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술혁신학회, 글로벌 심포지엄 개회
국내외 혁신 연구자 100여명 한자리에
한국기술혁신학회는 지난 27일 한국 국가혁신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탐색을 주제로 글로벌 심포지엄을 열었다.[사진= 한국기술혁신학회]
한국의 국가혁신시스템(K-NIS)이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는 진단이 국내외 혁신 석학들로부터 동시에 쏟아졌다.
한국기술혁신학회(KOTIS)는 지난 27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사이언스홀에서 '한국 국가혁신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탐색'을 주제로 'KOTIS 글로벌 심포지엄 2026'을 개최했다. 국립한밭대 미래법정책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경상대 과학기술정책학과·기술경영학과가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혁신 연구자와 정책 실무자, 대학원생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영국 서식스대 SPRU(과학정책연구소), 맨체스터대, 보스턴대 등 세계 유수 기관 소속 석학들이 대거 참여해 한국 혁신시스템의 역사적 궤적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미래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펼쳤다.
기조강연은 서식스대 SPRU 디렉터인 제레미 홀(Jeremy Hall) 교수가 맡았다. 홀 교수는 1966년 크리스 프리먼이 설립한 SPRU의 60년 연구 유산을 돌아보며, 현대 과학기술혁신 정책이 직면한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혁신은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하며, 사회과학의 비판적 사고를 통해 혁신 역량을 높이면서도 부정적 결과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SPRU가 현재 추진 중인 '베넷 혁신 및 정책 가속화 연구소' 설립을 소개하며, 기후변화 같은 복합적 사회 난제 해결에 과학기술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폴 나이팅게일(Paul Nightingale) 서식스대 교수는 한국의 경제 성장을 "역사적으로 극히 드문 성공 사례"라고 평가하면서도 냉정한 진단을 내놨다.
나이팅게일 교수는 "이미 기술 프론티어에 도달한 한국이 여전히 실리콘밸리식 혁신 모델을 지향하는 것은 의문"이라며, "새로운 지정학적 긴장과 기후·인구·안보 변화에 대응하려면 R&D 중심 혁신을 넘어 기술 확산·디자인·시스템 통합을 아우르는 새로운 형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 종합 라운드테이블에서 "정부 주도 혁신 방식이 혁신 주체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것이 한국 시스템의 구조적 약점"이라고 짚었다.
전남대의 서일원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한국 혁신시스템은 '연료 공급(Fueling)'에서 '조타(Steering)'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연구비 투입 같은 양적 확대만으로 혁신을 이끌던 시대는 지나갔으며, 이제 정부는 혁신의 방향을 설정하고 질적·시스템적 접근으로 근본적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희권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은 2005년 연구개발특구 지정 이후 20년간의 성과를 소개했다. 특히 2026년 1월 기준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대덕·충청 지역 비중이 81%에 달한다는 수치가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 이사장은 연구소기업(RBSC) 제도와 이노폴리스 펀드를 핵심 성공 요인으로 꼽으며, 딥테크 사업화 허브로서 대덕의 역할을 강조했다.
맨체스터대 코넬리아 로슨(Cornelia Lawson) 교수는 AI와 연구 장비가 지식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는 AI 기반 연구 확산이 지식 생산성을 높인 것은 분명하지만 창의성에는 한계가 있고, 생산된 지식의 검증이라는 부가 업무가 발생하는 '생산성의 역설'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데이터 분석을 통해 연구 장비는 도입 후 약 8년 이내에 과학적 성과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며, 도입 초기 과학적 활용을 우선하는 정책을 제언했다.
벤자민 소바쿨(Benjamin Sovacool) 보스턴대 교수는 지속가능성 전환 이론들의 체계적 분류 연구를 발표하며 "단일 이론으로 복잡한 사회기술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이론적 독단주의를 경계하고 방법론적 다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STEPI의 박동운 박사는 한국의 혁신시스템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K-Innovation' 사업을 소개했다. 캄보디아 사례를 대표 성과로 제시하며, 현지 맥락에 맞춘 지식 공유와 정책 설계를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ODA에 대한 인식 변화와 국가별 맞춤 전략 수립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행사에 앞서 열린 저널 워크숍에서는 장영하 서식스대 교수의 진행으로 소바쿨, 오트너, 나이팅게일 교수가 세계적 학술지 게재를 위한 실질적 전략을 공유했다. 신진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권기석 한국기술혁신학회 회장은 "저성장·인구감소·지정학적 불안정이라는 복합적 위기에 처한 한국이 새로운 혁신 경로를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한국 혁신 연구가 세계적 연구 공동체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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