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블랙 스완(Black Swan)’을 넘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상시적 변수로 고착화하고 있다. 널뛰는 환율 변동성과 국제 에너지 가격의 급등, 글로벌 해상 물류망의 병목 현상은 수출 주도형인 우리 산업계의 하방 압력을 극대화하는 형국이다. 특히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구조의 특성상, 이번 사태의 파고는 단순히 에너지 다소비 업종을 넘어 제조업 전반과 자본시장까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이에 <직썰>은 [중동 쇼크, 한국 산업계를 덮치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주요 업종별 피해 실태 ▲기업들의 극한 비상 경영 전략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집중 진단하여 한국 경제의 생존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그래픽=최소라 기자·제미나이]
[직썰 / 최소라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로 코스피 6000선이 붕괴됐다. 지난 1월 5000선 돌파 후, 한 달 만에 6000선에 안착했던 상승세는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꺾였다. 고환율과 고유가 충격이 겹치며 지수는 장중 5400선까지 급락했다. 당분간 변동성 장세가 불가피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업종의 실적 개선을 지수 반등의 핵심 동력으로 지목한다.
◇1500원 뚫은 환율·치솟는 유가…‘패닉 장세’ 연출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확산 공포로 6%대 급락하며 5500선 아래로 밀려난 5405.75에 마감다. 코스피200선물 가격 폭락으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하는 등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외환·에너지 시장도 요동쳤다. 원·달러 환율은 주간거래에서 전 거래일 대비 16.7원 오른 1517.3원으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9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1500원을 넘어선 뒤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114.35달러까지 급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군사적 대응을 시사하고,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기조를 드러내며 투자 심리는 더욱 얼어붙었다. 원화 가치 하락은 외국인 자금 이탈을, 유가 상승은 기업 생산 비용 증가와 인플레이션을 각각 유발해 한국 증시를 위협하고 있다.
◇‘환차손 공포’에 짐 싸는 외국인…수출 펀더멘털은 ‘견조’
최근 증시 급락의 주원인은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이탈이다. 이들은 국내 증시 주도주인 반도체 대형주를 집중 매도하고 있다. 올해 1월 52%에 달했던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단숨에 49%대로 하락했다.
가파른 환율 상승이 외국인의 자금 이탈을 가속하고 있다. 원화가 약세일 경우 주가가 올라도 달러 환산 수익률이 떨어져 환차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환율에 따른 투자 심리 위축과 관련해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고환율 환경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환차손 부담까지 감수해야 하는 만큼 국내 증시에 투자할 매력도가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외환 시장의 불안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환율은 당분간 1500원 이상에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견조한 수출 실적은 시장의 버팀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533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0.4% 급증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163.9%)와 컴퓨터 주변기기(269.4%) 등 IT 품목이 수출을 견인하며 고환율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충격을 일부 방어하고 있다.
◇눈덩이 공매도·신용융자…극심한 변동성 장세
하락장에 베팅하는 자금도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공매도 선행지표인 대차거래 잔고는 20일 기준 150조원으로 연초(113조원대) 대비 급격히 늘었다. 코스피 공매도 순보유 잔고 역시 15조원대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가 하락에도 빚을 내어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신용융자)’ 열기 역시 뜨겁다. 이달 신용거래 잔고는 33조원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적 매매가 늘면서 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올해 들어 총 10차례의 사이드카가 발동했다. 외국인 매도 물량을 개인이 사들이는 수급 구조가 굳어지며 장중 큰 폭의 지수 등락이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한계 노출…구원투수는 결국 ‘AI·반도체’
이번 사태는 대외 변수에 취약한 한국 증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외국인 자금 유출입에 민감한 증시 체질이 다시 부각됐다.
그러나 증시의 장기 우상향 추세가 꺾인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외 악재가 진정되면 기업 기초 체력에 기반한 반등이 이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증시 회복을 점쳤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동 분쟁은 초기 충격 이후 외교적 출구를 모색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며 “2분기는 방어가 아니라 재편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규모 수급 이탈 우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순매도는 시장 이탈이 아닌 차익 실현 성격이 강하다”며 “반도체 업황 개선이 이어질 경우 외국인 지분율이 과거 최고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번 조정장 이후 지수 반등을 주도할 핵심 업종은 반도체와 AI다. 글로벌 메모리 업황 회복과 빅테크 기업의 AI 설비투자 확대 흐름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치는 꾸준히 상향 조정되고 있다. 외부 충격이 완화되면 뚜렷한 실적 개선세를 보이는 IT 대형주로 매수세가 집중될 전망이다.
안정적인 증시 성장을 위해 기업 가치 제고를 돕는 제도적 뒷받침도 시급하다. 서지용 교수는 “상법 개정안 등 제도 개선이 뒷받침될 경우 지수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며 “세제 개편 등을 통해 장기 투자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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