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인사 검증 법안도 ‘봇물’…독립성 뒤 책임 공백
[편집자주] 과거 1960~1970년대에도 <주간한국>은 ‘주간 이슈’라는 타이틀로 한 주간의 이슈를 독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2026년 창간 62주년을 맞은 주간한국은 올해도 매주 가장 뜨거운 이슈를 선정해 심층적으로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 주제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관리 능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현주소입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잠실 개표소)은 이제 선관위 관리 능력 부족에 맞서는 상징이 됐습니다.
6월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 능력 부족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부정선거”, “재선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주간한국 강민혜 기자] # “참을 수 없어 나왔습니다. 참정권 침해라뇨.”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모인 시민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수개표” 등을 외쳤다. 가깝게는 송파구, 멀리는 강화도나 제주에서 혈혈단신 잠실을 찾았다는 20~70대 참가자들을 위한 후원 물품이 곳곳에 쌓였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선관위 개혁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선거 관리 실수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2022년 대선 당시 ‘소쿠리 투표’ 논란을 시작으로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 외유성 출장 논란,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의 배우자 동반 해외 출장 논란까지 겹치면서 누적된 불신이 선을 넘은 모양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 능력 부족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부정선거”, “재선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 “참정권 침해”
선관위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트리거다. 선관위는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 사전 투표 과정에서 투표지를 바구니와 비닐봉투 등에 담아 옮긴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선관위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선거 관리 역량과 공정성 의혹은 해소하지 못했다. 이후 감사원 감사에서는 전·현직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채용 절차 위반 사례가 드러났다. 채용 과정에서 경력 산정과 면접 관리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고 내부 인사 폐쇄성도 도마에 올랐다. 일부 직원들의 해외 출장과 외유성 연수 의혹도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여기에 노 전 위원장의 해외 출장 배우자 동반 논란까지 불거졌다. 노 전 위원장은 재임 중 세 차례 해외 출장에 모두 배우자를 동반했고 배우자의 항공료와 숙박비 등 비용도 선관위 예산으로 처리됐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외부에 공개된 출장 보고서에는 배우자 동행 사실이 기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장 예우 차원의 관행이었다고 해명했지만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더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관위가 밝힌 투표용지 부족 투표소는 당초 최소 50곳에서 91곳으로 늘었다. 투표용지 부족이 예상돼 추가 배부된 투표소는 140곳, 이 중 실제 부족했던 곳은 91곳이다. 투표가 중단됐다가 재개된 곳도 26곳에 달했다.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등 수도권 일부 지역뿐 아니라 부산·대구·인천·경기 등에서도 발생했다. 노 전 위원장은 사태 직후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를 수용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합수본)의 요청에 따라 법무부는 노 전 위원장과 허철훈 전 선관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출국 금지했다. 합수본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발생 경위와 선관위의 선거 당일 대응 과정 전반을 조사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 능력 부족 항의 시위 현장에서 16일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 ‘성역’ 손대는 정치권
기본적인 선거 관리 업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정치권도 나섰다.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외부 감시에서 자유로워 조직 내부 책임 구조가 약해졌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이에 국회서 논의되는 선관위 개혁안의 핵심은 외부 통제 장치 도입이다. 현재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국회와 정부, 감사원으로부터도 상당 부분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공통된 문제 의식은 이 같은 독립성이 이른바 ‘무풍지대’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국회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지난 18일 첫 회의를 열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특위는 이날 제1차 전체회의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위원장으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을 여야 간사로 각각 선임하고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했다. 국정조사 기간은 6월 18일~8월 1일 45일간이다. 조사 대상 기관은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16일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날리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 능력 부족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부정선거", "재선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손재하 기자
조사 범위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경위, 투표용지 인쇄 수량 산정 기준 및 관련 지침 수립 과정의 부실 여부, 선거 당일 선관위의 현장 관리 전반,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 사실 인지 시점 및 지휘·보고 체계 작동 여부, 사후 대응 조치의 적정성 등이 포함됐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투표 지연·일시 중단 등 유권자 참정권 침해 실태, 사태 발생·수습 과정에서 선관위의 직무유기 등 책임 소재도 조사 대상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위원장 선임 직후 “투표권 행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투표용지가 없어 투표를 못 했다는 것은 선거 관리 행정의 총체적 부실이자 무능 그 자체”라며 “사태의 발생 원인부터 사후 수습 과정 전반에 이르기까지 책임 소재를 명명백백히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국민의 참정권을 말 그대로 짓밟고 훼손한 것”이라며 “이 부분에는 여야가 없고, 진보·보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쟁이 끼어들 틈이 없는 국정조사”라며 “선관위의 무능과 부실 관리 책임을 철저히 묻고, 제도 개혁 방안을 찾아내는 데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16일 모인 시민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직접 그린 태극기나 항의 문구를 각기 손에 들거나 목에 걸고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당초 이날 강제 해산이 예정됐으나 야당 의원들의 방문과 현장 시민들의 항의로 이는 무산됐다. 사진=강민혜 기자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를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하는 감사원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선관위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감사원 직무감찰에 대해 위헌·위법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선관위 사무총장 인사청문회 도입 법안도 있다. 특혜 채용 의혹과 선거 관리 부실 논란이 반복된 만큼 조직 최고 실무 책임자를 국회 인사 검증 대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선관위 사무총장은 장관급 예우를 받으며 조직 실무를 총괄하지만 현재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 측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선관위 시스템 점검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 소속 김계리 변호사는 본지에 “윤 전 대통령은 현실 정치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지방선거 때도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현실 정치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16일 모인 시민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사람들의 내부 진입을 막고 시위대 강제 해산에 저항하기 위해 각기 텐트를 치거나 앉아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사진=강민혜 기자
지난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에서 전한길 씨가 피켓을 들고 있다. 이날 시위자들은 전씨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거나 환영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전씨는 시위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사진=손재하 기자
강민혜 기자 mine@hankooki.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