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딩 숲 사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데우는 전기, 출퇴근길에 타는 전기차의 충전 전기가 사실은 농촌 축사 옆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탄소중립은 여전히 거창한 구호처럼 들리지만, 농촌에 가보면 이 말은 이미 일상에 들어와 있다.
축사 옆 에너지화 시설에서는 가축분뇨로 전기가 만들어진다. 그 전기로 트럭, 농기계와 마을버스가 움직이고, 가축분뇨를 에너지로 바꾸고 남은 퇴비와 액비는 다시 밭으로 돌아간다. 시설하우스에서는 가축분뇨로 만든 고체연료가 작물을 키운다. 현장을 보다 보면 “버리는 게 거의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버려지던 것이 에너지가 되고, 에너지는 다시 먹거리가 된다. 탄소는 농촌 안에서 순환한다.
이 변화는 미래의 실험이 아니다. 인공지능 AI를 활용한 농축산업은 이미 에너지 기반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스마트팜과 스마트축사에서 전기는 비용이 아니라 생산의 일부다. 농촌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수록 농사는 국제 유가나 전기요금 같은 외부 변수에 덜 흔들린다. 축산도 환경 부담의 상징에서 벗어나, 에너지 순환의 출발점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중요한 건 이 순환이 농촌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촌에서 남은 전기와 열은 도시로 간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농산물과 축산물은 도시의 식탁으로 이어진다.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사용(RE100)을 따지는 시대에, 농촌의 먹거리는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이다. 어떤 에너지로 만들어졌는지가 소비의 기준이 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떠올려 보면 이 연결은 더 분명해 진다. 대부분의 휴게소는 농촌에 있고, 이미 전기차 충전소가 들어서 있다. 여기에 수소 충전까지 더해진다면 농촌은 생산지를 넘어 에너지 이동의 거점이 된다. 새로운 인프라는 필요 없다. 고속도로도, 휴게소도 이미 있다. 필요한 것은 기존 자원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대한 선택이다.
농촌이 에너지를 팔 수 있게 되면 변화는 구조적으로 깊어진다. 최근 정부가 민관합동으로 추진하는 한국형 녹색전환(K-GX, Korea Green Transformation)의 방향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탄소를 줄이는 일이 곧 지역을 살리는 일이 되도록, 에너지와 지역 정책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구상이다. 에너지 수익은 지방정부의 재정 자립으로 이어지고, 그 재원은 의료와 교육, 문화와 돌봄으로 돌아온다. 인구는 정책으로 끌어오는 대상이 아니다. 살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질 때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탄소중립은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농촌과 도시를 함께 살리는 구조의 문제다. 농촌은 소멸을 걱정할 공간이 아니다.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로 먹거리를 생산하며, 도시의 하루를 떠받치는 출발점이다. 농촌과 도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이미 조용히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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