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도입해 운영 중인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NURION)' 모습. (사진제공=KISTI)
[뉴스웍스=박광하 기자] 슈퍼컴퓨터 성능을 탑500(TOP500) 순위 하나로만 평가하면 인공지능(AI)·빅데이터 시대에 실질적인 역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터 집약 처리 역량을 측정하는 그래프500(Graph500), 저장장치 입출력 성능을 평가하는 IO500 등 다수의 지표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탑500에 집중된 상태다.
탑500은 매년 6월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 슈퍼컴퓨팅 컨퍼런스(ISC)와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슈퍼컴퓨팅 컨퍼런스(SC)에서 순위가 공개된다.
고성능 린팩(HPL) 벤치마크를 기반으로 시스템의 최대 부동소수점 연산 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1993년 등장 이후 고성능 컴퓨팅(HPC) 업계의 대표 지표로 자리 잡아왔다. AI와 빅데이터가 HPC 수요를 이끌기 시작하면서 단순 선형 계산 성능 하나로는 현대 슈퍼컴퓨터의 전체 역량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지표들이 등장했다. 그래프500은 2010년 도입돼 대규모 비정형 그래프를 대상으로 너비 우선 탐색(BFS)과 단일 출발점 최단 경로(SSSP) 알고리즘의 처리 속도를 초당 그래프 순회 엣지 수(GTEPS) 단위로 측정한다. AI 학습, 소셜 네트워크 분석, 생물 정보학 등 데이터 집약형 병렬 처리가 핵심인 분야에서 탑500보다 현실적인 성능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IO500은 파일 시스템의 입출력 처리 성능을 평가해 데이터 집약 환경에서의 실질적 역량을 보여주며, HPCG는 실제 과학 계산에 더 근접한 벤치마크로 활용된다.
이들 지표 순위도 탑500과 함께 ISC·SC 컨퍼런스에서 공개된다. 한국도 이 지표들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국가 5호 슈퍼컴퓨터 누리온(2018년 도입)으로 탑500뿐만 아니라 그래프500, IO500, HPCG 등에 결과를 제출해왔다.
박찬열 KISTI 초고성능컴퓨팅정책센터장은 "국내 슈퍼컴퓨터들의 경우 탑500 외에도 그래프500, IO500 등을 대상으로 결과를 제출하고 있다"며 "그래프500 SSSP 부문에서 누리온이 7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2024년 구축을 완료한 슈퍼컴퓨터 SSC-24는 지난해 6월 발표 기준 탑500 18위, 그린500 7위, IO500 4위를 기록해 국내 1위 슈퍼컴퓨터로 평가받고 있다.
양자 컴퓨팅 성능을 평가하는 국제 공인 벤치마크 순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박찬열 센터장은 "양자 컴퓨터가 아직 완전한 실용화 단계에 이르지 않아 공인 순위 자체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KISTI는 현재 6호 슈퍼컴퓨터 '한강(HANGANG)' 구축에 착수한 상태다. 지난해 5월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와 3825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으며, 올해 상반기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엔비디아 그레이스 호퍼 슈퍼칩 기반 'GH200' 8336개와 'H200' SXM GPU 160개 등 GPU 8496개를 탑재해 이론 최대 성능 600페타플롭스(PFLOPS)로 세계 10위권 진입이 기대된다. 양자 컴퓨팅 도입도 추진 중으로, 아이온큐와 100큐비트 양자 시스템 계약을 체결해 한강에 통합할 예정이다.
업계는 AI·빅데이터가 슈퍼컴퓨팅 수요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만큼, 탑500 중심의 성능 발표에서 벗어나 그래프500·IO500·HPCG 등 다각화된 지표를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컴퓨팅 인프라의 실질적 경쟁력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 체계를 갖춰야 국가 HPC 정책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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