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과학기술부 기자
소정은 중단발에 다홍색 교복을 입고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었다. 화장기가 옅었고 웃을 때면 꼭 고개를 숙였다. 대학 시절 교육 봉사활동에서 만난 그는 나에게 대학에서 배우는 일반물리학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학교 성적도 준수했고, 과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쓸데없는 일 같았다. 단순히 지적 허영이 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첫 수업, 나는 왜 이걸 공부하고 싶냐고 물었다. 어차피 대학에 가면 지겹게 볼 터다. 돌아온 답은 엉뚱했다. 열 살 이후로 어머니를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온다, 어린 동생이 두 명이다. 소정의 표정이 너무 해맑아서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왜 일반물리학이 공부하고 싶은 건지 난 이해를 못했지만, 묻지 않았다.
언젠가 소정은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시골이라 별이 잘 보였다. 자기가 천문학자가 될 수 있겠냐고 내게 물었다. 아마 어려울 거라고 했다. 무책임한 희망이 싫었다. 소정은 알고 있다고 했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깨고 나는 자유낙하운동의 역학적 에너지를 설명했다. 책 속에서 100㎏짜리 덩어리가 끊임없이 떨어졌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 하루에 2시간씩 만났다. 소정은 항상 30분을 걸어 내가 다니던 대학으로 왔다. 도착하면 저녁 시간 즈음이었다. 우리 학교의 학식은 맛없기로 유명했는데, 소정은 꼭 저녁으로 학식을 먹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물으면 소정은 말했다. "제가 지금 아니면 언제 대학생 흉내를 내보겠어요." 여전히 해맑은 표정이었고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수업 진도는 빨랐다. 소정의 부탁이었다. 반년이 지나지 않아 책 한 권을 얼추 마무리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쿼크, 경입자, 그리고 빅뱅'이다. 대학 1학년 수준이지만 마치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신비함이 느껴져 과학도들이 대체로 좋아한다. 소정은 평소보다 들뜬 표정이었고 질문이 많았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전부 훑고 2주쯤 지나자 소정은 그만하자고 했다. 바빠졌다고 했다. 나는 바쁜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한 달 뒤 나는 과외 자리를 하나 구했다. 교육열로 유명한 동네의 중학교 2학년생 4명이었다. 부모들은 파격적인 시급과 함께 택시비까지 주겠다고 했다. 과학고 입시생들이니 일반물리학을 수업해 달라고 했다. 첫 수업, 나는 학생들에게 꿈을 물었다. 방산기술 연구원, 유전공학자, 반도체 공학자, 소프트웨어 보안 전문가. 나는 그들에게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꿈은 클수록 좋다고 했다.
인류가 달의 뒷면까지 가는 시대. 누군가에게는 달보다 자신의 꿈이 더 멀다.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가닿았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자기 꿈에 닿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클수록 좋은 꿈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달의 뒷면으로 사람을 보내는 시대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다.
몇 년이 지나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소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공장에서 행정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직까지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과학의 달에, 달까지 간 아르테미스 2호를 보면서 소정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가 지금도 과학과 우주를 좋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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