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반발한 시민들이 지난달 7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재선거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광현 기자 maggie@incheonilbo.com
2026년 6월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주의 존립 기반인 '선거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시킨 전대미문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국민 참정권을 침해한 초유의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에 자발적으로 모였고 '국민주권 수호', '참정권 보장', '선거 제도의 근본적 개혁' 등 함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특히 이번 집회는 '2030 세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비상식에 맞서 무너진 원칙과 신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침묵을 깨고 행동에 나섰다.
취재진은 시민들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지난달 26일 오후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를 찾았다.
경기장 인근에는 '사전투표 폐지', '당일투표 수개표'라고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고 한쪽에는 시민이 직접 손팻말을 제작할 수 있는 부스도 운영됐다.
재선거 요구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규탄과 선거 제도 개혁 문구 등 시민들이 손수 적어 붙인 종이들이 경기장 주변 울타리를 빼곡히 채워 흡사 거대한 게시판이 됐다. 시민들은 서로 생수와 종이 모자를 나누고 격려하며 무더위 속에서도 밤낮으로 시위 현장을 지켰다.
이곳에서 만난 인천 연수구 주민 이민정(31)씨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집회장에 모이고 있다”며 “선거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실질적 개선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경기 의정부에서 온 박채현(58)씨도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다. 이번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생각해 광장에서 거의 생활하고 있다”며 “선거 결과를 떠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철저하게 규명해 선거 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가 회복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 선거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힌 종이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박예진 기자 yejin0613@incheonilbo.com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단순히 우발적 사고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숫자에 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예산을 유권자의 110%로 배정받고도 인쇄 매수 하한 기준을 60%에서 50%로 낮췄다. 선관위 '종합관리지침' 개정도 중앙선관위원 의결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결정하는 등 의사 결정 과정의 구조적 허점도 드러난 상태다.
더구나 투표용지 추가 교부를 위한 일련번호 기재 방식과 배부 절차에 관한 세부 지침은 마련되지 않았고 현장 대응도 미흡했다. 중앙선관위 자체 조사를 넘어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서 여야 정치권도 합심해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 절차에 착수했다.
여야는 지난달 18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출범하고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 27일 만인 이달 2일 처음으로 개표소에 진입해 투표지·투표함 보관 상태와 통제 현황을 점검했다.
특위 활동 기간은 45일간으로 중앙선관위와 각급 지역선관위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진다. 이달 중으로 추가 현장 조사와 두 차례 청문회를 진행하고 여야가 추천한 인물로 구성된 '전문가 예비조사단'을 꾸려 구체적 선관위 개혁 방안도 모색한다.
/변성원·박예진 기자 bsw906@incheonilbo.com
임지봉 서강대 교수 “선관위원 전원 상근화…法 개정해야”
총 9명 위원 중 상근 단 1명뿐
위원장 대법관, 年재판 3000건
선관위 업무 신경 쓸 겨를 없어
현직 판사 배제·감시 강화해야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제공=본인
“선거관리위원회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현실적 해법입니다. 당장 개헌보다는 법 개정만으로 풀 수 있는 부분부터 손봐야 합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4일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 준비 부실로 헌법이 보장하는 선거권이 침해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현실적 개혁 로드맵으로 선거관리위원회법 개정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근본 원인을 선관위 조직 구조에서 찾았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에서 각각 3명씩 선임해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관행적으로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이 위원장직을 맡는다.
문제는 선관위원 중 상임위원이 단 한 명에 불과해 실질적으로 조직 관리와 통제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헌법에서는 선거 관리 업무를 선관위원들로 구성된 합의제 기관이 주도하도록 돼 있으나 현실은 상근 사무처가 조직 운영과 선거 관리 전반을 전담하는 기형적 구조로 고착화한 것이다.
임 교수는 “위원장직을 맡는 대법관은 연간 3000건에 달하는 재판을 처리하다 보니 선관위 업무에 신경 쓸 겨를이 없고 조직 장악력도 약하다”며 “실질적 권한 행사는 사무총장이 이끄는 사무처가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투표용지 인쇄 하한 기준을 낮춘 것도 사무총장 전결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다만 선관위 개혁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우선순위는 선거관리위원회법 개정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헌은 여야 합의가 39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실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임 교수는 ▲선관위원 9명 전원 상근화 ▲현직 판사의 선관위원 위촉 배제 ▲내부 감찰 기능 강화를 3대 개혁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현직 판사가 선관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누구도 자신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언에 정면으로 반하는 구조”라며 “선관위원 전원을 상임위원으로 전환하고 선관위 내부 감사 조직을 외부 인사들로 구성해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폐지는 과거 관권 선거로 회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개헌은 장기적으로 추진해 외부 감찰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현실적 개혁 방향”이라고 피력했다.
/변성원 기자 bsw906@incheonilbo.com
이기우 인하대 명예교수 “중앙선관위, 기능·조직 전면 재정비를”
참정권 보장 본연 역할 해야
업무 확대가 사태 초래 원인
집행은 지자체·수사는 기관
선관위 총괄 관리 집중해야
▲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정부는 투명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참정권 보장과 공정한 선거 관리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14일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중앙선관위 기능과 조직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사·수사와 교육, 각종 선거 집행으로 업무가 과도하게 확대되면서 조직이 비대해졌고, 결국 참정권 보장이라는 본래 역할에도 허점을 드러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6·3 지방선거 당시 인천을 비롯한 전국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일시 중단됐고,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발길을 돌리면서 참정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는 선관위 개혁과 선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국민 참정권을 보장해야 할 선관위가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면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라며 “투표용지 수량이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 결정됐는지 정부와 선관위가 투명하게 규명하고 설명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 움직임을 단순한 보수화 현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정치권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표출된 결과로 봐야 한다”며 “정치권이 진상 규명을 미루면 국민 불신과 갈등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 근본 원인으로는 선관위의 비대해진 조직과 업무 구조를 꼽으며 선관위 기능 재조정을 선거 제도 개선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그는 “선관위의 본래 역할은 선거 관리 규칙을 마련하고 공정한 선거를 관리하는 것이지만, 현재는 업무가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관리 기관이 아닌 권력 기관처럼 운영되고 있다”며 “영국과 독일처럼 선관위는 선거 규칙을 마련하고 총괄 관리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선거 집행은 지자체가, 조사와 수사는 수사기관이 담당하도록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문제 상당수는 개헌 없이도 법률 개정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며 “이번 사태의 사실관계를 먼저 명확히 규명한 뒤 법률 개정을 통해 선관위 조직과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박예진 기자 yejin0613@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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