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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은행의 문턱에서 사라진 고객의 자리

은행의 문은 누구를 위해 열려 있는가. 은행이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고객이 은행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은행의 문턱에서 사라진 고객의 자리

은행의 문은 누구를 위해 열려 있는가. 은행이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고객이 은행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전국의 은행 영업점이 오는 11월부터 오전 9시 30분에 문을 열고 금요일에는 고객 접수를 일찍 마감하는 방향으로 영업시간을 조정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은행은 근무환경 개선과 업무 효율화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정작 그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의 불편과 권익은 얼마나 깊이 헤아렸는지 의문이다.

금융은 단순히 돈을 맡기고 빌려주는 영리사업만이 아니다.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며 사회적 신뢰를 유지하는 공공적 기능을 지닌다. 그러므로 금융기관의 영업시간은 은행 내부의 편의만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디지털 금융의 시대를 맞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송금하고 예금을 관리하며 각종 금융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고령층과 장애인,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은행 창구는 여전히 소중한 생활의 통로다. 복잡한 금융상품에 관한 설명을 듣고 대출 문제를 상담하며 때로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거래를 마칠수 있다. 이들에게 은행의 문이 일찍 닫힌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기회가 줄어드는 일이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중생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 고통을 덜어주는 실천으로 가르친다. 자비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불편을 헤아리고. 약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데서 시작된다.

은행의 경영 역시 다르지 않다. 금융기관이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하려 한다면 경영의 효율성에 앞서 고객의 어려움을 살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옛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다.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은행의 경영진이 하루쯤 고령 고객의 입장이 되어 창구를 찾아간다면 영업시간 30분이 얼마나 절실한 시간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은행 노동자의 근로환경과 휴식권도 존중받아야 한다.그러나 직원의 근로조건 개선과 고객의 금융 접근권은 반드시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탄력적인 인력 운영과 교대근무, 상담 창구의 효율적인 배치 등을 통해 양쪽의 권익을 조화롭게 보장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은행 영업시간의 변경은 고객의 생활과 직결되는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과 사회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금융당국 또한 소비자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은행은 국민의 예금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그 신뢰가 없다면 아무리 거대한 금융기관이라도 존립의 기반을 잃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의 이치 또한 모든 존재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가르침이다. 은행과 고객 역시 일방적으로 이익을 취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신뢰 속에서 존속하는 상생의 관계다.

고객이 은행을 필요로 하듯 은행 또한 고객이 있어야 존재한다. 그 관계를 망각한 채 수익성과 편의만을 앞세운다면 금융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은 점차 설 자리를 읽게 될 것이다.

금융의 선진화는 건물의 높이나 디지털 기술의 속도로만 평가할 수 없다. 누구나 차별 없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고 사회적 약자까지 배려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금융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문을 닫는 것은 순간이지만 닫힌 문 앞에서 돌아선 고객의 신뢰를 다시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은행이 먼저 열어야 할 것은 영업점의 문이 아니라 고객을 향한 배려의 마음이다. 은행의 문은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 그 평범한 원칙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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