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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태국과 캄보디아, 양국의 뿌리 깊은 원한의 역사

지난 5월 28일, 태국 북동부 국경지대인 우본라차타니 주 남위안 지역에서 양국 군이 소규모 총격전을 벌여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태국과 캄보디아, 양국의 뿌리 깊은 원한의 역사

▲ 정길선 칼럼니스트

지난 5월 28일, 태국 북동부 국경지대인 우본라차타니 주 남위안 지역에서 양국 군이 소규모 총격전을 벌여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양국 총리가 분쟁 해결에 합의하고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의에 나서기로 했지만, 신경전이 이어지며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었고, 양군의 대치 상태가 길어지며 언제금 재충돌이 가능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캄보디아와 태국의 대치가 길어지자 태국은 국경을 폐쇄하고 전력 및 인터넷 서비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러자 캄보디아도 태국으로부터의 전력과 인터넷 공급, 태국산 농산물 구매를 중단하고 현지 모든 방송국에 태국 드라마와 영화를 방영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리고 오늘 24일, 태국과 캄보디아는 또 다시 교전을 벌였다. 이 교전에서 태국 3개 주의 민간인 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8살 소년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밖에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양국 군대는 오늘 오전 분쟁 지역인 태국 동부 수린 주와 캄보디아 북서부 우다르미언쩨이 주 간의 국경 지역에서 총격전 등 교전을 벌였다. 태국군은 캄보디아군이 러시아산 BM-21 다연장 로켓포 등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여 병원 등 민간인 지역까지 겨냥해 공격했다고 밝혔다.

또한 교전이 양국의 기존 국경 분쟁이 있던 곳에서 6곳으로 번졌으며, 태국군은 F-16 6대를 출격시켜 캄보디아군의 지상 목표물 두 곳을 공격했다. 이어 태국군과 캄보디아군은 서로 상대가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지만 양측 군대 중 누가 먼저 공격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태국과 캄보디아의 사이에서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 우선 양국의 공통점은 두 나라 다 같은 불교를 믿고, 왕실이 존재하는 동남아시아의 군주국들이라는 것에 있다. 그러나 양국의 관계는 고대 시대부터 지금까지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현재의 태국 땅에는 원래 크메르인들이 살았었고 따라서 크메르족이 대다수인 캄보디아인들은 태국이 자신들의 땅임을 주장해왔고, 교육적인 입장에서도 그렇게 가르쳐왔다. 현재 태국의 주민인 타이족들은 크메르족들보다 훨씬 후에 들어온 민족이며 13세기 이전만 해도 크메르 제국이 현재의 태국 상당수 영역을 지배해왔었다. 그러다가 대리국이 멸망하고 현 태국 땅으로 남하하는 타이족의 수가 늘어난 이후로 타이족들이 자체적으로 수코타이, 란나, 란쌍 등의 나라를 건설하면서 크메르 제국의 세를 크게 축소시켜 나갔다.

이처럼 타이족들이 중국 운남성, 귀주성 일대에서 살다가 현재의 태국 영토에 들어온 이후로 캄보디아는 오랜 기간 동안 타이족으로 인해 역사적 크게 쇠락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역사적으로 캄보디아에게는 태국과 베트남이 양대 원수라 부를 정도로 적대국으로 인식했다. 본래 동남아시아의 패권국이던 캄보디아, 고대 크메르 제국을 몰락시킨 자들이 바로 태국이었고, 베트남 전쟁 이후, 크메르 루주와 전쟁으로 인해 프놈펜이 함락당하고 베트남의 일시적인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베트남 또한 캄보디아 입장에서는 원수나 다름 없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태국인의 원 종족인 타이족은 본래부터 동남아시아에 자리잡고 거주하던 민족이 아니라 사천성 남부, 운남성, 귀주성, 광동성 일부에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포해 거주하던 남방계 민족이었다. 이들은 10세기부터 조금씩 동남아시아로 남하하기 시작하더니 13세기에는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대리국이 멸망하자 몽골군을 피해 민족 대이동을 하게 된다. 중세 타이족의 대이동은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바꾼 동남아시아 내의 거대한 변혁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크메르 제국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동남아시아 고대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타이족의 남하로 인해 최대의 변화를 겪은 나라는 캄보디아였다. 타이족의 남하 초기에는 아직까지 강건한 세력으로 건재하던 크메르 제국의 위세에 타이족들은 여러 도시 국가들을 형성하고 크메르 제국에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그런데 타이족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고 인구가 크게 늘면서 크메르 제국의 서쪽 영토에 수코타이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로써 크메르 제국은 서쪽 영토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고 다시 북쪽에는 또 다른 타이계 국가인 란쌍 왕국이 생겨나 크메르 제국의 북쪽 영토 또한 상실하게 된다. 같은 시기 원나라의 침공을 받은 크메르 제국은 원나라에 대량의 공물을 바치고 굴복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막대한 국력과 위상이 손실되었다.

이후 타이족은 아유타야 왕국이 건국되고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를 공격해 완전히 초토화시키며 크메르 제국을 멸망시켜 버렸다. 그 이후로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역사의 주도권을 다시는 장악하지 못했으먀 서쪽의 태국과 동쪽의 베트남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굴종하는 역사를 갖게 된다. 이것이 캄보디아인들이 태국에 대한 강한 열등감과 적개심을 갖게 된 이유이다. 그리고 근현대 시대에 이르러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 라오스-베트남과 함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편입되었지만 태국은 단 한 번도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채, 독립을 유지했다.

현재로 돌아와 경제적으로 보면 태국이 캄보디아보다 훨씬 우월한 상황이다. 그러한 부분 등으로 인해 캄보디아인들 사이에서 태국에 대한 열등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정치적으로는 자치 및 독립 유지, 왕정 국가와 프랑스의 식민지 및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큰 차이도 있었고 프랑스가 태국과 전쟁을 벌여 많은 태국의 영토를 캄보디아에 합병시켜줬음에도 캄보디아는 과거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국경 분쟁을 벌였다. 태국 또한 프랑스와 전쟁에서 패배해 동쪽 영토의 상당부분을 잃었고, 해당 영토들이 캄보디아에 합병되면서 옛 고토 수복의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가난한 캄보디아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태국으로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고, 문화적으로도 태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기 때문에 태국에서 캄보디아를 멸시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태국인들이 본국에서 불법인 도박을 즐기기 위해 캄보디아로 온다. 특히 국경 도시인 포이펫에는 카지노가 많은데 대부분 중국인들 소유다. 이전에는 포이펫의 카지노들이 태국 부자들이 상당부분 소유했지만 최근에는 상당수의 카지노들이 중국에 매각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태국인들은 캄보디아 서부 국경 지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대로 프놈펜, 시아누크빌 등 동부 지역은 베트남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으며 최근에는 일대일로를 통해 들어온 중국인들이 치안을 어지럽히며 캄보디아 사업채 각지를 장악해 캄보디아는 거의 중국의 식민지와 다름없는 상태로 되어 가고 있다. 과거 태국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 지역을 일부 지배했던 적이 있었다. 애초에 씨엠립이라는 지명 자체가 '패배한 태국'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태국에서는 이 막대한 관광자원에 대한 야심을 공공연히 드러내 태국의 것이라 선전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2003년에는 태국 연예인이 방송 중 인터뷰로 앙코르와트가 태국의 것이라 말했다는 루머가 양산되었는데, 이에 태국 연예인인 본인은 부인했지만 성난 캄보디아 군중들에 의해 태국 국기가 불태워지고 대사관이 습격당하는 등 반(反) 태국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분쟁은 캄보디아 측에서 태국에 양보하면서 종결되었다. 그와 같이 종결된 이유는 캄보디아 자체의 발전 시설이 부족해 씨엠렙 지역은 태국에서 송전선을 연결해 전기를 쓰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이와 같은 반(反) 태국 시위가 벌어지니 태국은 즉시 씨엠렙 지역에 공급되는 전기를 차단했고, 결국 캄보디아가 항복하면서 상황이 종결된 것이다.

그러나 잠시 캄보디아가 항복했을 뿐, 여전히 사이는 좋지 않다. 2011년 2월에는 북부 쁘레아 비헤아르 지역에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 지역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원인  쁘레아 비헤아르(Preah Vihear) 사원 위치가 사원으로의 진입로는 태국에 있지만 사원 자체는 캄보디아 땅에 속해 있는 복잡한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 사원은 크메르 제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9세기 초에 건축되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10세기 초에 건축된 것이다. 9세기 초 크메르 제국의 왕인 자야바르만 2세의 아들 인드라유다 왕자가 힌두교의 시바신을 모시기 위해 성소를 건축했고, 크메르 제국이 불교 국가로 바뀌며 사원도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캄보디아가 안정을 되찾은 이후부터는 사원의 관리와 보호를 재개했고 200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을 두고 여전히 태국과 캄보디아의 사이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과거에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 지배할 때 지도상에 쁘레아 비헤아르(Preah Vihear) 사원을 캄보디아에 속하는 것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태국-캄보디아 간 분쟁의 씨앗이 되어 오늘날과 같은 교전이 발생한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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