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대 누각 중 하나인 후베이성 우한의 황학루. 양쯔강 가에 자리하고 있고, 지금 누각은 1985년에 중건된 것이다. 화가 정익현 제공
멋진 누각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빼어난 경관을 누릴 수 있는 누각은 언제 올라도 좋겠지만, 더워지기 시작해 시원한 바람과 그늘이 생각나고, 만물의 왕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 특히 누각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다. 밀양 영남루에 올라 강물과 하늘, 들판과 산의 신록이 어우러진 풍광을 즐기며 거문고를 타던 때가 떠오른다.
며칠 전 고향 시골집에 미술작가들이 찾아왔다. 그 중 한 여성작가가 최근 중국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면서 그곳 우한(武漢)에 있는 황학루(黃鶴樓)를 다녀왔다고 했다. 황학루는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누각이다. 그래서 그 작가가 보여주는 황학루 사진들을 보면서 상상으로 잠시 황학루를 여행했다.
우리나라에 조선의 3대 누각으로 꼽히는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가 있듯이, 중국에도 3대 누각이 있다.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의 황학루와 후난성(湖南省) 웨양(岳陽)의 악양루(岳陽樓),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의 등왕각(등王閣)이다.
난창의 등왕각은 가본 적이 있다. 2019년 10월에 난창 주변 몇 곳을 둘러볼 때 올라보았는데, 그 규모나 모양, 분위기가 우리의 누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등왕각은 난창시의 서남쪽 강가에 자리하고 있다. 장강(長江)을 말하는 양쯔강의 지류인 강이지만, 대구를 지나는 낙동강보다 훨씬 더 넓다. 당나라 고종 때 고종의 숙부인 이원영이 지금의 난창인 훙저우(洪州) 자사(刺使)로 있을 때인 653년에 창건했다.누각의 명칭은 이원영이 등왕(騰王)에 책봉된 후 지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황학루는 223년에, 악양루는 215년에 창건됐다.
등왕각은 창건 초기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다. 이 누각이 유명해진 것은 675년 시인 왕발(王勃)이 지은 글 덕분이다. 당시 훙저우 도독 염백서(閻伯嶼)가 이곳에서 베푼 연회에 참석한 왕발이 즉석에서 지은 ‘등왕각서(騰王閣序)’가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부터다.
염백서가 등왕각을 수리한 뒤 중양절(9월9일)에 손님을 청해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염백서는 미리 자신의 사위에게 등왕각 서문을 짓게 한 뒤, 당일 잔치 자리에서 사위 자랑을 하려고 했다. 이날 염백서는 종이와 붓을 내어놓고 등왕각 서문을 지으라고 손님들에게 청했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으나, 좌중에서 가장 젊은 손님이던 왕발이 주저 없이 나섰다.
명문가 출신으로 재능이 뛰어났던 왕발은 남들의 시기로 일찍 관직에서 물러나 사방을 유랑하던 중, 당시 부친 왕복치가 좌천되어 근무하던 임지(현 베트남 지역)를 찾아가던 중, 마침 이 날 등왕각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염백서가 준비한 지필묵이 왕발의 앞에 왔을 때, 왕발은 이를 받아 바로 붓을 들고 ‘등왕각서’를 지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염백서는 왕발이 어떤 글을 짓는지 계속 살펴보던 중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같이 나란히 날고, 가을빛을 띤 강물과 길고 넓은 하늘이 다 같이 한 빛이로구나(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구절에 이르렀다. 염백서는 책상을 두드리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천하의 천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왕발의 글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왕발의 글이 너무나 뛰어나고 유명해 후대의 누구도 시를 지을 엄두를 못내 등왕각을 노래한 시가 거의 없다고 한다.
723년 최호가 누각 올라 지은 시 한 편
널리 알려지며 전국서 유명세 얻어
최호가 다녀간 후 시인 이백도 방문
멋진 경관에 시 지으려 붓 들었다가
최호가 쓴 시 보고 다시 붓 내려놓아
"그가 쓴 시가 내 머리 위에 있었다"
◇이백이 붓을 꺾은 황학루
황학루에도 비숫한 이야기가 전한다.
황학루는 우한 양쯔강 남쪽 사산(蛇山) 위에 세워진 누각이다. 서기 223년, 오나라 손권은 양쯔강 강변에 하구성(夏口城)을 축조하고 성 남서쪽에 군사용 망루를 세웠다. 이것이 황학루의 최초 모습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는 가운데, 세월이 흐르면서 문인들이 모여드는 풍류의 공간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1985년에 재건된, 5층 구조로 된 현재의 누각(51.4m)에 오르면 양쯔강과 주변 풍광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고 한다.
황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누각 외관은 황금빛 지붕과 붉은 기둥의 팔각 다층구조로 되어있다. 내부는 황학루의 전설과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공간을 비롯해 시와 그림, 공예품 등이 전시된 갤러리, 전망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에는 타고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누각의 이름은 한 도사가 황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데, 누각 안에 대형 황학 벽화가 그려져 있다. 왕자안(王子安)이라는 선인이 학을 타고 내려왔다거나, 비문의(費文
禕
)가 선인이 된 이후 황학을 타고 이곳에 내려와 종종 머물렀다는 이야기 등이 전한다.
황학루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누각이 된 이유는 이런 전설과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 한 편이 탄생하면서 그 유명세를 탄 것이다. 723년 당나라 시인 최호가 이곳에 올라 지은 시 ‘황학루’이다.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이곳엔 덩그러니 황학루만 남았구나. 황학은 한 번 떠나 다시 오지 않고, 흰 구름만 천 년을 유유히 떠가네. 맑은 날 강가에는 한양의 나무 선명하고, 모래섬 앵무주에는 방초가 무성하구나. 날 저무는데 내 돌아갈 고향 어디인가, 물안개 피는 강 위에서 향수에 젖게 하네.(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曆曆漢陽樹 芳草처처鸚鵡洲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최호가 다녀간 이후 시인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 멋진 경관에 감동하며 시를 지어 쓰려고 붓을 들었다가 최호가 쓴 시 ‘황학루’를 보고는 붓을 놓아버렸다고 한다. 이백은 “눈앞에 아름다운 경치가 있어도 표현할 수가 없었으니, 최호의 시가 머리 위에 있었기 때문이네(眼前有景道不得 崔顥題詩在上頭)”라고 말했다고 한다.
황학루 옆에는 이 일화를 기념하는 정자 ‘각필정(
擱
筆亭))’이 세워져 있다. 최호의 시는 황학루 입구 광장에서 반대편으로 몇 걸음 내려오면 대리석에 크게 새겨져 있다.
이런 흥미로운 일화가 전하는 황학루이지만, 직접 가본 등왕각처럼 우리나라의 누각에서 맛보는 느낌이나 분위기는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황학루에 가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등왕각은 거대한 전망탑 같은 느낌이었다. 스물아홉 번의 중건과 복구를 거친 현재의 등왕각은 내부가 9층으로 되어 있고, 기단을 포함한 전체 높이가 57.5m이다. 중국 3대 누각 중 최대 규모다. 누각 앞 광장도 매우 넓었다. 게다가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려 경관에 감탄하며 시흥이 일어날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번에 황학루 사진을 보여준 작가는 대구의 화가 정익현이다. 추상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정 작가는 지난해 봄 우한에서 열린 국제미술제(한국·중국·일본·대만 작가 참여)에 참여했다가, 국제미술제 주최자인 후베이성 추치(楚慈)서화원 원장(
蘭
干武)의 주선으로 개인 초대전을 열게 됐다고 한다. ‘정익현(鄭益鉉) 당대예술작품전(當代藝術作品展)-오묘지색(奧妙之色)’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5월 8일부터 20일까지 우한 ZALLART MUSEUM(卓爾美術館)에서 열렸다. 이 전시에 이어 우한 BLUE GALLY(藍美術館)에서 지난 8일까지 열렸다. 작품도 몇 점 팔렸고 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한류가 미술로도 확산되길 바라면서, 중국에서도 한류가 하루빨리 본격화되길 기대한다. 한류 금지령인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완전히 풀리고, 양국간 문화예술교류도 자유롭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한한령은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THAAD) 배치가 확정된 후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적용되고 있다.
김봉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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