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전…“지정학적 불안 탓”
프랑스는 작년 뉴욕서 전량 회수
연쇄 동참 땐 미국 신뢰도 ‘흔들’
네덜란드 중앙은행(DNB)이 지정학적 불안을 이유로 미국과 캐나다에 보관돼 있던 86t의 금을 영국으로 옮겼다. 미국발 무역전쟁과 미국·이란 전쟁 등으로 국제 정세가 불안해진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DNB는 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지난 3월부터 8월 사이 미국 뉴욕과 캐나다 오타와에 보관 중이던 약 313t의 금 가운데 약 86t을 런던으로 이전했다”며 “지정학적 불안이 커지는 상황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DNB는 금을 여러 지역에 고르게 분산해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런던이 실물 금 거래의 주요 중심지인 만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에 보관하는 편이 위기 상황에서 더 쉽고 빠르게 금을 사고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라프 슬레이펀 DNB 총재는 “우리는 이번 조치로 금 보유량의 활용 가능성을 개선했다”며 “금을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회복력과 대비태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DNB는 매매(약 59t)와 금의 물리적 이동(약 27t)을 병행해 금을 옮겼으며, 이를 통해 금괴를 녹여 재주조하는 과정을 피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의 전체 금 보유량은 지난해 말 기준 612.4t이다. 가치는 722억유로(약 113조9000억원)에 달한다. 애초 전체 금 보유량의 31.3%가 뉴욕에, 19.7%가 오타와에 보관돼 있었다. 이동 조치 후에는 네덜란드에 30.8%, 런던에 32.1%를 보관하게 됐다. 뉴욕과 오타와의 보유량은 각각 18.5%로 감소했다.
DNB는 지정학적 불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미국이 캐나다 등과 벌이고 있는 무역갈등과 미·이란 전쟁 등으로 인해 국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파리에 본사를 둔 금 거래 중개기관 내셔널골드카운터의 대표인 로랑 슈바르츠는 세계 중앙은행들이 지난 10년간 그들의 보유량을 이리저리 옮겨오고 있다면서 “현재 미국의 정치적 상황 또한 일부 중앙은행들이 다른 장소를 선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 시트 제스티옹 프라이빗뱅크의 애널리스트 존 플라사르는 네덜란드의 결정을 두고 “현재로서는 비교적 일회성 조치이지만, 다른 중앙은행들이 이를 따를 경우 미국에 대한 신뢰를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을 미국과 영국 등 전 세계에 나눠 보관한다. 거래 편의성과 리스크 분산을 위해서다.
그러나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함께 금 이동 사례는 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7개월에 걸쳐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관하던 금 129t을 전량 회수한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의 정치인들과 납세자단체는 미국에 있는 금을 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요구해왔다”며 “미국과 유럽 간 관계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보관 중인 유럽의 금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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