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이주민 역사 뒤에 가려진 아픔
상호 존중과 대화로 유지해온 ‘평화’
끊임 없는 노력·투자 통해 지켜내야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
미국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사회문화적으로 보면, 가족과 음식을 매개로 한국의 추석과 같은 기능을 한다. 백인들에게는 감사의 명절이지만, 같은 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국가 애도의 날(National Day of Mourning)’로 기념한다. 추수감사절은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도착하여 다음 해 첫 수확을 거둔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가족과 모여 칠면조 요리를 먹고 감사를 나누는 오랜 전통을 가진 국경일이다. 반면, 같은 날 열리는 ‘국가 애도의 날’은 민간 차원에서 개최하는 추모 및 항의 집회 성격을 띤다. 1970년 시작된 이 행사는 백인 이주민의 역사 뒤에 가려진 원주민 학살과 문화 말살, 차별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정해졌다.
현재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지구인이 주목해야 할 점은 과거 영국 정착민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 이루어진 인간적인 배려와 구호, 그리고 전쟁회피 노력이다. W. 브래드퍼드의 <플리머스 식민지 역사>는 식민지 생활상을 담고 있다. 1620년 미국 플리머스 지역에 도착한 초기 정착민들은 혹독한 첫 겨울을 지나며 식량 부족과 질병으로, 지사 포함 정착민 절반이 죽었다.
그러나 남은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의 배려과 도움으로 극적으로 생존했다. 원주민들은 옥수수(Maize) 경작법과 생선이용 천연 비료법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었다. 그해 가을 수확물이 꽤 되었다.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인근에 살던 ‘왐파노아그 (Wampanoag)’족과 함께, 신교도들은 추수감사절 식사를 나름 성대하게 먹을 수 있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식량 원조와 교육 사업을 통한 유엔의 국제개발협력인 셈이다.
영어 구사가 가능했던 원주민 스콴토의 중재로 1621년 봄, 초대 지사 존 카버와 원주민 지도자 매사 소이트 사이에 상호존중과 동맹을 위한 ‘평화협정’도 맺었다. 첫 두 조항은 서로 주민들의 상해와 도둑질 범죄자는 상대방에게 보내어 처벌받게 한다는 범죄인 인도 원칙이 담겼다. 세 번째 조항은 도난 물품의 원상복구와 처벌원칙을 천명하였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조항은 외적 침입 시 상호 군사동맹을 맺고 평화유지 노력을 한다는 것이었다. 여섯 번째 조항은 상호 만날 때, 무기를 두고 온다는 무장해제 원칙이었다.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존중 정신이 담겨있음은 강자의 오만과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판치는 현대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양자 간 평화는 약 50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평화와 선린관계 유지에는 평화에 투자할 줄 아는 양측 정치지도자가 있었고, 또한 민간 차원에서는 상호 이질문화 이해와 언어 소통을 도왔던 통역 가스 콴토가 있었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일으킨 자에게 국한하여 징벌을 주었고 집단 간 대결과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평화 유지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결실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매우 취약한 것이어서 브래드퍼드와 매사 소이트 두 지도자 사망 이후, 유럽정착민들은 원주민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했으며, 토지에 대한 욕망으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아들 지도자 메타콤(킹필립)은 원주민과 이주민 간 1675~1676년 전쟁에서 전사했다. 그는 참수되고 사지가 절단되었다. 그의 머리는 창에 꽂혀 수년간 광장에 전시되었다. 짧은 평화시대는 끝나고 긴 약탈과 살육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감정적 보복이 지배하면서 적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마저 사라지고 잔혹한 처형과 모욕만 난무하였다.
우리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중동전장에서 비인간적 잔혹함을 목도하고 있다. 러우전쟁에서만 사상자가 도합 200만명에 달한다. 누구를 위한 파괴와 살육인가?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유엔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 이 혼돈의 시기에 ‘제45차 UN 세계평화의 날’ 울산시민행사가 ‘따뜻한 손길’ 중심으로 얼마전 개최되었다. 주제는 ‘평화에 투자하라’(Invest in Peace)이다. 모든 세계시민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야 할 때이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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