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중국도 안 베낄 듯”…엔진 없는 페라리 ‘10억 전기차’의 굴욕
중앙일보
페라리의 첫 순수전기차 '루체'. AFP=연합뉴스
엔초 페라리(페라리 창업주)가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다.
페라리의 첫 순수 전기차 ‘루체’ 공개 이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년 넘게 페라리를 이끈 루카 디 몬테제몰로 전 페라리 회장은 “저 차에서 ‘뛰어오르는 말’ 로고를 떼어냈으면 좋겠다, 중국도 베끼지 않을 차”라고 혹평했다.
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페라리는 루체에 55만 유로(약 10억원)라는 가격표를 붙였다. 업계에선 “소비자가 과연 엔진 없는 페라리에 10억원을 지불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디자인을 넘어 전동화가 핵심인 시대에 수퍼카(럭셔리카)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페라리는 역사상 최고의 엔진 중 하나로 꼽히는 자연 흡기 V8 엔진, F1 스포츠카에서 쓰던 변속기 기술 등을 양산형 차량에 도입, 기술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엔진은 수퍼카의 경쟁력이자 비싼 몸값을 정당화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배터리와 모터로 움직이는 전기차 영역에선 얘기가 다르다. 수퍼카와 일반 자동차 간 성능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어서다. 성능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제로백(0→100㎞/h 가속 시간)이 대표적이다. 페라리 ‘로마’(3.4초), 포르쉐 ‘911카레라4GTS’(3초) 같이 내연 기관 엔진을 장착한 3억원 안팎의 수퍼카는 제로백이 대개 3초대다.
7000만원 안팎에 팔리는 현대차 ‘아이오닉6N’(3.2초), 테슬라 ‘모델3 퍼포먼스’(3.1초) 같은 전기차도 이와 비슷한 가속 성능을 갖췄다.
페라리의 첫 순수전기차 '루체'의 콕핏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페라리의 첫 순수전기차 '루체'의 후면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수퍼카도 전동화가 고민이다. 이 때문에 람보르기니는 2028년 순수 전기차 첫 출시 계획을 중단했고 포르쉐도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8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철회했다. 맥라렌은 엔진을 병행한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선 전기차를 ‘자동차 산업의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는 기술 변화’라고 평가한다. 이번 페라리 전기차 논란이 ‘전동화 시대 명품 자동차의 정의’를 시험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전동화 시대를 맞아 일반 전기차도 가속력이나 주행 안전성이 수퍼카를 앞설 수 있게 됐고 파워트레인 성능만으로는 수퍼카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BYD가 페라리보다 빠른 차를 만들 수는 있어도 역사·철학 등을 단기간에 가질 수 없는 만큼 결국 소비자가 ‘내가 이 차를 가졌다’는 타이틀로 만족할 수 있도록 수퍼카가 디자인 철학과 레거시를 잘 유지하는 게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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