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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탈맥락과 진보

영화 《연인》이 장자크 아노 감독 제작으로 상영되었을 때, 원작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는 이 영화는 내 작품이 아니라고 하였다. 읽으면서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가 끼어들곤 하지만 읽을수록 뒤라스가 왜 영화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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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주보기] 마르크리트 뒤라스 《연인》을 읽고(하채현)

이종근

2026년 07월 13일 14:59

승인

2026년 07월 13일 20:21

영화 《연인》이 장자크 아노 감독 제작으로 상영되었을 때, 원작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는 이 영화는 내 작품이 아니라고 하였다. 읽으면서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가 끼어들곤 하지만 읽을수록 뒤라스가 왜 영화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영화 시작 타이프를 치는 할머니, 각진 맥고 모자를 쓴 채 메콩강을 건너는 백인 소녀, 기숙사에서 모기장이 쳐진 침실에서 속삭이는 두 명의 소녀, 복잡한 베트남의 시장에서 농(베트남의 전통 모자)을 쓰고 멜대 양쪽에 과일이나 짐을 얹은 채 빠르게 걸어가는 할머니. 강렬한 영상 이미지가 책 안으로 펼쳐 들어 온다.

뒤라스가 쓴 문장들이 난해하여 나에게 영화 속 이미지가 더 도드라지는지 모른다.

뒤라스는 ‘자신의 쓰기가 자신의 공적인 삶이다’라고 말했다. 플로베르 못지않은 뒤라스의 작가 정신을 보여주는 말이다. 프랑스 문학 전공자이자 번역자인 신유진 작가는 한 강연(전주 완산도서관)에서 뒤라스 문학의 특징을 4가지로 설명했다. ⑴ 자전성과 허구의 경계 ⑵ 파편화된 서사 구조 ⑶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문체 ⑷ 식민지성과 젠더. 그러면서 신 작가는 ‘이 네 가지 특징이 별개가 아니고 하나로 얽혀서 뒤라스 작품의 언어에 리듬감을 싣는다’라고 알려주었다.

특히 경계, 파편화, 식민지와 젠더를 간직한 문장은 인과를 벗어나 흐름이 끓기고 이미지만 떨어져 나오는 방법으로 씌어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연인》은 감정의 결이 덩어리를 이루어 불편한 독서 경험을 주므로 신선한 몰입을 선사한다. 나는 이러한 특징을 ‘탈맥락화’라고 부르고 싶다.

호모사피엔스를 크게 두 종류 인간으로 나누어보자. Femle, Male. 둘은 다른 동물이어서 화성에서 오고 금성에서 왔다는 말도 있다. 만약 한 종류만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멸종했을 것이다. 종족 번식 때문이 아니다. 종의 다양성이 줄어서이다. ‘이해’와 ‘소통’ 능력이 발달하지 못하므로 사회 형성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인간 혹은 동물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인류를 돌봄과 배려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인류의 발전은 ‘발명하고 발견하는 역사적 사실’로 가능했다기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보고,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불편한 갈등을 반복하면서 이루어졌다’라고 본다. 나는 이것을 진보의 동력으로 느낀다. 다시 말해 여성적 시각의 딴지 걸기가 세상의 진보를 보장한 힘이다.

뒤라스의 문장은 탈맥락을 통해 시간적 서사를 거부하고 기억의 덩어리를 이미지로 표현했다. 뒤라스는 이렇게 쓸 수 있는 자신만의 서술자를 키운 후에 ‘뒤라스는 뒤라스가 아니고 뒤라스가 쓴 문장이 뒤라스’라고 공언하였다. 《연인》을 읽다 보면 감정의 격렬히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 호흡이 가파르게 치닫는 부분에 다다른다.

《연인》의 주요 공간은 베트남 사이공의 chợ lớn(촐론)이다. chợ는 ‘재래시장’이고, lớn은 ‘커다랗다’라는 말이다. 연인이 만나는 공간은 활력이 넘치고 커다란 곳이어서 시끄러운 소리 속에 둘의 엇갈린 욕망이 시장 속 사람들의 세상 말들과 묘하게 뒤섞인다. ‘이 봐요, 안 돼요, 싸게 팔아요, 아니 아니에요, 그래요, 어머 도둑이네......’. 뒤라스는 18살에 이미 늙어버린 소녀의 마음을 아마도 이미지와 감정으로 다루었다. 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탈맥락 문체와 전통 서사를 거부하는 이야기체가 낯설면서도 공감이 간다. 뒤라스에게 뒤라스의 어머니는 사랑이자 증오이며 수치이자 동정이었다. 뒤라스의 결핍은 뒤라스 예술의 원천이자 알코올 중독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물건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초기의 진동을 이겨낼 수 없을 때, 드라이브로 도저히 나사를 풀 수 없을 때, 내가 타는 자전거의 안장을 내가 풀 수 없을 때 등등 나는 고등학교 때 농구대를 남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농구를 못하고 창밖으로 구경만 하던 마음이 떠오른다. 운동장을 달리는 혹은 걷는 여학생을 가만두지 않던 사람들의 입방아도 떠오른다. 이런 경우는 살아오는 내내 너무 많았다. 지금도 많다. 인류의 생산물이 한 종류의 인간의 근육에 맞춰져 있고, 인류의 여가 공간이 한 종류의 인간만을 위한 것이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여러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동등한 참정권이 1928년에야 영국에서 주어졌는데 시민의 정치 참여는 고대 아테네 시절부터 있던 일이었다. 참정권을 얻었지만 여전히 경직된 관념은 미세한 일상에서 뭔가 조화롭지 않은 것을 강요한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일지어다?

두 명의 오빠와 홀어머니를 둔 뒤라스였다. 자유롭고 싶은 마음에 시도했던 무수한 좌절은 뒤라스에게 고통이었다. 고통 속에서 그는 감정의 결을 탈맥락 서사로 구축함으로써 《연인》에서 모든 거짓 권위를 비웃으며 야생적이고 강렬한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이전에 전혀 합치된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던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하여 진보의 방향을 텄다.

하채현 작가는

베트남한국어교육공부모임 회원

군산대 인문도시센터 공동연구원

자작자작글쓰기공작소 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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