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제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역설적으로 진단 기술의 가치가 치료제 그 이상으로 치솟고 있다. 진단이 단순히 병명만 확인하는 단계를 넘어 신약의 효능을 확인하고 국가 경제적 손실을 막을 방법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매는 뇌세포가 파괴된 후 증상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뇌 손상이 시작돼 실제 망각 증상이 나타나기까지는 보통 15~20년의 잠복기가 있다. 이에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치매 환자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느냐가 현대 진단 기술의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다.
◆신약 시대 열리자…사전 필수 관문된 진단
20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제약사 에자이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키썬라(성분명 도나네맙) 등 최신 알츠하이머 신약은 뇌 속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직접 제거하는 기전을 가진다. 즉 뇌에 아밀로이드가 축적된 것이 확인된 환자에게만 투약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의료진의 문진이나 증상만 보고 치매를 진단했지만 이제는 신약을 투여하기 전 반드시 뇌 속 단백질 상태를 생물학적 지표(바이오마커)로 확인해야 한다. 진단 기술이 이제 치매 치료를 위한 사전 필수 관문이자 신약 처방의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치매는 조기 발견이 치료의 질을 결정한다. 실제 현재의 신약들은 뇌 손상이 심각한 중증 환자에게는 효능이 미미하다. 뇌세포가 살아있는 초기 단계나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환자를 선별해야만 약물의 지연 효과를 극대화해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또 현재 확진용으로 쓰이는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스캔은 정확도는 높지만 1회당 수백만원에 달하는 높은 비용과 장비의 한계로 대형 병원에만 쏠려 있다. 이를 대체할 혈액 진단이나 인공지능(AI) 영상 분석 기술이 상용화되면 치매 진단의 문턱을 낮추고 전 국민적 치료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국가적 관점에서 봐도 치매 환자 한 명을 중증으로 넘기지 않고 경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수조 원의 사회적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향후 발생할 막대한 돌봄 비용과 의료 재정 파탄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적 복지의 핵심인 셈이다.
◆"피 한 방울로 치매 잡는다"…커지는 K진단 기술력
치매 정복의 전제 조건인 조기 진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내 바이오텍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혈액 진단과 의료 AI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쌓아가고 있다.
피플바이오는 독자적인 'SI-MDS' 기술을 통해 뇌 손상의 주범인 응집된 베타 아밀로이드만 선택적으로 측정한다. 10만 원대의 비용으로 피 한 방울만 있으면 알츠하이머 위험도를 판별할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2019년부터 공급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뉴로핏은 딥러닝 기반의 뇌영상 분석 기술을 활용해 뇌질환의 진단, 치료 설계 및 치료용 의료기기 솔루션을 개발하는 전문 기업이다. 핵심 제품인 'AQUA(MRI 기반 뇌 신경 퇴화 및 손상 분석 소프트웨어)'와 'SCALE PET(PET 영상 화학표지자 자동 정량분석 소프트웨어)'을 통해 뇌 위축 정도와 아밀로이드 축적량을 정량화해 초정밀 진단을 구현한다.
스마트폰 사용 패턴이나 음성, 걸음걸이 등을 분석해 전조 증상을 포착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세븐포인트원은 대화 중 단어 선택이나 말의 속도 등을 AI로 분석해 인지 저하 여부를 판별하는 솔루션을 개발했으며 이모코그는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강력한 치료제가 있어도 병이 생기는 위치를 모르면 무용지물"이라며 "뇌 속의 미세한 변화를 미리 발견하면 치료 효과는 극대화하고 위험은 최소화할 수 있어 정밀 진단이야말로 신약 처방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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