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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학교에서 배운 약육강식 논리, 청소년 극우화로 이어졌다

“전교조”, “페미”, “좌파 연예인”, “환경단체”, “운동권”, “민변”, “민주노총” 6·3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SNS에는 특정 단체들을 호명하며 ‘왜 분노하지 않는지’를 따져 묻는 글이 확산됐다.

▲ 2026년 7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된 ‘학교는 어쩌다 혐중·극우의 놀이터가 되었나’(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시민모임 독립 공동주최) 집담회 현장. 사진 출처=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전교조”, “페미”, “좌파 연예인”, “환경단체”, “운동권”, “민변”, “민주노총” 6·3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SNS에는 특정 단체들을 호명하며 ‘왜 분노하지 않는지’를 따져 묻는 글이 확산됐다. 글 말미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조용하다”고 적혀있었다. 같은 시기 서울대 에브리타임(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유형의 글이 게시됐다. 박찬대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전직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나간 국민의힘 의원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했던 발언을 밈화한 것으로, “진보 대학생 의원 돌아오십시오”,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 의원 돌아오십시오” 등의 문구를 적은 글이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된 ‘학교는 어쩌다 혐중·극우의 놀이터가 되었나’(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시민모임 독립 공동주최) 집담회에 참여한 최희정 자치언론 서울대저널 기자는 “그간 활동했던 진보권 학내외 단체들을 호명하면서 그들이 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하지 않는지 묻는 글이 ‘좋아요’를 100개 넘게 받아 충격적이었다”며 “선관위의 비민주적 행태 앞에 터져 나온 분노가 훨씬 만연했던 또다른 차별적 행정으로 확장되지는 못하고, 그들이 생각하기에 쓸데없는 곳에 목소리를 내왔다고 여겨진 이들에게로 돌아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 6·3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SNS에는 특정 단체들을 호명하며 ‘왜 분노하지 않는지’를 따져 묻는 글이 확산됐다. SNS 게시물 갈무리.

최 기자는 이러한 논리가 광범위하게 실행되는 배경에 청년층에 짙게 깔린 ‘순수한 중립’이라는 환상이 있다고 진단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므로 옳다’는 믿음이 타인에 대한 배제와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 기자는 “중립과 재판관의 위치를 고집하는 이들의 분노는 제도와 구조가 이미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못하다”며 “순수한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순수하지 않은 목소리를 배제하며 세워진 벽 안쪽에 민주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좌우를 떠나서”라는 문구다. 최 기자는 “선관위의 관리 부실은 민주적 절차의 훼손이며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그런데 분노를 표출하는 자리마다 ‘좌우를 떠나서’라는 말이 유독 적극적으로 동원됐다”며 “서울대 연석회의 차원에서 발표한 서울대 시국선언도 ‘학생들의 순수한 목소리’를 강조했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도 있었겠으나, 학생 사회에서 몇 년 동안 지속돼온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 것이 순수하고 공정하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배제를 반복시킨다”고 지적했다.

▲  2026년 7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된 ‘학교는 어쩌다 혐중·극우의 놀이터가 되었나’(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시민모임 독립 공동주최) 집담회 현장. 사진 출처=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광범위한 ‘혐중’ 흐름을 곧장 극우와 일치시킬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대저널이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을 규탄하는 글에도 중국인에 대한 혐오표현이 다수 등장했다. 최 기자는 “탄핵 반대 측이 상대를 중국인으로 낙인 찍자 탄핵 촉구 측도 같은 언어로 되받았다. 정치적 입장은 반대였으나 중국인을 혐오하는 문법만은 공유한 것”이라며 “혐중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면서도 중국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는 음모론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박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쏟아진 조롱,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겨눈 프레임 등 대상은 달라 보이지만 ‘우리’라는 존재 집단의 정당한 몫을 저들이 위협한다는 문법은 혐오에서 동일하게 쓰여오고 있다”며 “혐중의 본질은 특정 집단을 혐오해도 되는 존재로 낙인찍는 논리에 있기에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 안 민주주의 몸으로 학습할 수 있어야”

이날 집담회 패널로 참여한 청소년들은 극우화의 원인으로 경쟁 중심의 학교 문화를 지목했다. 윤건우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 기자는 “청소년은 어릴 때부터 학교 문화 속에서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논리를 배운다. 사회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시간이 없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갖고있다”며 “사회에 대한 불만,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진보가 아닌 극우로 쏠린 데는 기존부터 청소년 사이에 깔렸던 보수적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미디어를 통한 적대적 혐오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극우적 분위기가 더 빠르게 자리 잡았다는 진단이다.

이은선 청소년인권활동가 역시 “학교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실제 경험하고 있는 것은 경쟁과 서열, 비교와 평가인 경우가 많다”며 “일상적으로 관리와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경험에서 청소년은 박탈감을 경험하고, 불안 속에서 사회 구조 문제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불안과 좌절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 속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될 때, 혐오는 단순하고 강력한 힘을 제공하게 된다”며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것보다 특정 집단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게 쉽고 즉각적 만족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2026년 7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진행된 ‘학교는 어쩌다 혐중·극우의 놀이터가 되었나’(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시민모임 독립 공동주최) 집담회 현장. 사진 출처=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이들은 학교 내의 민주적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 기자는 “학교 안에서부터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고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해야 민주주의를 몸으로 학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도 “극우화는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경쟁을 당연하게 만들고 타인을 배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 속에서 습득한 것”이라며 “성급한 진단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계속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청소년과 청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화의 양상을 세분화해 인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윤 기자는 “청소년이 극우화됐다고 했을 때 계엄을 지지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다, 중국인이나 약자를 혐오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밈을 사용한다 등이 있는데, 모든 극우 성향 청소년이 네 가지 행동을 다 하는 게 아니고, 모든 극우 성향이 아닌 청소년이 네 가지 행동을 전부 안 하는 건 아니다”라며 “어디까지를 극우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상황을 바라봐야 하는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희정 기자 역시 “노골적인 혐오 발상부터 순수한 중립을 자처하는 태도, 무관심까지 결은 다양한데 극우라는 말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대응도 뭉툭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이 왜 극우적 사고에 동조하는지에 대한 통계적 분석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당부도 나왔다.

적극적인 대항행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내란세력에게 빌미를 준 선관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의 대자보와 시국선언으로 화제를 모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김민수씨는 지난해 대림동에서 벌어진 혐중 시위에 대한 대항 시위에 참여한 경험을 공유했다. 김씨는 “연세대에서 극우가 이끄는 학생총회가 좌초되고 자유대학 대표가 비판받는 상황은 강력한 대항행동이 있었을 때였고, 대림동 혐중 시위가 멈춰섰던 것도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가 강력한 대항행동을 했을 때였다”며 “극우가 민주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주장임을 계속해서 일깨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극우의 토대인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극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장기적으로는 극심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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