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X - 죽음은 하얗게 다가왔다’ 표지 /자료제공=아나야
[환경일보] “화학물질문명이 공장과 거리를 넘어서 이제 우리 아기들과 엄마아빠의 행복을 가꾸는 ‘집’을 전장으로 삼고 쳐들어왔다. 전국 방방곡곡의 집을, 그 안방을 공습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33년에 걸친 장기재난으로 추적한 다큐멘터리 문학이자 시각백서 ‘숨;X - 죽음은 하얗게 다가왔다’(저자 류이, 출판 아나야)가 출간됐다.
이 책은 1992년 가습기살균제 제품 개발부터 2024년 대법원 판결에 이르기까지 참사의 흐름을 30개의 주요 사건으로 재구성했다. 피해자 증언과 현장 사진, 법정·국회·거리의 기록을 함께 엮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단순한 소비자 피해가 아닌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실패와 국가·기업 책임의 문제로 조명한다.
저자인 류이 감독은 이 책을 “가습기살균제 대참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기 위한 시민의 시각백서”라고 설명한다. 그는 4년 6개월 동안 피해자들의 집과 병원, 장례식장, 법정, 국회, 거리 시위 현장을 취재하고, 피해자와 전문가 100명 이상을 인터뷰하며 참사의 기록을 모았다.
류 감독은 책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제품 판매가 중단된 뒤에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질병과 생계 문제, 소송과 배상 절차 속에 놓여 있으며, 참사의 전모와 책임 규명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다.
33년 장기재난, 30개 사건으로 재구성
‘숨;X’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제품 개발과 시장 확대, 독성자료와 안전관리 문제, 피해자들의 질병 발생, 역학조사와 정부 대응, 옥시 불매운동,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관련 재판과 대법원 판결까지 주요 국면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특정 기업의 개별 사고가 아니라 생활화학제품 관리 체계, 규제 부실, 기업의 책임 회피, 피해자 구제 지연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적 재난이었다고 짚는다.
책은 특히 참사의 규모보다 그 안에 가려진 개별 피해자의 삶에 주목한다. 숫자로만 남은 피해가 아니라 아이와 부모, 가족과 생존자들이 겪어온 고통을 사진과 증언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다.
류 감독은 “뉴스로 조각나 있던 사건들을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구조로 엮고 싶었다”며 “피해자들의 고통이 잊히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시각백서’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사진과 기록을 결합한 시각백서 형식이다. 병실, 거실, 장례식장, 법정, 국회, 거리 집회 등 참사가 실제로 남긴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여기에 사건 해설과 피해자 증언, 주요 기록을 덧붙였다.
저자는 사진을 단순한 보조 자료가 아니라 참사의 구조를 드러내는 기록으로 배치했다. 독자가 글을 통해 사건을 따라가고, 사진을 통해 피해의 현장성과 무게를 마주하도록 구성한 것이다.
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백서처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도, 일반 독자가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 기록과 서사를 결합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특정 기업의 개별 사고가 아니라 생활화학제품 관리 체계, 규제 부실, 기업의 책임 회피, 피해자 구제 지연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적 재난이었다고 짚는다. /사진=환경일보DB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국내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피해자 구제와 책임 규명,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은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 차원의 피해 배상·지원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특별법 후속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고, 배상심의위원회 설치와 치료비·간병비·교육비 지원 등을 추진한다. 2026년 3월 기준 국가 피해 인정자는 6011명이다.
‘숨;X’는 이 참사를 과거의 사건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책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통해 생활 속 화학제품 안전, 기업의 책임, 국가의 규제와 감시 기능, 피해자 권리 보장의 문제를 다시 묻는다.
류 감독은 “이 책은 재난을 소비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재난을 이해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기록”이라며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가 기억해야 할 사회적 사건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출간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의 과제로 다시 마주하게 한다. ‘숨;X’는 참사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의 삶과 고통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응답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