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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은 "중동 피해 대응 추경, 물가 자극 가능성 낮다"… 관건은 규모보다...

특히 IT와 비IT 부문 간 성장 차별화가 뚜렷하다는 한은 설명은, 반도체 등 일부 업종 회복을 한국 경제 전반의 체력 회복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경고에 가깝다. 수출 주력 일부가 버틴다고 해서 운송, 내수, 중소 협력업체...

한은 "중동 피해 대응 추경, 물가 자극 가능성 낮다"… 관건은 규모보다...

-유가·물류비 충격이 먼저 흔든 것은 수요가 아니라 비용… 경기보강용 추경과 물가 자극형 재정은 결이 달라

-GDP갭 마이너스·IT-비IT 온도차 뚜렷…성장률 0.1%p 높이는 데 그친 과거 사례가 말하는 것

중동 정세 악화에 대응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정치권 논의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판단은 예상보다 차분하다. 추경 자체가 곧바로 물가를 밀어 올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것은 경기 과열이 아니라 대외 충격에서 비롯된 비용 상승과 성장 훼손 가능성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물가를 자극하는 재정인지, 충격을 흡수하는 재정인지를 가르는 기준은 총액보다 지출의 방향과 집행 시기라는 뜻이다.

15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재정경제기획위원회)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중동 사태 피해 대응을 위한 추경이 편성될 경우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에 대해 “현재는 중동 전쟁 등으로 인한 유가 상승 등 비용 상승 압력의 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며, 최근 GDP갭이 마이너스인 점, IT-비IT 부문간 성장이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 대목은 지금의 거시 환경을 읽는 데 중요한 단서다. 통상적으로 추경은 총수요를 늘려 물가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경기 침체기에 돈을 풀면 성장률은 받치되 물가는 자극하는 것이 교과서적 설명이다.

[자료=차규근 의원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물가를 밀어 올리는 주된 힘이 내수 과열이 아니라 국제유가 상승과 물류 차질, 수입단가 부담 같은 공급·비용 측면에서 나오고 있어서다. 다시 말해 지금의 충격은 ‘돈이 너무 많이 돌아서’ 생긴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해외 분쟁이 국내 비용 구조를 건드리는 형태에 가깝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함께 짚은 GDP갭 마이너스도 의미가 작지 않다. GDP갭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실제 경제활동 수준이 잠재 수준을 밑돌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 전체에 남는 여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국면에서 한시적이고 목적이 분명한 재정지출은 수요를 과열시키기보다 꺼져가는 산업 부문을 살리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IT와 비IT 부문 간 성장 차별화가 뚜렷하다는 한은 설명은, 반도체 등 일부 업종 회복을 한국 경제 전반의 체력 회복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경고에 가깝다. 수출 주력 일부가 버틴다고 해서 운송, 내수, 중소 협력업체, 소상공인까지 같은 온도로 버티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료=차규근 의원실]

거시경제적으로 보면 이것은 총수요 부양형 대규모 확장재정보다는, 외생적 충격이 특정 부문에 가하는 손실을 완화하는 표적형 보정정책에 가깝다. 중도적 관점에서 보면 이 지점이 중요하다. 재정을 무조건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추경은 곧 물가 불안이라는 반사적 경계도 모두 지금의 충격 구조를 단순화한다. 현재 필요한 것은 ‘얼마를 더 쓰느냐’보다 ‘어떤 손실을 메우느냐’다. 유가 상승과 중동발 운송 차질로 비용 부담이 급격히 커진 수출기업, 운송업자, 소상공인에 자금이 정확히 도달한다면 이는 경기 과열을 만드는 재정이라기보다 공급망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판에 가깝다.

한국은행도 같은 맥락에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추경 필요성이 줄었다고 봤다. 성장률이 전년보다 크게 올라간 점을 감안하면 경기 대응을 위한 추경의 필요성은 작년보다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단서를 달았다. 최근 중동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국내 성장이나 물가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판단이다.

평시 기준으로는 추경 필요성이 약해졌지만, 지정학 리스크라는 비정상 변수가 다시 들어오면서 정책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지금 논의되는 추경은 경기 부양 패키지라기보다 전쟁과 에너지 충격에 대한 대응 예산이라는 성격이 짙다.

[자료=차규근 의원실]

성장 효과에 대해서도 한국은행은 냉정했다. 추경이 GDP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편성되는 세부 사업의 분야, 규모, 집행 시기 등에 따라 크게 달라져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선 추정이 어렵다고 했다.

다만 2025년 1차 추경안과 2차 추경안의 경우에는 당해연도 성장률을 각각 0.1%포인트씩 올리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숫자는 두 가지를 말해준다. 하나는 추경이 전혀 무의미한 수단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추경만으로 성장 경로 자체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재정은 시간을 벌 수는 있어도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래서 더더욱 지출의 정확도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핵심은 정부지출의 존재 자체보다 정책의 유효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29일 국회 기재위(현 재경위) 종감에서 임광형 국세청장에게 “미술품 거래를 악용한 탈세 행위가 신종 조세회피 수법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강도 높게 질타했다. [사진=차규근 의원실]

국채를 얼마나 더 찍느냐보다, 정부가 어떤 원칙으로 어떤 부문을 얼마 동안 지원할지 명확히 제시하는지가 기업 투자와 가격 결정에 더 큰 영향을 준다.

특히 지금처럼 에너지 가격, 운임, 환율, 공급망 경색이 동시에 흔들릴 때는 재정 총량보다 정책 신호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기업은 지원금 액수보다 정부가 충격의 성격을 제대로 진단했는지에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이번 추경 논의의 진짜 쟁점은 물가냐 성장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첫째, 중동 충격을 경기순환 문제로 볼지 외부 비용 충격으로 볼지. 둘째, 추경을 보편 소비 진작책으로 설계할지 피해 업종 표적 지원으로 설계할지. 셋째, 재원 조달과 집행 시점을 얼마나 신속하고 예측 가능하게 제시할지다. 이 세 가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추경은 정치 구호로 남고, 정리되면 제한된 재정으로도 충격 완화 효과를 낼 수 있다.

부산신항 전경

한국은행의 답변은 이런 점에서 추경 찬반 논쟁에 선 하나를 그어준다. 지금은 재정 확대 자체를 두려워할 국면이 아니라, 잘못 설계된 재정을 경계해야 할 국면이라는 것이다.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판단은 재정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

총수요를 함부로 부풀려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경기의 체온이 균일하지 않고, 비용 충격이 먼저 들어온 상황인 만큼, 정교하지 못한 재정은 효과는 약하고 후유증만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차규근 의원은 “추경은 ‘선부른 미봉책’이 아닌, 중동사태로 인한 피해를 입은 수출 기업과 운송업자, 소상공인 등을 위한 지원책이다”라며 “정부는 국채발행 없이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는데, 구체적인 지원대상과 방법 그리고 규모에 대해 빠른 시일내에 국민께 알려야 한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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