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식 지역학연구원장·시인
몽골 실크로드를 달리며 산양 이야기
의암집 번역 갈피에서 제천 사나이 이야기
청풍호 선상 해맞이 호응하며 또 의병 이야기
무진무진 나눈 실타래 회고록을 다시 쓴다.
히말리아를 오르며 그 높이를 재며 다다른 곳
앞장 서 나누며 해외 발걸음 떼며 이어진 곳
늘 정성 다하며 소문 없이 잘 꿰맨 곳
에델바이스 사랑 부른 비망록을 거듭 쓴다.
그 곳이 제천이라 의로운 이야기라 푯말 새기고
그 감화에 옷깃 여미고서 제천학을 묻는다.
-이창식 「에델바이스-송만배론」
이 시는 송만배(宋晩培:1936-2026)의 ‘작은거인 덕성(德性)’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문화거장에 대한 헌시인 셈이다. 제천출신인 송만배는 그동안 언론과 문화, 역사, 산악, 지역경제 발전에 정진해 온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16년 동안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15년 동안 충주MBC 기자를 거쳐 마지막 보도국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나왔다. 이후 12년 동안 제천문화원장 등을 지내면서 무형문화재와 지역 문화예술 발전 등에 애써왔다. 지역문화예술 고양(高揚)에 큰 획을 그었다. 제천의 이공기 등 문화유산 발굴과 제천의병정신 계승에 힘쓴 인물이다.
충북 북부권 포럼 위원장과 제천의병제추진위원장, 국제음악영화제조직위원, 국토 균형발전 지방분권협의회 위원 등을 지내며 제천지역 발전에 혼신을 다하였다. 특히 고령에도 불구하고 2022년 3월 제천비행장 찾기 범시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위원장으로서 가두 서명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결국 중앙정부로부터 제천비행장 군사 목적용도 폐쇄 결정을 얻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충북 북부권 포럼 위원장 직함을 통해 제천-단양 지역 현안 해결에 앞장섰던 지도자다.
12·13대 제천문화원장을 역임한 그는 재임 중 제천을 문화도시로 격상시키는 「울고 넘는 박달재」박달가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방과 의병 축제 등 정책 추진과 국내 최초 완역본 국역 의암집 출간(2009년)을 주도하였다. 유인석 문집 번역 사업은 의병 선양에 매우 값진 일이었다. 지역 역사의 문화콘텐츠를 확산시킨 보범 성과물이다. 또 평소 지역에서 “세명대는 제천시로 봐서 귀한 보배이며 대학이 발전해야 시도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늘 말하면서 세명대 대원대 설립자 권영우 박사의 교육적 투자를 높이 평가하였다.
“송학면 포전리 점말동굴은 수직동굴이어서 동물이 한번 들어가면 빠져 나오지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며 “이로 인해 이곳에서 발견된 동물의 뼈가 100만년 전이라는 미국 고고학학자의 연구발표도 있어 개발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함으로써 점말동굴전시관이 민들어졌다. 의림지역사박물관 건립, 의병묘소 성역화사업, 10.9일 한글날 행사, 8.15일 문화원 유묵전시회, 3.1독립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칠성봉복원회 등 제천 정체성 확립에 노력하였다. 산악인으로 “고향을 위해 여생을 바치는 게 나에게는 큰 행복“이라며 사회 활동 중 허영호, 최종열 등 산악인을 후원하고 제천 체육 진흥에도 애썼다. 언론에 몸담은 이력으로 지역인재 발굴과 지원에 솔선수범하였다.
한수면 송계리 국보 비신사자석탑 제자리 돌아오기 운동도 하였다. 박달재와 의병기록 맥켄지 선양 등 그는 지역 여러 분야에 주요 공로가 많다. 문화뿐 아니라 지역 발전 전반에 관여하였다. 결국 제천학을 정립한 셈이다. 생전에 상을 받지 않았다. 이제라도 문화창신의 큰상을 드려야 마땅하다. 홍법(弘法)의 자세로 제천문화창달에 헌신하였다. 송원장을 비롯한 문화원 가족과 함께 몽골 초원을 달리며 신화·산양·춤·놀이 이야기를 오래 나눈 장면이 새삼 떠오른다. 10월 20일 복천사에서 49막재 추모제가 거행되었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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