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주재)
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 1.7%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22개 경제 선진국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4분기 바닥권에서 석달만에 선두로 널을 뛰었다. 분기 성장률 1위는 16년만에 세운 기록이라고 한다. 박수로 맞을 경사지만 수치에 드리운 그림자 때문에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다.
급상승한 성장률은 전적으로 인공지능(AI) 열풍에서 비롯된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 호황에 기인했다. 1분기 수출이 5.1%나 증가했는데 반도체 비중이 37%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글로벌 기업의 눈부신 선전이 견인한 실적이다. 두 기업의 호황이 없었다면 1분기 성장률은 0.8%에 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가 경제가 두 반도체 기업의 성패에 좌우되는 불안한 구조가 다시금 실체를 드러난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시장의 변동에 대비해 미래 성장동력을 키워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당분간 호조세가 예상되는 국제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와 전략도 절실하다.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 등 기술 강국들이 반도체 패권에 사활을 걸고 우리를 맹추격 중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300조원, 내년 400조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어마어마한 흑자 행진이 예상되지만, 그 과실에 취해 방심했다가는 `일장춘몽'을 맞게 될 것이란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삼성전자가 `파업'이라는 암초를 만나 기우뚱 거리고 있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달라며 상한제 폐지와 명문화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회사는 연봉의 50%까지로 제한한 상한선을 유지하되 특별포상을 영업이익 1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예고한 파업이 사흘 앞으로 닥쳤으나 협상은 결렬의 연속이다. 정부의 중재도 무위에 그쳐 설마하던 파업이 실제 상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급기야 정부가 긴급 조정권을 들고나왔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어제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을 포함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겠다”며 "노사가 상생 해법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노조법은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나 국민 일상에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있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30일간 파업이 중단되고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절차를 주도한다. 노동권 침해라는 비판이 초래되고 노정이 극단 대립으로 치달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지금까지 4차례 밖에 발동되지 않은 이유이다.
JP모건은 노조가 18일간 파업을 실행하면 삼성이 최대 31조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피해는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한다. 노조가 결단만 하면 생산라인이 멈춰질 수 있다는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지며 삼성의 대외 신인도는 추락하는 모양새다. 우선 애플, HP 등 삼성으로부터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받는 주요 고객사들의 동요가 심상찮다. 파업이 현실화 할 지, 공급은 얼마나 차질을 빚게될 지 묻는 문의가 삼성에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삼성에 의존해온 빅테크 기업들이 삼성을 대체할 공급망 물색에 나서 중국 반도체 기업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마당에 파업이 강행된다면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삼성의 추락을 넘어 반도체를 발판 삼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나라 경제도 늪에 빠질 수 있다. 오늘 오후 삼성 노사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만나 대화를 재개한다고 한다. 파업을 막을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다. 그제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불안과 신뢰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전 세계 고객들과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오늘 노사 회동에서 고객과 국민이 삼성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을 지혜로운 절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의료 엘리트들의 밥그릇을 향한 질주에 절망했던 국민들이다.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이다.
권혁두 국장(영동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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