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삼성전자가 노조 파업 리스크로 어수선한 상황을 겪는 사이, 미국 인텔이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시장에서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애플·엔비디아·테슬라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인텔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면서, AI 반도체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합종연횡도 한층 빨라지는 분위기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자체 설계한 차세대 프로세서 일부 생산 물량을 인텔 파운드리에 맡기는 방안을 놓고 예비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산에는 인텔의 18A(1.8나노급) 최선단 공정이 활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승부처로 삼고 있는 2나노 시장에서 인텔이 먼저 대형 고객 확보에 나선 셈이다.
인텔은 TSMC·삼성전자보다 앞서 18A 양산 체제를 구축했지만, 그동안 핵심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 정부가 물밑 지원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외신 등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팀 쿡 애플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을 만나 인텔과의 협력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연합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립부 탄 인텔 CEO는 지난 10일 약 7조원을 투자해 인텔 지분을 확보한 엔비디아와 함께 “흥미로운 신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양사가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를 계기로 파운드리 협력까지 확대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 ‘테라팹(Terafab)’에 인텔의 차세대 14A(1.4나노) 공정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텔은 첨단 패키징 시장에서도 TSMC를 정조준하고 있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TSMC의 첨단 패키징 기술인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의 캐파 부족 현상이 심화되며 병목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AI 시장 성장 속도를 제한하는 핵심 변수로 패키징 캐파 부족을 지목할 정도다.
인텔은 자사 2.5D 패키징 기술인 EMIB를 앞세워 이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인텔은 미국 오리건과 베트남 패키징 공장 증설을 위해 대만 장비업체들에 대규모 장비 발주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설계(IP)·파운드리·첨단 패키징 등을 모두 포함한 ‘파운드리 2.0’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4%로 집계됐다. 이는 인텔 파운드리(6%)보다 낮은 수치다.
립부 탄 인텔 CEO [사진=인텔]
TSMC 역시 인텔을 주요 경쟁 상대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지난 4월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경쟁사 대응 전략과 관련한 질문을 받은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인텔은 매우 강력한 경쟁자이며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고 언급했지만,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별다른 평가를 내놓지 않았다.
이처럼 인텔이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빅테크들과의 협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경쟁사들이 갖지 못한 ‘메모리+파운드리 턴키(turnkey)’ 전략을 차별화 카드로 내세우고 있다.
강석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0일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AI·데이터센터 수요 확대에 따라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고객 수요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수의 AI·HPC 고객사와 2나노 협력을 논의 중이며, 일부는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턴키 전략은 AI 반도체 패키지에 들어가는 로직 칩과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변 D램을 한 회사에서 통합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재 인텔은 옵테인 사업 종료와 낸드 사업 매각 이후 사실상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한 상태이며, TSMC 역시 메모리를 생산하지 않는다. AI 가속기용 로직 칩과 HBM을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사업자는 사실상 삼성전자가 유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같은 전략이 실제 대형 수주로 계속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SF2(2나노) 공정 수율 안정화 속도와 미국 테일러 팹 양산 일정 등을 주요 변수로 꼽고 있다. 여기에 총 18일간의 총파업 가능성까지 겹치며 고객 신뢰 측면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기술력뿐 아니라 납기 안정성과 고객 신뢰가 핵심 경쟁력”이라며 “노조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고객사 입장에서는 공급망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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