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6년 신년회에서 임직원들에게 새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 제공=현대차
현대자동차가 '현금 부자' 반열에 올랐지만 벌어들인 이익의 상당 부분을 임의적립금(임의준비금)으로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익잉여금 대부분에 특정 목적 명목을 부여해 내부에 묶어두는 구조다. 실질적인 주주환원에는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익잉여금이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배당 확대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자본배분 전략 전반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익잉여금 100조…대부분 임의적립금에 묶여
30일 현대차 제58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 기준 이익잉여금은 101조3117억원에 달한다.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순이익 중 외부에 유출되지 않고 회사 내부에 축적된 자금이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배당으로 연결되지 않는 임의적립금 형태로 유보돼 있다. 실제 배당과 직결되는 별도 기준 이익잉여금 63조8624억원 중 96.9%인 61조9053억원이 임의적립금으로 분류돼 있다. 임의적립금은 법적으로 강제되는 항목이 아닌 기업 자율에 따른 적립금으로, 필요할 경우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언제든 배당 재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는 특정 목적 자금으로 분류된 채 장기간 내부에 유보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현대차의 이익잉여금 대비 임의적립금 비율(96.9%)은 주요 대기업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도 전체 이익잉여금 29조1358억원 중 27조4714억원(94.3%)을 임의적립금으로 쌓아 비슷한 구조를 보였다. 현대로템은 1조3927억원 중 6476억원(46.5%)을, 현대글로비스는 8조3490억원 중 6조8544억원(82.1%)을 각각 적립했다.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이익잉여금 254조5669억원 중 230조8291억원(90.7%)을 임의적립금으로 분류했다. 절대 규모는 크지만 비율은 현대차보다 낮다. 고려아연은 6조2836억원 중 5조2532억원(83.5%)을 적립해 80%대 비율을 유지했다. 삼성SDI는 12조888억원 중 8조4585억원(70.0%), LG전자는 17조4193억원 중 7조1563억원(41.1%)으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이익잉여금 106조원 중 임의적립금이 2355억원(0.2%)에 그친다. 매년 수십조 원의 설비 투자를 실제로 집행하며 적립금을 소진하고 있어서다.
현대차의 높은 내부유보 구조는 법적 적립 체계와도 괴리를 보인다. 상법 제458조에 따르면 기업은 납입자본금의 50%에 이를 때까지 매 결산기 현금배당액의 10% 이상을 이익준비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현대차는 이미 이 기준을 충족했다. 자본금 약 1조4890억원을 기준으로 한 이익준비금 적립 한도는 약 7445억원 수준이다. 현재 이익잉여금 내 법적적립금(이익준비금 포함)은 7448억원으로 한도를 채운 상태다. 법적으로는 더 이상 이익을 사내에 유보해야 할 필요가 없다.
대규모 투자 앞세워 현금 방어
현대차가 배당 확대 요구에도 대규모 현금을 쥐고 있는 건 미래 모빌리티 전환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만 총 12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해외 투자도 공격적이다. 미국에서는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총 260억달러(약 37조원)를 투입한다.
하지만 배당 확대를 저해하는 실질적 요인으로 법적 강제성이 없는 임의적립금이 지목된다. 현대차는 기술개발적립금·연구인력개발준비금 명목으로 약 61조원을 쌓아두고 있다. 이 금액은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산정 시 제외되지는 않지만 재무제표상 별도 항목으로 구분 표시돼 주주들이 실질적인 배당 가능 규모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단순한 회계 분류를 넘어 자본 효율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기업이 주주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해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ROE는 8.41%로 집계됐다. 2023년 13.68%, 2024년 12.43%와 비교해 뚜렷한 하락세다. 이익잉여금이 지속적으로 누적될 경우 자기자본 규모가 확대되면서 ROE에는 하방 압력이 발생한다. 내부에 축적된 자금이 고수익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자본 효율성 저하는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는 최근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통해 주주 환원 강화를 공언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표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2025년 연결 현금배당성향은 27.7%로 전년(25.1%) 대비 소폭 상승하는 데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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