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한 모습. 사진 ‘옥탑방의 문제아들’ 방송 캡처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연예계·산업계·공공부문 전반에서 이른바 ‘역사 리스크’가 확산하는 모양새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파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최근 인천시가 광복절 현수막에 태극기를 거꾸로 그렸다는 지적이 나온 뒤 이를 철거하는 일도 있었다. 뉴발란스 역시 태극기 문양을 잘못 표현한 상품을 판매했다가 사과하고 판매를 중단했다. 스타벅스는 ‘탱크데이’ 논란 후폭풍으로 27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영업적자를 냈다.
주목할 점은 이전 세대에 비해 역사 문제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2030세대가 이 같은 논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 하영 논란 당시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친일파 후손이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잇따랐고, 기업과 공공기관의 역사 인식 부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역사 문제 자체보다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특권과 책임, 공정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현재의 ‘공정’ 틀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광복절 '매국노 조롱잔치' 열어
15일 열리는 '매국노 조롱잔치'. 사진 김하은씨
이런 흐름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는 문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광복절 당일 MZ세대가 친일파와 매국 행위를 대놓고 조롱하는 이색 팝업 행사를 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역사 크리에이터 모임인 ‘이순신사랑단X세종대왕사랑단’은 15일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 서울 서대문구 옥바 카페에서 ‘제1회 친일파 척결 카페-매국노 조롱잔치’를 개최한다. 을사늑약 체결에 주도한 이완용을 저격한 ‘이완용 간땡이 스퀴시’를 비롯해 ‘세종 유언 키링’ ‘거북선 클리커’ 등 자체 제작 굿즈를 판매한다. ‘815라떼’ ‘왜군 블러드 레드’ 등의 이름을 붙인 음료도 맛볼 수 있다. 이외에도 친일파 제거 능력 검정시험, 욱일기 찢기 체험, 한국사능력시험 1급 취득자는 무료로 촬영할 수 있는 포토부스 등의 참여형 콘텐트도 마련했다고 한다.
15일 '매국노 조롱잔치'에서 판매하는 '이완용 간땡이 스퀴시'. 사진 엑스(X)
가벼운 형식이라고 해서 역사적 고증을 소홀히 한 건 아니다. 지난 2024년 ‘세종대왕 생일카페’ ‘이순신 생일카페’를 기획했던 운영진이 의기투합해, 세종실록 전문 강연자에게 자문까지 받아 행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행사를 기획한 30대 직장인 김하은씨는 “국가기관이 주최하는 광복절 공식 행사와 달리 개인은 친일파를 자유롭게 풍자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했다”며 “역사를 어렵고 무겁게만 소비하지 않도록 일부러 B급 코드를 차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름만 들어봤던 을사오적·정미칠적 개개인의 친일 행적을 구체적으로 공부하게 된 점도 의미 있었다”고 덧붙였다.
2024년 열린 '세종대왕 생일파티'. 사진 김하은씨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무거운 역사를 유쾌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2030세대가 익숙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며 “놀이 요소를 활용하더라도 역사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아미 기자 lee.ah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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