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첨단산업 전력수요 대응…예측형 운영체계로 국가 공급망 고도화
AI 산업 확산과 전력수요 급증, 지정학 리스크, 탄소중립 압박이 동시에 커지면서 에너지 인프라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단순 저장·공급 기능에 머물렀던 LNG 기지는 이제 AI와 빅데이터, 디지털트윈 기술이 결합된 국가 핵심 전략 인프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를 맞아, 전국 LNG 터미널과 환상배관망을 운영하는 한국가스공사(KOGAS, 사장 최연혜)는 AI 기반 예측·자율운영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너지데일리는 AI가 바꾸는 LNG 기지 운영 패러다임과 국가 경제·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본다.
한국가스공사 본사 전경
“에너지 안보의 핵심은 결국 인프라”
국내 LNG 인프라 운영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숙련 인력의 경험과 정기 점검 중심이던 전통적 운영 체계가 AI 기반 예측·분석 체계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국가 에너지망 자체가 ‘디지털 인프라’로 재편되는 흐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최근에는 AI 산업 확대와 전력수요 급증, 지정학 리스크, 탄소중립 압박이 동시에 겹치면서 안정적인 가스 공급 능력이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현재 전국 5개 LNG 터미널과 약 1,216만㎘ 규모 저장시설, 5,206km에 이르는 전국 환상배관망, 433개 공급관리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당진 제5 LNG 기지 건설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저장·배관 인프라가 국내 에너지 안보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실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LNG 공급망이 흔들렸던 시기에도 국내 도시가스와 발전용 천연가스 공급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특히 전국을 연결하는 환상배관망은 특정 지역 공급 차질이 발생해도 다른 권역에서 우회 공급이 가능한 구조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이를 “보이지 않는 국가 기간망”으로 부른다.
다만 최근 에너지 시장 환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확대, 전기화 가속, 이상기후에 따른 냉난방 수요 증가로 전력과 가스 수요 변동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LNG 기지 운영 역시 단순 저장·공급 기능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가스공사와 KISA가 AI CCTV 구축·성능 고도화 협약을 체결했다.[사진=한국가스공사]
AI가 바꾸는 LNG 운영 방식…“예방형 관리체계로 이동”
한국가스공사가 최근 AI 기반 운영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당진 제5기지는 AI와 빅데이터 기반 ICT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LNG 기지 형태로 구축되고 있다. 설비 상태를 실시간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는 예측 진단 체계가 핵심이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12월 당진기지에 플랜트의 두뇌 역할을 수행하는 ‘통합 AI센터’를 개소하며 스마트 기지 전환에 본격 나섰다. 이 센터는 LNG 생산·저장·공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고,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설비 이상 징후를 사전에 예측하는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당진 LNG 생산기지에는 AI 기반 플랜트 시스템인 ‘BARAm(바람)’도 도입됐다. 플랜트 기동·정지 등 핵심 반복 공정을 자동화하는 ‘자동 운전 시스템’을 적용해 운전원의 생산설비 조작 빈도를 약 39% 줄이며 운영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LNG 기지 운영은 운영자의 경험 의존도가 높았다. 압축기와 펌프, 배관, 기화설비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이상 여부를 사람이 판단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AI가 방대한 운전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해 미세한 압력 변화와 진동 패턴, 온도 편차까지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를 “사고 이후 대응”이 아니라 “사고 이전 예측” 개념으로 설명한다.
실제 LNG 설비는 초저온·고압 환경에서 운영되는 만큼 작은 이상 신호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미세 데이터 분석 능력이 안전성과 직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숙련자의 경험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AI가 수만 개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해 사람이 놓치기 쉬운 패턴까지 찾아낸다”며 “국가 에너지시설 운영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가스공사는 현재 AI 기반 재난대응 플랫폼과 현장 영상 공유 체계도 운영 중이며, 향후에는 디지털트윈과 자율운영 기술까지 확대 적용해 LNG 생산·저장·공급 전 과정을 AI 기반으로 통합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 전용 AI 모델 ‘업무 Mate’ 오픈 전사교육[사진=한국가스공사]
“AI 산업 경쟁은 결국 전력 경쟁”
AI 기술 확대는 역설적으로 에너지 인프라 중요성을 더 키우고 있다.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면 서버 운영 자체가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빅테크와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천연가스 기반 전력망 확보에 집중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사카이 AI 데이터센터’, 미국 xAI의 ‘콜로서스 데이터센터’, 국내 SK그룹의 울산 AI 데이터센터 등도 안정적 전력 확보를 핵심 과제로 두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송형상 선임연구원은 “AI 산업 경쟁은 결국 안정적 에너지 확보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천연가스는 공급 안정성과 전력 품질 측면에서 여전히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LNG 발전의 역할이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태양광·풍력은 출력 변동성이 큰 반면 LNG 발전은 상대적으로 빠른 출력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전력망 구조가 ‘재생에너지+가스 기반 유연전원+AI 운영체계’ 조합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가스공사는 최근 천연가스를 넘어 수소와 저탄소 에너지 분야로 사업 범위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수소 생산기지 구축과 충전 인프라 확대, 수소 유통망 구축 사업 등을 추진 중이며 수소유통전담기관 역할도 맡고 있다.
또 e-메탄과 청록수소 등 차세대 저탄소 연료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기존 LNG 배관망과 저장 인프라를 활용해 미래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다만 업계에서는 해결 과제도 적지 않다고 본다. AI 기반 운영 체계 확대에는 막대한 데이터 축적과 보안 체계 강화가 필요하고, LNG 중심 구조가 장기 탄소중립 목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또 천연가스 가격 변동성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 역시 구조적 리스크로 꼽힌다. 그럼에도 에너지업계에서는 “AI 시대 국가 경쟁력은 결국 안정적 에너지 공급 능력에서 나온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AI 산업 전환,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LNG 기지 역시 더 이상 단순 저장시설이 아니라 데이터·AI·전력망이 결합된 국가 핵심 인프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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