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혈관과 세포, 살과 피가 거대한 풍경으로 확장된다. 김지섭 작가는 물감을 60차례 이상 쌓고 다시 깎아내며 인간의 몸속에 축적된 생명과 시간을 화면 위로 끌어올렸다.
갤러리 세빈은 오는 24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김지섭 개인전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를’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 작가의 대표 연작 ‘이상한 풍경(Dreaming Landscape)’을 중심으로 회화 26점을 선보인다. 100호 대작 9점도 한 공간에 걸렸다.
갤러리 1층을 채운 대형 작품들은 각각의 화면을 넘어 하나의 생명 풍경을 만든다. 관객은 한 점씩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림 사이를 걸으며 몸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마주한다.
작품은 보는 거리에 따라 표정을 바꾼다. 멀리서는 땅속으로 뻗어가는 뿌리나 우주를 떠도는 행성처럼 보인다. 화면 가까이 다가가면 혈관과 세포, 살덩이 등을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상이 드러난다.
김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체 내부를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요소를 해체하고 다시 결합해 하나의 낯선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작은 세포의 움직임이 모여 한 사람의 삶과 세계를 이룬다는 시선이다.
제작 과정도 작품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화면 위에 물감을 수십 차례 올린 뒤 다시 긁고 깎아낸다. 한 작품은 60회 이상의 레이어를 거쳐 완성된다.
겹겹이 쌓인 색의 층은 살아온 시간과 기억의 흔적을 품는다. 일부를 걷어내면 이전에 덮였던 색이 다시 나타난다. 현재의 모습 아래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과거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김 작가는 인간이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 생명력을 잃은 듯 살아가더라도 몸 안에서는 여전히 강한 에너지가 움직인다고 바라본다. 서로 다른 세포와 기관이 모여 몸을 움직이듯 개인과 사회도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생각을 작품에 담았다.
전시 제목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를’은 목적어 뒤에서 멈춘 미완성 문장이다. 작가는 그 뒤에 놓일 말을 정하지 않았다. 작품 앞에 선 관객이 자신의 감각과 기억으로 문장을 완성하도록 남겨뒀다.
김지섭은 건국대학교 현대미술과를 졸업했다. 2017년부터 ‘동물원에 갇힌 사람들’, ‘박제된 감정’, ‘이상한 풍경-삶의 시간’, ‘삶의 의미’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열며 생명과 인간 내부의 풍경을 탐구해왔다.
전시는 매주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화·수·목요일과 오는 17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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