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관한 지지도가 60% 후반대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국민의 65%, 전국지표조사(NBS)에서는 69%가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경제와 외교에서의 실용 정책, 국정 현안에 대한 실무적 감각, 그리고 TV 생중계와 SNS를 통한 국민과의 적극적 소통 등이 좋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하지만 일부 호사가(好事家)들은 대통령 개인기에 많이 의존하는 점과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스타일이 불안하다고 말한다. 사실 이상적으로는 대통령은 전체적인 국정 방향을 제시하고 실무는 장관이나 부처 공무원들이 챙기는 소위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정부’가 되는 것일 것이다. 한 개인에 의존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구현장 지휘할 기관장 공백은
국가경쟁력에 심각한 손실 입혀
청와대 과잉 관여가 원인인 듯
이사회가 선임하는 제도 지켜야
그런데 이처럼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정부’가 가능하려면 각개 각소에 적절한 인재가 배치되어야 한다. 실질적 변화는 청와대 회의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특히 현장 책임자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바쁜데, 정작 그 지시를 수행할 현장은 준비가 덜 되어 있는 형국이다.
한 예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펴보자. 이재명 정부는 AI시대를 맞아 출범 초기부터 과학기술 중시를 내세우면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 부총리를 복원하고 대통령비서실에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직을 신설하였으며, 국가 R&D 예산을 사상 최대로 편성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였다. 또한 과학기술인들의 오랜 요구 사항이었던 연구과제 중심제도(PBS) 폐지를 확정하고, 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중이다. 이처럼 제도적으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에 발맞추어 실제 혁신이 일어나야 할 연구 현장은 그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이런 현상의 중요한 원인으로 현장 변화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과학기술 공공기관장의 공백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 과학기술 교육·연구기관의 얼굴격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총장과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원장은 임기가 끝난 지 1년이 넘도록 후임자가 선임되지 않아 임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속 23개 정부출연연구소 중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4개 기관에서 임기 끝난 기관장의 후임이 선임되지 않고 있고, 곧 한국화학연구원(KRICT) 등 2개 기관도 비슷한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NST 소속 정부출연연구소의 1/4 이상에 리더십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 탄핵사태를 거치면서 2년 가까이 후임 원장 선임이 늦어진 곳도 있다.
이렇게 과학기술 공공기관 기관장 선임이 늦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도적으로는 공공기관장은 임원추천위원회가 관련 전문가 중 후보자를 추천하면 이사회에서 선임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정치적인 상황하고는 상관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관여를 하면서, 정치적인 고려가 들어간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전례 없이 늦어지는 KAIST 총장 선임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보도이다.(중앙일보 3월 31일자 26면 ‘명문대학 망가뜨리는 법’ 참조)
물론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공공기관의 장을 임명하는 일이니 최소한의 인사 검증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관련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나 이사회보다 청와대 비서실이 원장 적임자를 찾아낼 확률은 거의 없지 않을까. 게다가 바쁜 대통령이 모든 기관장 선임에 신경 쓸 수는 없기 때문에, 소위 정권 실세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끼어들 틈이 많다. 이렇게 임명된 기관장은 구성원들에게 정당성을 의심받아 그 지도력에도 한계를 보이기 쉽다.
세계는 지금 기술 전쟁 시대에 돌입해 있다. 이런 시기에 연구 현장을 지휘할 기관장이 공백인 사태는 국가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마치 최고사령관(대통령)은 온갖 지시를 쏟아내는데, 그 지시를 수행할 야전 사령관(공공기관장)이 비어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고, 과감하게 후자를 끊어내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다. 과학기술분야 공공기관장 인선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개별 인사에 관여하기보다, 능력있는 후보자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를 만드는 일이 본연 업무에 맞는 일일 것이다.
우선 법에 정한 이사회의 권한을 존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 청와대나 정치권이 공공기관장 임명에 관여한 것은 과거 정부부터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끊어내는 것도 큰 개혁이다. 지금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에서 많은 개혁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도 포함되면 중요한 업적이 될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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