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숲] 숲은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의미에선 사람도 나무와 비슷합니다. 혼자였던 마음이 누군가를 만나 결합할 때 그것이 ‘삶’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박윤미 기자의 작은 숲’은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가진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 그것을 희생이 아닌 사랑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주인공 입니다. 그들이 일궈낸 [작은 숲]을 통해 독자 여러분 가슴에도 푸른 나무가 자라길 희망합니다.
첫 번째 혜진 씨가 사는 빌라로 밥 먹으러 오는 턱시도 고양이. 사진=월요신문
“저희 같은 캣맘들은 죽어야 끝난다고 누가 그러던데.”
첫 번째 혜진, 전혜진 씨는 큰 통에 담겨 있는 고양이 사료를 작은 통에 나눠 담으며 무시무시한(?) 말을 덤덤한 표정으로 꺼냈다. 길고양이 밥 주는 이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혜진 씨의 이 농담에 마냥 웃을 수 없다. 돈이 아닌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받아가며 하는 일. 칭찬 받기 위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욕먹자고 돈 써가면서 하는 일도 아닌데 길고양이처럼 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까지 할거냐”고. 정답이 있는 말인 줄 몰랐는데, 정답이 있었다. 죽어야 끝이 난다.
서울의 한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15년, 9년 동안 밥을 주며 공생한 두 혜진이 있다. 한 명은 전 씨(48), 또 다른 한 명은 강 씨(47)다.
*길고양이들의 밥을 주는 위치가 노출될 경우 길고양이도, 캣맘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실제 그런 일들이 왕왕 있었다. 하여, 이 기사에서는 지역을 특정하지 않기로 했다. 독자들께 양해를 구한다.
첫 번째 혜진
고양이들 밥 주려고 집까지 옮긴 삶
나지막한 산과 그 초입의 작은 공원. 이곳을 마주한 오래된 빌라 하나가 있다. 이 건물의 핫스팟은 암만 봐도 비좁고 낡은 주차장. 이곳에 고양이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혜진 씨의 차 한대가 덩그라니 놓인 주차장엔 일정한 시간이 되면 고양이들이 알아서 집결한다. 밥 엄마가 부르지 않아도 배꼽시계는 정확하게 울린다. 이 자리에서 시작되는 길고양이 밥 셔틀(?)은 공원으로, 산으로 이어진다. 하루 3시간 이상을 길 위의 생명에게 쏟는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루의 1/8이다.
첫 번째 혜진 씨의 빌라 주차장에서 시작된 인터뷰. 두 번째 혜진 씨는 쪼그려 앉아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고 있다. 사진=월요신문
혜진 씨의 밥을 먹는 고양이는 하루 평균 30여 마리. 대부분 밥 먹고 갔다 싶은 날은 50마리 고양이 앞에 밥그릇을 내려놨다. 이 시간, 혜진 씨의 허리는 수백 번 접히고 펴진다.
혜진 씨는 2011년부터 길고양이 밥을 챙겼다. 벌서 15년이 넘었다. 비나 눈, 푹푹찌는 여름과 손가락이 얼어버릴 것 같은 겨울에도 길 아이들의 한 끼를 위해 집을 나섰다.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고, 다섯 바늘을 꿰매야 했던 날에도 절뚝이며 고양이들의 밥을 챙겼다.
그러니 “밥을 못 주는 날도 있냐”는 질문은 불필요한 것이리라.
“이 빌라 주차장이 되게 좁아요. 딱 내 차(경차)만 들어올 수 있어요. 그래서 여기 아무도 안 오거든. 애들 겨울집 놔주고 여기서 밥 주고 그러기 딱 좋아요.”
혜진 씨의 집을 보는 안목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저 공원과 가깝고 고양이들이 숨어지낼 공간이 있는 곳. 그런 곳이라야 혜진 씨가 두 발을 뻗고 잠들 수 있다.
혜진 씨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건, 버려진 세 마리 개들에게서 시선이 확장되면서다. 떠돌이 개들을 위해 놓아둔 사료를 길고양이들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그의 눈에 크게 들어왔던 것이다. 이후로 그는 길 위에서 집 없이 사는 동물들을 직시했다. 그들을 바라보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아픈아이들, 다친아이들, 버려져 상처받은 아이들이 또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혜진 씨는 15년차 캣맘이 됐다.
고양이들에게 본격적으로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혜진 씨는 주민들과 여러 차례 갈등을 겪었다. 지금보다 고양이에 대한 대한민국의 시선이 차가웠던 때였다. 도둑질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도둑고양이’로 불렸고, 소란을 핀 적 없건만 돌맹이를 던지거나 발길질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뿐만 아니다. 혜진 씨가 설치한 공원 내 길고양이 집은 누군가의 과한 물리력으로 자주 형태를 잃었다. 어디 그 뿐인가. 밥그릇을 던지는 사람부터 까먹은 귤의 껍질을 모아 집 안에 던져두는 사람, 작은 온기라도 품고 자길 바라 넣어둔 손난로는 괜히 꺼내 집 안에서 터트려 뿌리기도 한다. 고양이들 사료 그릇에 누군가 썩은 생선을 두고 간 일도 있다. 일부러 밥 그릇에 소변을 보고 가는 몰지각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들에게서는 거센 항의가 쏟아졌다. 물건을 내던지며 고함치는 그들에게서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고함과 욕을 들어야 했다.
다행히도 시간은 혜진 씨의 손을 잡았다. 방송인 김구라 씨가 “돌아이 짓도 꾸준하게 하면 인정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혜진 씨는 15년간 작고 가녀린 몸으로 40kg 넘는 사료와 물이 담긴 가방을 들고 공원과 산을 오르내렸다. 그녀를 오래 봐 온 사람들은 어느새 인사를 건네며 고양이 안부를 주고받는 이웃이 됐다. 빌라에서 물건을 내던지며 소리쳤던 그 이웃은 더 이상 나쁘지 않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좋은사람 200~300명 중에 1~2두명 뿐이예요. 제가 고양이 밥을 매일 주다보니 한 때 고양이를 실허하셨던 분들도 점점 마음을 열고, 이것저것 물어보시기도 하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지나가면서 고맙다고 인사도 해주세요.”
물론, 여전히 사람보다 작고 약한 존재를 괴롭히는 이들은 남아있다. 공원에서는 길고양이 밥을 주는 일은 불법이 아닌데 괜히 구청에 전화를 걸어 고양이집을 철거하라며 민원을 제기하는 그림자 없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
그럼에도 혜진 씨는 멈추지 않았다. “못해먹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자신이 건네는 하루 한 끼 식사가 전부인 아이들, 그 아이들이 밥 때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조금만 늦잖아요? 막 달려와서 보면 언제 왔는지 망부석 처럼 앉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저절로 벌떡 일어나게 돼요.”
혜진 씨는 단순히 길고양이들의 밥 만을 주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사비로 TNR 수술을 시켰고, 아프고 다친 아이들은 병원에 데려가 치료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차곡차곡 모았던 돈들은 그렇게 길고양이들에게 전부 썼다.
“얘 이름은 졸래예요. 졸래졸래 쫒아다녀서 그렇게 지었어요. 저쪽에 큰 아이는 부담인데 엄청 부담스럽게 굴어서 부담이라고 지었어요. 몸매도 좀 부담스럽죠?(웃음), 얘는 아주 깡패예요. 막 때려요.” 자신의 밥을 먹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특징을 설명하는 혜진 씨의 까만 눈동자가 고양이의 그것과 닮았다.
“신기한게요. 애들은 알아요. 저랑 마음을 주고 받는 애들은 ‘나 엄마 있다’ 이런 자세고, 어쩌다 제 밥을 먹게 되는 애들은 먹으면서도 눈치를 봐요. 닭가슴살을 물고 멀리 가서 몰래 먹는다던지 그렇게요.”
그런 혜진 씨에게는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어쩌면 삶의 모양 또한 비슷한 동생 하나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강혜진. 둘은 고양이로 대동단결했고, 그래서 만나면 고양이 이야기뿐이다. 서로의 커피 취향은 몰라도 두 사람이 밥을 주는 고양이들이 무슨 사료를 먹고 어떤 브랜드의 츄르와 트릿을 좋아하는 지는 잘 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24년 시작됐다. 전 씨가 사료값과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세상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네이버 밴드와 SNS 등을 통해 전 씨와 OO산 고양이들의 사정이 널리 퍼졌고, 강혜진 씨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렇게 둘은 처음 만났다.
두 번째 혜진
-"7시간 비 맞으며 배 아래 새끼 품은 이쁜이를 잊을 수 없어요."
두 번째 혜진 씨가 길고양들에게 밥을 처음 준 건 2017년 10월이다.
“고양이가 자꾸 저를 쳐다보는 거예요.”
그녀를 캣맘 혹은 밥엄마로 만들어 준 것은 고양이 ‘하리’와 ‘대박이’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귀엽다”는 감정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얘네들 밥은 먹고 다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염려가 됐다. 그래서 집에 있는 고양이들의 사료를 들고 나와 나눴다. 기왕이면 맛있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 비싼 습식 사료를 사다 건식 사료 위에 얹어주기까지 했다. 밥 엄마 9년차가 된 지금 생각하면 서툴러도 너무 설툴렀다. 습식 사료가 상하면 밑에 있는 건사료도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그땐 몰랐다. 그만큼 길고양이에 대해 아는것이라곤 없었다.
혜진 씨가 밥을 주는 작은 공원에는 매일 같은 시간 익숙한 얼굴의 고양이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태어나 처음 갖는 이름이 생겼다.
하리, 쪼롱이, 아롱이, 세모, 배트맨, 장미, 이쁜이... 어느 하나 쉽게 지은 이름은 없다. 아이의 생김새와 특색을 잘 살펴 지은 소중한 이름들이다.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그렇게 2년을 길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두 번째 혜진 씨. 사진=월요신문
혜진 씨는 길에서 밥을 줬던 고양이 중 하리, 쪼롱이, 둥어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밥 주는 자리에 누군가 유기한 걸로 보이는 호동이와 새끼 고양이 아리도 식구로 받아들였다. 캣맘을 혐오하는 이들이 “그렇게 좋으면 집으로 데려가 키우라”는 말을, 혜진 씨는 진작부터 실천했던 것이다.
“(물론 집에 고양이가 있기는 하지만)저는 사실 고양이에게 익숙하지가 않았어요. 길고양이와 눈을 오래 맞춘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 하리가 어느날 저를 졸졸 따라오더니 집까지 쫒아 올 태세더라고요. 그렇게 하리가 우리의 가족이 됐어요”
이미 길에 있던 새끼 고양이 3마리를 집으로 데려갔던 터라, 하리 외에 또 다른 고양이를 집에 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 혜진 씨는 추운 겨울, 구내염을 앓고 있던 고양이 쪼롱이를 위해 2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 자신의 온기를 나눴다. 처음 몇 달간은 멀찍이서 바라 보다 밥만 먹고 사라졌던 쪼롱이는 혜진 씨가 하루하루 내어주는 온기만큼 스스로 거리를 좁혔다. 그렇게 공원 벤치에서 2년 넘게 의지했던 혜진 씨와 쪼롱이는 이듬해 겨울부터는 혜진 씨 집 거실에서 따뜻한 보일러로 몸을 덥히고 있다.
그리고 강 씨의 기억에 진하게 남아 있는, 아니 지워지지 않을 장면 하나.
집 인근 빌라에서 실외기가 비에 젖을 것을 막기 위해 덮어둔 슬라브 위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미동도 없이 맞고 있는 작고 예쁜 고양이를 봤던 날의 기억이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는 길, 7시간이 경과했는데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비를 맞고 있는 고양이와 혜진 씨는 또 한 번 눈이 마주쳤다.
혜진 씨는 집으로 뛰어가 상자를 만들어 비닐을 씌우고 두툼한 헝겊을 넣었다. 우산도 챙겼다. 그렇지만 고양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아 보였다. 남의 집 지붕에 있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는 용기를 내 상가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선 대문이 아닌 다른 루트로 이쁜이에게 다가갔다. 그런 혜진 씨의 발걸음에 놀란 고양이는 펄쩍 뛰었고, 그제서야 이쁜이가 왜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래 비를 맞고 서 있어야 했는지 수수게끼는 풀려버렸다.
이쁜이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꼬물거리는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다. 어린 고양인줄로만 알았던 이쁜이는 새끼를 지키는 어미 고양이었다. 어린 새끼가 혹시라도 비를 맞을까 싶어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받아내며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쁜이의 이야기를 하던 혜진 씨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요. 죽어도 못 잊을 것 같아요 그 날을.”
밥 엄마를 기다리는 고양이들. 두 번째 혜진 씨가 집 가까운 작은 공원에 설치했던 고양이포차. 현재는 민원 탓에 철거되고 없다. 사진=월요신문
그날 이후 혜진 씨에게 길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은 보통의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혜진 씨는 지난 9년 가정과 일을 양립하면서도 길고양이들의 밥 시간 만큼은 지켜왔다. 햇수가 더해지고 고양이가 늘면서 혜진 씨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 생겼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도 늘었다. 물론 매일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 자체를 두고 거침 없는 욕설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첫 번째 혜진 씨의 사정과 마찬가지로, 공원 아이들의 밥터인 '공원포차'가 테러를 당하는 날도 있었다.
혜진 씨는 말한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고양이들의 밥을 주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뭔가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조금은 착해진 것 같아요. (웃음)”
그녀가 하려는 말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그저 바라보던 대상에서 이제는 함께 살아갈 대상으로 길 위의 생명을 품은 그 마음. 그 시선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는 것.
두 번재 혜진 씨 역시 첫 번째 혜진 씨와 같은 말을 했다. “애들이 기다려요.”
이쯤이면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인지 독자들도 예상했을 것이라 믿는다.
두 혜진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각별히 부탁했다. “길고양이들이 아무리 밉고 싫어도 그냥 좀 모른척 지나가 주세요. 살아 있는데 어떻게 안 먹어요. 배고프면 얼마나 힘든지 우리 다 알잖아요. 그러니까. 하루 할 끼 간신히 먹는 아이들의 밥그릇, 제발 발로 차지 마세요.”
알면서도 다시 한번 묻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이 삶을 언제까지 이어갈 생각인지“에 대해.
두 혜진은 말했다. “그냥 하는 거예요 그냥. 무슨 보람을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고, 못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냥 하는 거”라고.
서울의 밤. 많은 사람이 잠든 시간에도 누군가는 길 위의 생명들을 위해 무거운 사료를 지고 밤 길을 걷는다. 타인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목소리로 외쳐본다. “얘들아 밥먹어” / 월요신문=박윤미 기자
*연대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습니다. 어려운 분들(혹은 동물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고 헌신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좋고, 바위 앞의 계란이지만 바위를 노랑으로 물들이겠다 온몸을 던지시는 단체 또는 개인의 이야기도 귀합니다. 멀어도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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