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30% 청년들의 목소리가 ‘청년 담론’의 옷을 입고
‘청년 일반’의 열망을 대변하듯 횡행하는 것은 따져볼 일이다
절반 이상의 청년들은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도 않는다.
그들의 고달픈 한숨, 흘렸을 눈물, 소리 없는 흐느낌은 접할 길이 없다
국가와 사회의 정책은 누구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하는가.
정말로 경청해야 할 ‘청년 담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정부가 청년 지원 정책의 하나로 4억원 이하의 빌라를 구입하고자 하는 청년에게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정책의 세부 설계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보완할 지점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리 청년들은 평생 빌라에서나 살라는 거냐”는 냉소와 분노가 뒤범벅된 감정적인 반응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러한 ‘청년 담론’은 과연 얼마나 많은 청년들의 뜻을 대표하고 있는 것일까. 정작 통계를 보면, 월세로 사는 청년 가구의 71.7%가 이미 아파트 이외의 주거 형태에 살고 있다. 이런 감정적 반응은 결국 오늘도 빌라와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물론 청년들의 다수에 대해서까지도 순식간에 모욕을 퍼부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 ‘청년 담론’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이러한 ‘청년 담론’에 따르면 청년들이 원하는 건 ‘좋은 일자리’라고 한다. 노동시장의 진입 지점에 따라 평생 꼬리표가 따라붙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볼 때 충분한 보수와 좋은 근무 조건과 밝은 전망 등이 따라오는 공기업, 대기업, 전문직 등의 일자리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눈높이를 낮추어서 중소기업에라도 빨리 들어가라고 하면서 채근하지만, 이는 청년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스러운 발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쉬었음’ 청년이 지난해 70만명을 넘어서자 한국은행이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막상 그 ‘쉬었음’ 청년이 일하고 싶은 기업 유형 1위는 중소기업(48.0%)이었다. 대기업(17.6%)과 공공기관(19.9%)을 합쳐도 이에 못 미친다. 희망 연봉도 3100만원으로, 지금 구직 중인 청년들의 희망과 사실 다르지 않았다. 현실에 존재하는 다수의 청년들이 정말로 공기업, 대기업 전문직 등 ‘좋은 일자리’에 목을 매고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이 ‘청년 담론’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이 담론이 염두에 두고 있는 청년이란 ‘청년 일반’이 아니라 사실 상당히 특별한 집단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이 ‘담론’ 속에서 전제되고 있는 청년은 대충 다음과 같은 열망을 품고 있는 이들이다. 신혼집은 서울이나 최소한 수도권 가까이의 전세에서 시작하고자 하며, 마흔 살을 전후로 해서는 서울에 아파트를 소유하고자 한다. 빌라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일자리는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을 향하며,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진다고 해도 취업 준비의 기간을 더 늘리고자 한다. 이러한 조건에 해당하는 청년들이 어떤 이들인지 추측해본다.
절반 이상의 청년에겐 꿈같은 얘기
한국에서 300인 이상 대기업 종사자의 비중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13~19%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250인 이상)으로는 14%로 회원국 중 최하위이며, 독일(41%)이나 미국(58%)과는 비교가 안 된다. 공공부문과 전문직을 더해도 ‘좋은 일자리’의 실제 크기는 노동인구의 20~25%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여기에 ‘마흔 전 서울 아파트 소유’라는 조건까지 얹어보라. 이는 맞벌이나 부모의 도움이 없다면 대기업 평균 월급으로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어림짐작이지만 이러한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청년은 전체의 10~15% 안팎으로 좁혀진다.
물론 이러한 열망을 품고 있는 이들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세 배에 해당하는 30~45%를 잡아본다고 했을 때, 나머지 55~70%의 청년들에게는 이러한 꿈은 현실적으로 거의 꾸기조차 힘든 것들이다. 그냥 거칠게 말해보자면, 상위 15% 정도에게는 현실, 그다음 30% 정도에게는 열망, 그 아래 절반 이상에게는 먼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청년 담론’이란 기실 상위 15%로 들어가고자 하는 중간 30% 정도 청년들의 욕망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 30%의 건투를 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청년 담론’의 옷을 입고 마치 ‘청년 일반’의 열망을 대변하는 보편적 요구인 것처럼 횡행하는 것은 따져볼 일이다.
첫째, 발언 자원의 문제다. 목소리를 낼 시간, 언어, 플랫폼을 가진 쪽은 대개 이 초상화에 가까운 청년들이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청년층은 인구수로만 보면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어서 큰 목소리로 느껴질 수 있다”고 짚었다. 목소리의 크기와 인구의 비중은 별개이다. 여기에 담론 형성 능력이 겹친다. 교육 자원과 매체 접근 자원의 문제가 겹치게 되면서 상위의 청년들 목소리는 압도적으로 큰 반면, 하위의 청년들은 스스로의 삶과 고민의 열망을 제대로 그만큼 표출하지 못하게 된다. 레버리지에 레버리지가 겹친다. 이 상위의 청년들 열망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비대칭적으로 큰 비중을 가지게 된다.
둘째, 정치권으로 전달되는 청년의 목소리라는 것 자체가 이미 계급 및 계층의 필터를 거치게 된다. 학계의 연구는 사회경제적 엘리트 계층이 청년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다수였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정치권에 진입한 청년 정치인 중에는 부모가 중소기업 대표이거나 금융권 출신인 경우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비례민주주의연대의 한 활동가는 이렇게 물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거나 2시간 넘게 장거리 통학을 하는 청년 문제를, 다주택자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회의원이 얼마나 공감해 대변할 수 있겠나.” 정치권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청년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것보다는 그 ‘대표’된 청년 자체가 이미 편향돼 있다는 데에 있다.
‘대표된 청년’ 자체가 이미 편향
셋째, 정책 설계 자체가 구조적으로 이러한 편향을 확대한다. 은연중에 이렇게 과잉대표되는 상층 청년들의 열망이 정책에 과도하게 반영된다. 한 예로 “청년 사다리”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각종 금융 형태의 지원 정책을 보자. 금융이란 궁극적으로 현금 지불 능력 즉 일정한 크기의 수익 흐름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게 되어 있으며, 그 편익은 그 수익 흐름이 커질수록 더욱 커지게 되어 있다. 재산 형성 저축 정책이 시행되었고 많은 청년들이 여기에 호응했지만, 소득의 흐름이 불안하거나 작은 청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출 형태로 짜여 있는 정책들을 보라. 대출은 그야말로 상환 능력 즉 소득을 심사한다. 그러니 “청년 전체”를 위한다고 발표된 정책이라고 해도 실질을 보자면 쉬었음 청년이나 저소득 청년들을 배제하고 상층에 있는 청년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출 등 금융 도구를 지원 정책 도구로 사용하는 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넷째, 언론과 마케팅의 경제학이다. ‘영끌’로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번 청년의 이야기 혹은 그랬다가 크게 고생하면서 절망하는 청년의 분노 등등은 언론 매체에서 크게 확성기를 대고 널리 알린다. 또 20대이지만 온갖 명품과 외제차를 거느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청년들의 산뜻한 이미지는 SNS를 넘어서 공중파 등을 가득 채운다.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청년들, 고시원과 원룸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만 다루어진다. 온갖 마케팅 기획에 단골로 등장하는 ‘MZ세대’라는 이름도 그렇다. 트렌드로 팔기 좋은 건 균질한 다수가 아니라, 소비력을 갖춘 특정 계층의 라이프스타일이다. 클릭이 되고 상품이 되는 쪽의 이야기가, 그러지 않는 쪽의 이야기보다 훨씬 크고 자주 전해진다.
여기에 의식적인 공모 따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으며, 누구를 비판 비난할 생각도 없다. 각자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뿐이며, 각자의 처지에서 필요하게 느껴지는 역할을 수행한 것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비슷하다. 절반 이상의 청년들은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고달픈 한숨, 캄캄한 골목길에서 홀로 흘렸을 눈물, 소리 없이 꿀꺽 삼켰을 흐느낌은 접할 길이 없다. 여기에 큰 고민이 따라온다. 국가와 사회의 정책은 누구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하는가. 정말로 경청해야 할 ‘청년 담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홍기빈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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