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유가 급등에 따른- 나프타 납품 석유화학 대기업 공개 간담회'. 사진=장지현 이코노믹리뷰 기자
국제 유가 급등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촉발된 나프타 쇼크가 석유화학 산업을 넘어 플라스틱 중소 제조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원료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석유화학 대기업은 생산 기반이 흔들리고 플라스틱 중소기업은 납품단가에 이를 반영하지 못 하는 '샌드위치 압박'에 직면하는 등 산업 밸류체인 전반에 연쇄 충격이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업계에선 단기적으로는 원료 수급 안정과 가격 연동 체계 구축을, 중장기적으로는 공정 효율화와 탈탄소 기반 구조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는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19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서울 국회에서 '유가 급등에 따른 대책 마련을 위한 나프타 납품 석유화학 대기업 공개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는 유가 급등과 나프타 수급 불안이 석유화학 업계를 넘어 플라스틱 중소 제조업계로 확산되는 상황을 진단하고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후방 압박으로 '샌드위치' 된 플라스틱 중소기업
김남근 의원은 "전국 24만에 달하는 플라스틱 업계 종사자들이 원가 급등과 납품가 동결이라는 샌드위치 압박 속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프라스틱공업협회 따르면 플라스틱 제조업체의 생산원가에서 합성수지 등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83%에 달한다. 원료 가격이 조금만 상승해도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는 구조다.
특히 OEM·하청 구조가 일반적인 산업 특성상 납품단가 협상력이 낮아 원가 상승분을 전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
채정묵 한국프라스틱공업협회 회장은 "지난달 유화사들로부터 톤당 20만원의 가격 인상과 공급 감축 통보를 받았다"며 "중소 제조사들은 위에서는 원가 급등에 시달리고 아래에서는 대형 가전·자동차 등 수요처가 납품 단가를 올려주지 않는 이른바 '샌드위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합성수지 시장은 소수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구조로 형성돼 있어 중소 기업들은 가격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원유 가격 변동과 실제 공급가 반영 사이의 시차, 재고 상황 등이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가격 인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유가 급등에 따른- 나프타 납품 석유화학 대기업 공개 간담회'에 참석한 석유화학 대기업 관계자들. 사진=연합뉴스
석화 대기업 "적자 늪 감수해서라도 내수 전환 중"
공급자인 석유화학 대기업 역시 상황이 녹록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업황은 중국발 공급 과잉 및 수요 둔화로 장기간 침체돼 있었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산 원유 및 나프타 수송이 막히면서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 확보가 급격히 어려워지는 공급망 위기까지 덮쳤다.
간담회에 참석한 LG화학,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여천NCC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적자를 보면서도 내수 공급망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에 따르면 이란 전쟁 발발 이전 톤당 약 600달러 수준이던 나프타 가격은 최근 1100달러 수준까지 치솟으며 사실상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가격도 상승했지만 물량 자체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도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배용재 여천NCC 전무는 "나프타의 약 70%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조달해 왔는데 현재는 물리적으로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여수 국가산단의 일부 설비 가동률은 50%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여천NCC는 직접 합성수지를 만들지 않고 한화솔루션 등에 에틸렌을 공급하는 업스트림 기업으로서 현재 모든 수출 물량을 중단하고 전량 내수 공급에 매칭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번 롯데케미칼 상무 역시 생태계 보호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상무는 "수출 가격이 더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화학 생태계를 위해 내수 공급 비중을 기존 45%에서 3~4월 90%까지 대폭 확대했다"며 "국내 중소 협력사들이 무너지면 결국 석화 대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계약 취소 위약금까지 감수하며 물량을 내수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솔루션의 경우 자체 나프타 분해 설비(NCC)가 없어 에틸렌을 외부에서 구매해 사용하는데 여기에 공급난으로 인해 이틀간 공장이 멈추는 사태까지 겪었다. 김동욱 한화솔루션 상무는 "에틸렌 가격이 얼마가 되든 전량 수용하며 구매하려 노력 중이며 손익이 나지 않더라도 공장을 가동해 하류 산업(플라스틱 업계)의 숨통을 틔우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유가 급등에 따른- 나프타 납품 석유화학 대기업 공개 간담회'. 사진=연합뉴스
국가 차원의 비상 대책 필요해
현재의 상황이 개별 기업의 노력으로 극복하기에는 임계점을 넘었고, 정부 및 국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산업 전반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데에 참석자들은 뜻을 같이 했다. 민간 차원의 자율 조정만으로는 원료 수급과 가격 전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중소기업계는 세 가지 핵심 대안을 촉구했다. ▲합성수지의 안정적 공급 확약 ▲단기 급등 방지를 위한 가격 조정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즉각 반영하는 '가격 연동제'의 실질적 작동 등이다. 특히 가격 연동제의 경우 원료비 인상분이 조달 가격과 최종 판매 가격에 즉각 반영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중소기업의 독박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석유화학 업종을 '산업 위기 특별 대응 지역'으로 선포하고 정부 차원에서 나프타를 경제 안보 품목으로 관리해 비축 물량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안도걸 의원은 "여수 산단 가동률이 50%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지역 경제 전체의 위기"라며 "정부가 이 지역을 산업 위기 특별 대응 지역으로 선포해 집중적인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남에 지역구를 둔 박수현 의원은 대산 석유화학 단지의 혁신을 위한 세 가지 제안을 내놨다. ▲대산 국가산업단지 지정 추진 ▲AI 기반 지능형 공정(AX) 및 탄소 포집(CCUS) 등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의 체질 개선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산업 전환 특별지역' 지정 등을 제시했다.
특히 AI 기반의 지능형 공정과 CCUS 등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은 운영 효율화 측면과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 측면에서 불가피하단 게 업계 중론이다. 다만 현재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NCC 생산량 감축을 위한 구조개편 국면에 들어섰으며, 범용 제품을 대체할 고부가가치로 전환 중인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투입될 막대한 비용 부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전망이다.
한편 민병덕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은 "위에서는 원가 급등에 시달리고 아래에서는 납품 단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 구조가 계속되면 중소기업이 먼저 무너지고 결국 산업 생태계 전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격 충격이 밸류체인 상단에서 하단으로 전가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산업 생태계 전반의 연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