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AI 메모리 주도...정부, AI 반도체 지원 확대
한국의 테크 기업들은 AI라는 거대한 변곡점 앞에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반도체와 클라우드, 플랫폼과 데이터, 에너지와 지정학이 복잡하게 얽힌 시대 속에서 이들은 어떠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음 고비를 넘어설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다. 테크M은 창간 6주년을 맞아 한국적 정서를 담은 기획 시리즈 '테크 아리랑' 6편을 게재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격랑 속에서 국내 테크 기업들이 지닌 강점과 한계를 짚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 나가는 여정을 따라가본다. <편집자주>
지난 17일(현지시각)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에서 'AI 거품론'을 일축했다/사진=엔비디아 유튜브
"2027년까지 '블랙웰'과 '루빈' 등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만 1조달러(약 1500조원)를 기대하고 있다. '베라' 중앙처리장치(CPU) 등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GTC) 2026'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말이다. 그는 이같이 밝히고 'AI 거품론'을 일축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세계 8대 클라우드 서비스 공급사(CSP) 시설투자(캐펙스)를 7100억달러(약 1070조원)로 추산했다. 전년대비 61% 증가한 수치다. 구글과 아마존웹서비스(AWS),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가 대상이다.
트렌드포스는 "세계 CSP는 인공지능(AI) 배포 및 업그레이드를 위해 AI 서버 및 인프라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라며 "CSP는 엔비디아와 AMD GPU의 지속적 구매와 함께 주문형 반도체(ASIC) 투자를 늘리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세계 메모리 및 파운드리 시장 전망/사진=트렌드포스 홈페이지
올해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매출액 전망치는 2188억달러(약 330조원) 메모리반도체 업체 매출액 예상치는 5516억달러(약 830조원)다. 각각 전년대비 25%와 134% 성장한 수치다.
트렌드포스는 "TSMC 4나노미터(nm)와 5nm 공정은 연말까지 최대 가동률을 유지하고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4nm와 5nm 주문량이 상승하고 있다"라며 "이번 메모리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은 제조사가 아닌 CSP가 주도하고 있고 AI 붐이 확산하고 있고 공급 부족 현상은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이 낮다"라고 분석했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지난달 회계연도 2026년 2분기(2025년 12월~2026년 2월) 실적발표와 컨퍼런스콜을 진행했다. 일반회계(GAAP)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38억6000만달러(약 35조9100억원)와 161억3500만달러(약 24조2800억원)이다. 전년동기대비 매출액은 196% 영업이익은 810% 급증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회계연도 2026년 3분기(3~5월) 1개 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 성적을 낸 2024년 연간 실적을 상회할 것"이라며 "원가 부담과 소비 침체 등으로 PC와 스마트폰용 메모리 수요는 줄지만 AI 데이터센터(DC) 등 AI가 이를 넘어서는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라고 내다봤다.
세계 D램 및 낸드 매출 성장 전망/사진=트렌드포스 홈페이지
마이크론은 메모리 업계 3위 업체다. D램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점유율은 각각 3위 낸드플래시는 4위다. 이 분야 1위와 2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쟁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성적은 메모리 업계 풍향계다. 시장 지위를 고려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메모리 실적은 역대 분기 최대치 경신이 확실하다.
AI 시대 우리나라 메모리 업계 앞날은 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각도 같다. 시장도 동의했다. 삼성전자는 보통주 주당 20만원, 시가총액 1000조원 시대를 맞았다. SK하이닉스는 보통주 주당 100만원 시가총액 700조원 시대를 열었다.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는 지난달 정기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는 로직(시스템LSI), 메모리, 파운드리, 선단 패키징까지 AI 반도체 원스톱 설루션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반도체 회사"라며 "GTC 2026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땡큐 삼성'이라고 언급한 것은 삼성전자가 돌아왔다는 평가와 AI 인프라 핵심 파트너로 자리를 잡았다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자신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D램 매출 1위와 전체 메모리 시장 매출 1위를 회복했다.
삼성전자 AI 메모리/사진=윤상호 기자
파운드리 매출도 반등했다. 흑자도 달성했다. 삼성전자는 2nm 공정으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엑시노스 2600'과 4nm 엔비디아 '그록3' 언어처리장치(LPU)를 양산한다. 작년 4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7.1%다. 전기대비 0.3%포인트(p) 높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로직 다이도 만든다. 6세대 HBM(HBM4)부터다. HBM4 판매가 좋으면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호재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연간 세계 D램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역대 최초다. HBM 점유율 1위를 고수했다. 올해도 SK하이닉스의 HBM 점유율은 50% 이상이 점쳐진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지난달 정기주총에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AI 확산을 중심으로 시장 구조와 가치사슬을 재편하는 전환기에 들어섰다"라며 "AI 에이전트(비서) 및 추론 서비스와 온디바이스(기기 내부 처리) AI가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제시했다.
SK하이닉스는 우세를 이어가려면 순현금 100조원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SK하이닉스의 2025년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4조9420억원이다. SK하이닉스는 24일(현지시각) 현금 확보를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미국 주식예탁증서(SDR) 상장 공모 관련 등록신청서를 비공개로 제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16일(현지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에서 'SK하이닉스 전시관'을 찾아 베라 루빈에 사인을 남겼다/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곽 대표는 "올 하반기 상장이 목표"라며 "꾸준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현금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평택 SK하이닉스는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SK하이닉스는 패키징 생산시설(팹)을 미국에 건설 중이다. AI발 반도체 열풍이 상당 기간 계속한다는 판단에서다.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HBM은 D램을 쌓아서 만든다. 12단 제품은 D램이 12개 필요하다. 그만큼 D램 생산능력(캐파)가 줄어든다. 메모리 업계 캐파 확충이 예전 같은 공급 과잉을 유발할 확률이 낮은 셈이다.
서버용 D램도 변화 중이다. 전력 절감에 초점을 맞췄다. 소캠(SOCAMM: Small Outline Compression Attached Memory Module) 시장이 열렸다. 기존 서버 메모리 모듈보다 작고 전력 소모량이 적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소캠2' 경쟁을 개시했다.
SK하이닉스는 2030년 대중화를 목표로 HBF 개발에 착수했다/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낸드도 쿼드레벨셀(QLC)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에서 고대역플래시(HBF: High Bandwidth Flash)로 관심이 옮아갔다. HBM처럼 낸드를 적층해 제조한다. HBM과 SSD 사이에 위치한다. 총소유비용(TCO)를 내리는 역할이다. AI 추론 분야에서 HBM 비용을 덜어준다. 2030년 대중화가 목표다.
AI 반도체 분야는 아직이다. 메모리와 시장 환경이 달라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가 뜨기 전에도 시장의 강자였다. 삼성전자는 부침이 있었지만 궤도로 복귀했다. AI 반도체는 반도체 자체 성능뿐 아니라 생태계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국내 업계는 AI 학습보다는 추론 쪽을 노리고 있다. 학습보다는 추론이 생태계 허들이 낮다.
정부는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의 첫 투자처로 국내 AI 반도체 업계를 선정했다. 지난달 17일 'K-엔비디아 육성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5년 동안 50조원을 투입한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글로벌 AI 시장에서 승부를 보려면 GPU 활용과 국산 NPU 육성을 병행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국산 NPU 확산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퓨리오사AI ▲리벨리온 ▲딥엑스 ▲하이퍼엑셀 ▲모빌린트 등에게 의견을 들었다. 지난 26일 리벨리온의 'AI NPU 양산 및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사업'에 2500억원을 직접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는 17일 'K-엔비디아 육성 프로젝트'를 발표했다/사진=과기정통부 제공
한편 AI 반도체 시장에 대한 거품론은 여전하다. 이번엔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관한 의구심이다.
지난달 구글은 구글 리서치 블로그에 '터보퀀트' 기술을 게시했다. AI 구동에 필요한 메모리 필요량을 최대 6분의 1로 축소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주가가 출렁였다. 메모리 판매량이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업계는 '제번스의 역설'을 꺼냈다. 기술이 발전해 자원 사용 효율을 개선하면 그 자원의 사용량이 불어난다는 현상이다. 최근 SSD가 그렇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시장 대체에 속도가 붙었다.
메모리 업계 관계자는 "AI로 인한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기존 메모리 사용처의 용량 증대와 더불어 ▲자율주행 ▲로봇 등 새로운 수요가 생기고 있는 것도 크다"라며 "메모리 계약 관행 등도 장기 계약(TLA)을 넘어 다년간 구체적 조건을 포함한 전략적 계약(SCA)으로 이동하고 있어 이전 같은 공급 수요 불균형이 발생할 위험도 줄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윤상호 기자 crow@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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