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설정·공적 투자 필수인 산업
중앙 정부 통제력 강한 체제 ‘최적’
미·중 투자액 조만간 역전 가능성
‘올인’ 약진 모델 따른 단점도 명확
기세 꺾이면 기업 연쇄 도산 우려
인재들도 하나의 목표로만 내달려
2025년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AI 대회의 화웨이 부스 앞에 관람객들이 몰려 있다. 화웨이가 2020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기술·무역 제재에 직접 타격을 입자, 중국 정부는 화웨이를 ‘영웅 기업’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화웨이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미국 거대 테크 기업에 못지않다. 로이터연합뉴스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
권석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692쪽 | 2만9500원
이것은 ‘기정학(技政學·technopolitics)’ 책이다. ‘기술’과 ‘지정학’의 합성어인 기정학은 첨단 기술과 공급망이 경제적 도구를 넘어 외교·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핵무기 등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기술은 많았지만, 최근 기정학이란 말이 등장한 이유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등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패권 다툼은 기정학의 프레임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권석준은 지금 국내에서 손꼽히는 반도체 전문가다. (2022·뿌리와이파리)를 통해 한·중·일 반도체 산업의 역사, 현황, 전망을 풀어냈던 그가 신작 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AI 생태계 팽창,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전략과 한국의 과제를 설명한다. 이 ‘기정학’ 책이라고 평가했지만, 사실 반도체·AI에 대한 기술서, 이 기술을 둘러싼 경제서, 정부·기업·관심 있는 시민을 위한 정책 제안서이기도 하다.
저자가 전하는 중국의 기술굴기는 파천황이다. 저자는 이후 몇년 사이 중국 반도체 산업이 또다시 크게 달라졌다고 본다. 책 쓰기를 미루었다가는 “이런 책을 쓰는 일 자체의 효용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였다.
1985년생 량원펑이 창업 2년도 안 돼 내놓은 AI 모델 딥시크-R1은 미국에는 구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비견되는 충격이었다. 딥시크는 알파벳, 메타, 아마존, 테슬라, 오픈AI 같은 미국 주요 테크 기업이 투자한 막대한 개발비의 100분의 1~1000분의 1만 들이고도 비슷한 성능을 보였다. 미국 정부의 집요하고 기나긴 제재를 우회해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충격은 배가됐다.
중국의 약진은 우연이 아니다. 반도체·AI 산업의 특성상 정부 차원의 뚜렷한 방향 설정과 거대한 공적 투자가 필수다.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강력한 중국 체제는 이에 최적화돼 있다. 구소련, 일본, 유럽과의 기술 경쟁에서 사람과 돈을 압도적으로 투입해 격차를 유지했던 미국은 이제 쇠퇴 기조가 완연하다. 영향력 있는 연구력 측정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에 따르면, 2025년 연구력 상위 10위 이내 기관 중 중국 기관이 8곳이다. 2025년 기준 미국과 중국은 전 세계 연구·개발 투자의 절대 액수 중 30%, 28%를 차지했는데, 이 역시 조만간 역전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알게 모르게 도왔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지난 20여년간 애플은 폭스콘, 페가트론 같은 대만 업체, 비야디, 럭스쉐어 같은 중국 업체에서 에어팟과 아이폰을 만들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실시했다. 애플은 중국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렸지만, 이 기간 관련 기술도 중국으로 대거 이전됐다. 애플뿐 아니라 여러 미국 기업이 중국 시장을 노리며 수십년간 투자한 자본, 기술, 선진 경영 전략, 인재 훈련 시스템은 그대로 중국 기업에 넘어갔다. 미국 민간 기업의 투자는 부메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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