대학이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재발견해야 하는 이유다. 여기엔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본질이 있다. 멘토와 멘티, 그들 간의 따뜻한 관계 형성은 신입생에게 주는 대학의 가장 값진 첫 번째 선물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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