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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특별기고] 한국 ICT 기술, 이제는 세계로 눈을 돌려야

외환위기를 IT 산업으로 돌파한 나라. 한국은 성공 경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고, 부서지고, 다시 쌓아 올린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이야말로 지금 막 도약하려는 나라들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특별기고] 한국 ICT 기술, 이제는 세계로 눈을 돌려야

1. 우리는 이미 한 번 불가능을 해냈다

1990년대 말, 한국은 전 국토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았다. 세계가 아직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던 시절, 우리는 내 책상에 편안히 앉아 영화를 내려받고 있었다. 당시 외신들은 한국을 ‘디지털 기적’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의지였다. 5G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타이틀 뒤에는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밤을 지새운 시간이 있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자정부, 스마트시티. 한국이 해낸 것들의 결과물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 결과물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언제나 같은 것이었다.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 사람들이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가 여기서 해낸 것을, 세계에서도 해낼 수 있는가.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움직이느냐다.

2. 세계는 지금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한 청년이 낡은 피처폰으로 소를 판 돈을 송금하고 있다. 은행 계좌도, 신용카드도 없이. 오직 휴대전화 한 대로.

케냐의 엠페사(M-Pesa)가 시작된 것은 2007년이다. 은행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금융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인프라의 순서를 건너뛰고, 곧바로 미래로 도약한 것이다. 이것이 리프프로깅(Leapfrogging)이다. 단계를 밟지 않고 뛰어오르는 것. 그리고 그 도약의 빈자리에, 기술이 들어간다.

아프리카의 인터넷 인구는 매년 수천만 명씩 늘고 있다. 대부분 스마트폰이 처음이고, 앱이 처음이고, 디지털 서비스가 처음인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처음'을 경험시켜 주는 기업이 이 시장을 정의한다. 구글이 알고 있다. 메타가 알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한국은 아직 충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중남미를 보자. 6억 5천만 명이 넘는 인구,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라는 두 언어로 묶인 거대한 단일 문화권. 팬데믹은 이 지역의 디지털 전환을 10년 치 앞당겼다. 원격 교육, 비대면 진료, 전자상거래가 단숨에 일상이 됐다. 인프라는 아직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 간극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이자 기술의 공간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공간을 채운다. 그 누군가가 한국이어야 한다.

3. 우리에게는 남들이 없는 것이 있다

실리콘밸리는 자본이 있고, 중국은 규모가 있고, 유럽은 제도가 있다. 한국에는 무엇이 있는가. 경험이 있다.

선진국도 개발도상국도 아닌 상태에서, 짧은 시간 안에 둘 다를 통과한 나라. 전쟁의 폐허에서 반도체를 만든 나라. 외환위기를 IT 산업으로 돌파한 나라. 한국은 성공 경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고, 부서지고, 다시 쌓아 올린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이야말로 지금 막 도약하려는 나라들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공무원은 미국의 성공 사례보다 한국의 전자정부 구축 과정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처럼 인프라가 부족했던 나라가 어떻게 했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중남미의 스타트업 창업자는 실리콘밸리의 이상보다 한국 핀테크의 현실 적용 방식에 더 관심을 가진다.

한국이 걸어온 길 자체가 콘텐츠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축적한 기술과 시스템은 충분히 이식할 수 있는 모델이다. 단, 조건이 있다. 그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사진 : 글로벌 이동통신산업 전시회 MWC(Mobile World Congress) 전시장에 설치된 국내기업 부스. [사진=SK텔레콤]

4. 현지를 배우는 자만이 현지를 바꾼다

한국 ICT가 세계에서 진짜 힘을 발휘하려면, 먼저 낮아져야 한다. 우리가 성공한 방식이 그곳에서도 성공한다는 가정은 위험하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전력 공급은 하루에도 몇 차례 끊긴다. 서버가 멈추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 데이터를 오프라인에서도 유지하는 것, 저사양 기기에서도 앱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것. 이것들은 한국 시장에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이것이 서비스의 전부이다.

인터페이스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문자 해독률이 낮은 지역에서는 글 중심의 UI가 장벽이 된다. 음성 기반 서비스, 그림과 아이콘 중심의 내비게이션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중남미에서는 같은 스페인어라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표현 방식이 다르고, 사용자가 기대하는 서비스의 '체감 온도'가 다르다.

현지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낯선 언어로 쓰인 편지에 불과하다. 이것은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략을 말하는 것이다. 현지에 뿌리를 내린 기업만이 오래간다. 현지 인재를 키우고, 현지 파트너와 함께 성장하고, 현지 사회의 문제를 내 문제로 삼는 기업이 결국 그 시장을 정의하게 된다.

5. 무엇을 먼저 가져갈 것인가

방향이 정해졌다면, 전략을 세울 차례다. 모든 것을 동시에 가져갈 수는 없다. 가장 깊은 곳부터 파야 한다.

첫째, 통신 인프라다. 인터넷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저 케이블 투자부터 위성 통신 솔루션, 저전력 기지국 설계까지, 한국이 가진 통신 역량은 인프라 공백 지역에서 직접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수익 모델이면서 동시에 신뢰의 토대다. 통신을 깔아준 나라는 오래도록 기억된다.

둘째, 디지털 교육이다. 지식은 가장 가볍고 가장 멀리 가는 짐이다. 현지 언어로 설계된 학습 플랫폼, 교사를 위한 디지털 툴킷, 오프라인에서도 작동하는 교육 콘텐츠는 단기 수익보다 장기 신뢰를 쌓는다. 교육을 통해 성장한 세대는 그 플랫폼을 제공한 나라를 절대 잊지 않는다.

셋째, 에너지와 ICT의 결합이다. 태양광과 LTE를 묶은 오프그리드 통신 솔루션은 아프리카 농촌 지역에서 이미 그 가능성이 입증되고 있다. 한국의 스마트에너지 기술과 통신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ICT 수출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

넷째, 디지털 헬스케어다. 의사 한 명이 수만 명을 담당하는 지역에서, 원격 진료와 AI 기반 진단 보조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다. 한국의 의료 데이터 인프라와 헬스테크 역량은 이 분야에서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이 네 분야는 산업 영역이기 이전에, 사람의 생존과 성장에 직결된 기반이다. 이곳에서 성과를 낸 기업은 단순한 사업자가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억될 것이다.

6. 돈을 버는 방식이 신뢰를 결정한다

세계 시장에서 ESG는 이제 평가 기준이 아니라 입장 조건이다. 특히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는 더욱 그렇다. 식민지 역사를 가진 이 지역들은 '외부에서 온 기업'에 대한 경계심이 깊다. 기술을 팔고 떠나는 방식은 단기 계약은 성사할 수 있어도, 장기 동반관계는 만들지 못한다.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교육하는 것,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데이터를 투명하게 다루는 것. 이것들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그 투자가 쌓이면 신뢰가 되고, 신뢰는 어떤 기술보다 강력한 진입 장벽이 된다.

한국 ICT가 세계 시장에서 가져야 할 자세는 이것이다. 빠르게 수익을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깊게 뿌리를 내리는 것. 그 뿌리가 충분히 깊어졌을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시장이 만들어진다.

7. 연결하는 자가 세계를 만든다

ICT의 본질은 연결이다. 그러나 연결은 단순히 케이블을 잇는 것이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던 사람들 사이에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닿지 않던 의료가 손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가르칠 교사가 없던 교실에 지식이 스며드는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시장에서 누군가의 꿈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 ICT는 이 연결의 역사를 이미 한 번 썼다. 이제 두 번째 장을 쓸 차례다. 무대는 더 넓고, 언어는 더 다양하고,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움직이는 원리는 같다.

기술은 도구다. 그것을 들고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중남미의 청년이 처음으로 디지털 계좌를 열 때, 아프리카의 아이가 태블릿으로 처음 수학을 배울 때, 외딴 마을의 노인이 화면 너머 의사와 처음 눈을 마주칠 때, 그 '처음'의 자리에 한국 기술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가능한 시대가 지금이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제 우리가 움직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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