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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탄소 중립 목표, 그 숫자 뒤에 숨은 의미는

2024년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온실가스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423.9ppm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기후 과학이 설정한 마지노선인 1.5℃ 상승 기준도 처음 돌파했다.

탄소 중립 목표, 그 숫자 뒤에 숨은 의미는

수도권 전력 집중 해소와 불필요한 송전선로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용인 국가반도체산업단지 재검토 전국행동’ 회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를 촉구하며 전국행동 출범을 선언했다.

[충청리뷰 최산 기자] 2024년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온실가스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423.9ppm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기후 과학이 설정한 마지노선인 1.5℃ 상승 기준도 처음 돌파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올해가 지구 탄소 흑자예산을 유지하는 사실상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위기의 최전선 중 하나가 지방정부다.

충북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청주시는 156개 탄소 중립 과제를 추진 중이다. 2024년에는 24만 8900t을 감축해 19.3% 달성이라는 성과도 발표했다. 수치만 보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숫자들이 실제로 누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산업 성장과 에너지 전환 사이에서 어떤 갈등을 빚고 있는지, 또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하고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충북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주>

"모두의 위기"이지만 같은 위기는 아니다

발표된 숫자들은 누구의 생활과 연결되어 있는가. 이차전지 공장 인근 주민이 마시는 공기의 질은 탄소중립 이행 점검표에 없다.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올라가는 동안 그 사업의 이익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지 묻는 항목도 없다. 충북 농촌에서 에너지 빈곤 상태로 겨울을 나는 고령 가구가 몇인지는 감축 달성 보고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충북 전역을 관통하게 될 송전선로가 지역 주민에게 무엇을 남기는지도 묻지 않는다.

프랑스 경제학자 뤼카 샹셀은 저서 '지속불가능한 불평등'에서 이렇게 썼다. "환경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비용과 이익을 측량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정치적 행위다. 공적 토론에서 특정 측정 체계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행위주체는 그 토론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 무엇을 측정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권력의 언어라는 이야기다. 충청 지역 기후·에너지 정책이 표방하는 숫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실제로 누구의 삶에 닿아 있는지, 어떤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이 물음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기후위기 앞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충분한 말은 아니다. 샹셀은 같은 책에서 이렇게도 썼다. "현대사회는 환경 위험과 그 위험에 대처할 수단을 사회적으로 불공평하게 분배하고 있다. 그로써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은 자동으로 강화된다."

폭염이 찾아왔을 때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과 야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조건은 같지 않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서로 다른 현실을 산다.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 고지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저지대 농가에 사는 사람이 겪는 위험의 크기도 다르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것이 각자의 삶에 착지하는 방식은 계층에 따라, 사는 곳에 따라, 나이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고 기후위기를 계급 문제로만 읽어서도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인도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티는 "자본주의의 위기와는 달리 이 문제는 부유층과 특권층을 위한 구명정이 없다"고 썼다. 기후 혼란이 깊어지면 결국 부자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그렇다고 "모든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한 인과성의 짐을 진다"는 말로 불평등한 책임과 피해를 지워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붙들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모두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극도로 불균등하게 배분된다. 충북의 기후정책이 표방하는 '탄소 감축' 숫자가 이 불균등한 현실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들여다볼 지점이다.

충북의 속도는 왜 세계와 달랐나

지난해 학술지 ‘ECO’에 흥미로운 연구가 실렸다. 김지혜 외 연구자들은 이산화탄소 농도, 에너지 소비, 산림 손실 등 24개 지표를 한국 데이터로 다시 그려봤다. 전 지구적으로는 1950년대 이후 곡선이 급격하게 꺾인다.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대가속'이라 부른다. 그런데 한국 데이터는 달랐다. 꺾이는 지점이 1970년대였다. 전 지구적 기준점과 20년이 어긋났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 찾는다. 그 시간들이 성장을 지연시켰고 지연된 만큼 이후의 변화는 더 압축적으로 폭발했다. 실질 GDP, 이산화탄소 배출량, 에너지 소비, 자동차 등록 대수가 동시에 가파르게 올라가는 시기가 1970년대부터 시작된다. 연구자들은 이를 '압축적 근대성의 생태학적 표현'이라고 불렀다.

충북도 이 압축 속에 있다.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를 세 축으로 한 충북의 산업 성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속도로 진행 중이다. 실질 지역내총생산은 지난해 1분기 2.3%를 시작으로 2분기 7.0%, 3분기 3.4%, 4분기 4.7%를 기록하며 전반적으로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가 연중 제조업 생산 증가를 뒷받침했다.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1분기 3.2%, 2분기 12.9%, 3분기 5.5%, 4분기 8.5%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견인했다.

그런데 이 성장이 충북의 탄소 배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탄소중립 이행 점검표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산업 성장과 탄소 감축이 충돌하는 이 지점은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떤 성장을 선택할 것인지, 그 비용을 누가 지는지에 관한 정치적 질문이기도 하다.

충북도는 지난 1월 20일 탄소 중립과 녹색성장을 위한 위원회를 개최하고 온실가스 감축 대책을 점검했다.

이차전지, 기후 해결사?

충북의 이차전지 산업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탄소중립의 핵심 산업'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배터리는 전기차 확대를 가능하게 하고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쓰인다. 이 역할이 없다면 재생에너지 전환 자체가 어렵다.

이차전지 분야는 청주 오창을 중심으로 국내 최대 배터리 전주기 지원 클러스터를 구축 중이다. 배터리 소재·부품 분석부터 셀·모듈·팩 제조, 화재안전 및 성능평가, 공정 고도화까지 지원하는 BST-ZONE이 사업비 444억 6000만 원을 투입해 운영 중이다.

2026년부터는 전고체전지 소재개발 지원센터, EV용 배터리 화재안전성 평가센터가 순차 준공된다. 정부도 2030년까지 1조 원 이상을 배터리 R&D에 투자해 탄소 배출량 25% 이상 감축을 목표로 세웠다.

그런데 이차전지 제조 과정 자체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배터리 셀 생산 공장 하나가 연간 수십만 MWh의 전력을 쓴다. 리튬·코발트·니켈 같은 핵심 광물을 채굴하고 정제하는 과정에서도 화석연료가 대량 투입되고 화학물질 유출 위험이 동반된다. 폐배터리 처리도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상업용 리튬이온전지 재활용률은 30~50% 수준에 그치고 처리 과정에서 유해물질 누출 위험도 존재한다.

즉 이차전지는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그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새로운 환경 문제를 만들어내는 산업이기도 하다. 충북이 이차전지 클러스터를 키울수록 두 면이 동시에 커진다. 탄소중립 성과 지표에는 배터리가 가능하게 하는 전기차 보급 효과는 잡히지만 오창 공장에서 소비되는 전력량과 그 전력이 어디서 오는지는 따로 묻지 않는다.

유럽은 이 문제를 이미 규제로 연결하고 있다. EU 배터리 규정이 시행됨에 따라 탄소발자국 라벨링이 의무화된다. 충북의 이차전지 기업들이 유럽에 수출하려면 제조 공정에서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들이 이미 RE100 선언을 마쳤고 이들 기업과 공급망을 구성하는 충북의 중소 제조업체들도 머지않아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받게 된다. 이는 기업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충북 탄소중립 정책이 산업 현장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바이오와 반도체도 마찬가지 구조를 안고 있다. 오송 바이오밸리의 제약·의료기기 생산시설은 냉동·멸균 등 공정에서 에너지 소비가 크다. 청주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소비하는 전력은 충북 전체 산업 전력 수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충북이 자랑하는 세 개의 성장 엔진은 하나같이 대량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충북의 에너지 자급 구조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그 전력이 석탄에서 오는지 재생에너지에서 오는지가 탄소중립의 실질적 성패를 결정한다.

에너지 전환, 누구의 전환인가

역사학자 티머시 미첼은 저서 ‘탄소 민주주의’에서 에너지 시스템의 물리적 특성이 정치 구조를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석탄 시대에는 광산에서 철도를 타고 발전소와 공장으로 이동하는 에너지 흐름을, 그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막을 수 있었다. 에너지 공급이 멈추면 사회 전체가 멈췄다. 그 힘이 협상력이 됐고 투표권과 노동권으로 이어졌다. 반면 석유로의 전환 이후 송유관은 인간의 개입 없이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미첼은 그 전환이 단순한 에너지원의 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조건을 바꾼 사건이었다고 본다.

지금 진행 중인 재생에너지 전환도 같은 물음을 품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더 민주적인가. 누가 그것을 소유하고 누가 이익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라즈 파텔과 제이슨 무어는 공저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자본주의는 성장을 위해 언제나 저렴한 자연, 저렴한 에너지, 저렴한 노동을 필요로 해왔다고 분석했다. 에너지원만 바꾸고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전환은 진짜 전환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충북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이 연재는 그것을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 안에서 들여다볼 것이다.

갈등이 있는 곳에 정책이 있어야 한다

환경 문제를 연구해온 마르티네스알리에르는 세계 각지의 환경 갈등 수천 건을 모아 EJAtlas라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자원 개발, 발전소 건설, 폐기물 처리 등을 둘러싼 주민 저항 사례들이다. 그가 이 방대한 기록에서 거듭 확인한 것은 하나다. 환경 문제는 항상 누군가에게 유리하고 누군가에게 불리하게 배분되며 이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갈등과 저항이 발생한다. 충북에도 이 지도가 필요하다.

정부와 업계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가 최대 약 15GW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는 원자력발전소 여러 기의 발전량에 맞먹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국전력, 한국수자원공사, LH 등과 함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인프라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는 2030년대 중반까지 단지 내에 LNG 발전소를 여러 기 건설해 약 3GW 규모의 전력을 마련하고 7GW 이상 규모의 부족한 물량은 서해안과 동해안 등 전력 여유 지역에서 초고압 송전망을 통해 공급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 과정에서 충북을 포함한 중부 지역에 송전선로 등 전력 인프라 확충이 추진된다.

충북도의회는 지난해 12월 결의안을 채택하며 정면으로 반발했다. 결의안은 "비수도권을 단순한 전력 공급지로 전락시키는 전력망 구축 방식은 지역 수탈형 전력망 구조"이며 "이재명 정부가 강조한 국가균형발전과 에너지 정의에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충북 시민사회단체들도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비수도권에 송전탑 건설 등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수도권에 공장이 들어서고 그 공장을 돌릴 전기를 실어 나를 송전탑은 충북 농촌과 산지를 관통한다. 반도체 산업의 이익은 수도권에 집중되고 환경 훼손과 재산권 침해는 충북 주민이 감당한다. 이차전지·반도체·바이오로 산업은 성장하고 그 성장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위한 인프라 비용은 지역 주민이 짊어지는 이 구조가 충북 탄소중립 정책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다. 마르티네스알리에르가 전 세계 환경 갈등에서 반복해서 확인한 그 패턴인 ‘이익은 외부로, 비용은 지역으로’가 충북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앞으로 물어볼 것들

이차전지·반도체 클러스터가 성장할수록 충북의 전력 수요는 어떻게 변하고 있고 그 전력은 어디서 오는가. RE100을 선언한 대기업 공급망 안에 있는 충북 중소기업들은 실제로 어떤 조건에서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가. 재생에너지 사업의 이익이 지역 주민에게 돌아오는 모델과 그렇지 않은 모델은 무엇이 다른가. 지방선거에서 나오는 기후 공약들은 이 질문들에 실제로 답하고 있는가 등등.

다양한 기후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숫자만으론 알 수 없다. 그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비용을 치르는지, 어떤 갈등이 그 뒤에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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