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밭 옆 리조트급 저택...40년 봉양 끝에 완성
은퇴 후 와비사비 리모델링, 자연 담은 집까지
(ㅍㅍㅅㅅ 신효은 인턴기자) 황혼의 부부들이 인생 후반을 위해 아낌없이 지은 집을 소개한다.
EBS1 교양 프로그램 ‘건축탐구 집’은 19일 밤 9시 55분 ‘인생 마지막 집, 아낌없이 지었노라’ 편을 방송한다.
이번 방송에서는 40년간 시부모를 모신 아내를 위해 남편이 선물한 경북 예천의 럭셔리 저택과, 조기 은퇴 후 자연의 결을 담아 고친 와비사비 주택을 탐구한다.
경북 예천의 한 마을에는 평생 농사만 지어온 노부부가 팔순을 앞두고 지은 집이 자리한다. 40년 세월 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을 키워낸 헌 집을 뒤로하고, 부부의 일터인 배밭 옆에 새로 지은 인생 마지막 집이다.
전망 좋은 터에 자리 잡은 새집은 리조트를 연상하게 한다. 시골 분위기와 사뭇 다른 이 저택은 40년간 시부모를 봉양하고 농사와 살림까지 묵묵히 도맡은 아내 성자 씨가 “죽기 전에 좋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라고 말한 데서 시작됐다.
남편 진윤 씨는 고생한 아내에게 집으로 보답하고 싶었지만 예산 걱정에 헌 집을 리모델링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성자 씨는 무조건 크고 넓은 집을 고집했다.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고자 네 남매도 합세해 아버지를 설득했고, 고급 주택 짓기 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특히 맏딸 혜은 씨가 총대를 메고 서울의 일류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가 집의 밑그림을 그렸다.
집 짓는 데 들어간 철근만 28톤, 시멘트 두께는 1.5m다. 100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게 설계한 이 집은 묵직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거실을 감싼 통창은 채광과 세련미를 함께 살렸고, 최고급 시스템 창호를 적용해 옛집의 고질적인 단열 문제도 해결했다. 딸들이 가장 공들인 공간은 주방이다. 예천에서 서울까지 장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자재와 가구를 직접 골랐다.
완성된 주방은 세라믹 상판과 넉넉한 원목 수납장으로 채웠고, 여럿이 함께 요리해도 될 만큼 여유롭게 구성됐다.
히든 도어로 마감한 부부의 침실도 호텔급으로 꾸며졌다. 침대에 누워 마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통창을 냈고, 밭일 후 피로를 씻어줄 편백 욕조도 설치했다.
자주 내려오는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만든 2층에는 테라스 딸린 방과 미니 주방을 들였다. 리조트 못지않은 새집 덕에 서울에 사는 자녀들의 발걸음도 더 잦아졌다.
부부는 “나이 들어 얼마나 산다고 빚까지 내서 집을 짓냐”라는 주변의 우려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건축 잡지에 실릴 만큼 아낌없이, 또 후회 없이 지은 집에서 살며 나날이 회춘하는 기분이라고 전한다.
방송은 노년에는 관리하기 편한 작은 집이 최고라는 편견을 벗어나, 풍요로운 공간이 삶의 질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아내를 향한 남편의 보답과 부모님의 여생을 응원하는 네 남매의 마음으로 채운 집을 들여다본다.
또 다른 집은 은퇴 후 자신을 위한 우아한 보상을 담은 공간이다.
한용 씨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하는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열 번은 구했을 거라고 말한다. 현실에 따라 IT 업계에 오래 몸담았지만 치열한 속도전 속에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조기 은퇴를 택했다.
이후 9년 전 친구와 나란히 지은 주말 주택을 자신만의 색으로 고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는 하자 보수를 가장한 채였다.
처음 집을 지을 당시 부부는 특별한 취향도 없고 바쁘다는 이유로 건축사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하지만 9년의 시간이 지나며 집이란 ‘마땅히 영혼을 갈아 넣을 만한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남은 생을 기댈 안식처를 만들기 위해 한용 씨는 집 내부 전체를 뜯어내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매일 레퍼런스를 10개씩 찾아 5개로 추리는 작업을 수개월 반복한 끝에 자신만의 콘셉트를 찾았다. 그 이름은 ‘와비사비’다.
와비사비는 불완전함 속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미학으로, 한용 씨의 삶의 철학과 닮아 있다. 인테리어 업체 디자인 팀은 추상적인 취향을 구현하기 위해 일본 답사까지 다녀왔다.
한용 씨는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고자 현무암, 자연석, 고재 등 시간을 머금은 소재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거실 단상의 고재 기둥은 장인이 쌍주먹장으로 끼워 맞춰 고전미를 더했다.
이 집의 중심은 계단이다. 자연 소재로 채운 집인 만큼 계단 역시 하나의 풍경처럼 만들고자 했다. 연구 끝에 원목 레진 슬라브 장인을 어렵게 설득해 계곡물이 흐르는 장면을 연출했다.
아일랜드 식탁부터 조명, 아내만을 위한 침실과 별채까지 한용 씨의 고민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숫자와 씨름하던 IT 전문가의 내면에는 문학 소년이 숨어 있었다. 한용 씨에게 집을 고치는 시간은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발산하는 해방의 시간이었다. 반면 뼛속까지 공대생인 아내 양형 씨는 집 고치기에 몰두하며 생기를 찾은 남편을 보며 비로소 그의 감성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건축탐구 집’은 한 치 앞만 보며 살아온 끝에 스스로에게 허락한 가치 있는 사치와,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행복을 찾아 아낌없이 투자한 집을 조명한다.
사진=EBS
(ㅍㅍㅅㅅ / PPSS ) 신효은 인턴기자 press@pp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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