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공장에 휴머노이드 2만5000대 도입 구상
단순 자동화 넘어 ‘피지컬 AI’ 시대 본격
반복·위험 작업부터 대체 전망… 노조 반발도 확산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이미지.
“현대자동차 공장에 사람 대신 휴머노이드 로봇이 들어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던 장면이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자동차 생산 현장에 본격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하면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해외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에서 현대차·기아 생산거점에 아틀라스를 2만5000대 이상 도입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단순 시험 운영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 양산체계 구축과 실제 생산라인 적용을 전제로 한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로봇 도입’ 이상의 변화로 보고 있다. 과거 산업용 로봇이 특정 공정만 반복 수행했다면, 휴머노이드는 사람처럼 이동하고 판단하며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결합되면서 휴머노이드는 단순 자동화를 넘어 제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공장에서 사람 대신 로봇이 일하게 되는 걸까.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일자리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보스턴다이나믹스는 18일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23kg에 달하는 소형 냉장고를 옮기는 영상을 공개했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유튜브 영상 캡처
자동차 회사가 왜 갑자기 로봇에 꽂혔나
자동차 공장은 원래 자동화 수준이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용접·도장·프레스 공정 등에는 이미 대규모 산업용 로봇이 투입돼 왔다.
하지만 기존 산업용 로봇은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동작만 수행할 수 있었다. 작업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대응이 어려웠고, 복잡하거나 예외 상황이 많은 공정은 결국 사람이 맡아야 했다.
휴머노이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한계를 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틀라스 같은 최신 휴머노이드는 두 발로 이동하며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물건을 집고 옮기고 조립하는 작업까지 수행한다. 최근 공개된 영상에서는 달리기와 점프, 체조 동작까지 구현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이전 세대 로봇보다 균형감각과 동작 자유도가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생성형 AI 기술까지 결합되면서 단순 움직임을 넘어 ‘판단’ 영역까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최근 사족보행 로봇 ‘스팟’(Spot)에 구글의 생성형 AI 모델 ‘제미나이’(Gemini)를 결합한 시연도 공개했다. 사용자가 자연어로 명령하면 로봇이 카메라와 AI를 활용해 주변 상황을 이해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바닥에 있는 캔을 치워줘”, “신발을 정리해줘” 같은 명령을 이해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식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AI의 물리적 현실 세계 진입으로 해석한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컴퓨터 안에서 정보를 처리했다면, 피지컬 AI는 실제 공간에서 움직이며 현실 세계의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라는 의미다.
자동차 업계가 휴머노이드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동차 공장은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이다. 복잡한 부품 조립과 반복 작업이 많고, 물류 이동과 검사 공정 등 사람 손이 필요한 영역이 여전히 광범위하다.
특히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으로 수익성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인건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은 완성차 업체들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휴머노이드는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 ‘자동화’의 마지막 퍼즐로 여겨지는 셈이다.
스팟이 바닥에 널브러진 신발을 집어 올리고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제공
산업용 로봇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휴머노이드가 기존 자동화와 가장 다른 점으로 ‘범용성’을 꼽는다.
기존 산업용 로봇은 특정 공정을 위해 설계됐다. 예를 들어 용접 로봇은 용접만 가능했고, 물류 로봇은 정해진 경로로만 움직였다.
반면 휴머노이드는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작업 환경 자체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르고 문을 열고 공구를 사용하는 등 기존 사람 작업 공간에 그대로 투입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자동차 공장은 사람 기준으로 설계된 공간이 많다. 생산라인 사이 이동 통로, 부품 적재 방식, 작업대 높이 등이 모두 인간 신체 구조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휴머노이드가 사람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는 이유도 기존 공장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는 향후 휴머노이드가 먼저 투입될 분야로 △물류 이동 △부품 운반 △단순 조립 △검사 △위험 작업 등을 꼽는다.
사람이 하기 힘든 야간 반복 작업이나 고온·고중량 환경부터 빠르게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제조업 현장에서는 인력난도 심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제조업 기피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은 물론 한국 역시 생산직 인력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공장 중심으로 휴머노이드 실증을 확대하는 배경에도 현지 인건비 부담과 인력난 문제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CES 2026 현대차그룹 전시관에서 아틀라스가 자동차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시연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노조는 왜 민감하게 반응하나
휴머노이드 도입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은 거세다.
현대차 노조는 과거부터 생산현장 로봇 확대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최근에는 “휴머노이드 도입 시 노조와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내놨다.
노동계가 휴머노이드에 민감한 이유는 단순 자동화와 차원이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는 이론적으로 사람의 다양한 육체노동 자체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생성형 AI까지 결합될 경우 단순 반복 노동뿐 아니라 일부 판단 기반 작업까지 자동화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를 “화이트칼라에 충격을 줬던 생성형 AI가 이제 블루칼라 영역으로 확장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빅테크와 완성차 업체들은 휴머노이드 개발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옵티머스’(Optimus)를 개발 중이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수백만대 생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미국 스타트업 피규어AI(Figure AI)는 BMW 공장 투입을 추진 중이고, 중국 업체들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지방정부 차원의 휴머노이드 육성 정책까지 추진하며 생산 확대에 나선 상태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휴머노이드 가격이 자동차 수준까지 낮아질 경우 제조업 구조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싱가포르에 설립한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스팟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말 사람의 일자리는 사라질까
그렇다면 휴머노이드는 결국 인간 노동을 대체할까. 전문가들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고 본다.
우선 반복적이고 위험한 육체노동은 상당 부분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물류 이동과 단순 조립, 검사 공정 등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대체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아직 기술적 한계도 분명하다.
휴머노이드는 사람보다 훨씬 느리고 비용도 비싸다. 배터리 지속시간과 안정성 문제도 남아 있다. 복잡한 예외 상황 대응 능력 역시 인간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 자동차 생산라인은 수많은 변수와 비정형 작업이 동시에 발생한다. 부품 오차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여전히 숙련 노동자의 판단과 대응이 중요하다.
결국 단기간 내 ‘무인 공장’이 현실화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오히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협업 구조’가 먼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사람이 판단과 관리 역할을 맡고, 로봇은 반복 작업과 물류 이동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과거 산업용 로봇 확대 당시에도 단순 노동은 줄었지만 로봇 유지보수와 소프트웨어, 데이터 관리 등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는 점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번 변화는 속도와 범위가 훨씬 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산업용 로봇은 용접·도장처럼 특정 공정만 대체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휴머노이드는 이동·운반·조립·검사 등 여러 작업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성형 AI까지 결합되면서 단순 반복 노동뿐 아니라 일부 판단 기반 업무까지 자동화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자동차·물류·조선·방산 등 노동집약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 현장의 인력 구조가 빠르게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휴머노이드는 단순히 ‘로봇 한 대’를 도입하느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회사가 AI·로봇 기업으로 변신하고, 제조업 노동의 개념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에 가깝다”며 “글로벌 제조업 경쟁이 AI와 로봇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기술 전환을 미루는 것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보다 사회적 수용 속도”라며 “노동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전환 속도를 맞추는 것이 기업과 정부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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