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960~1970년대에도 <주간한국>은 ‘주간 이슈’라는 타이틀로 한 주간의 이슈를 독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2026년 창간 62주년을 맞은 주간한국은 올해도 매주 가장 뜨거운 이슈를 선정해 심층적으로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주 주제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들썩이게 한 메모리반도체 신기술 ‘터보퀀트’입니다. 구글이 개발한 이 기술은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꼽히는 메모리반도체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제 공개 직후 메모리반도체 수요 감소 우려가 시장을 덮치면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감소할 정도로 파급력 또한 컸습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AI 투자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옵니다. 이에 터보퀀트의 원리와 향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려 합니다.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인공지능(AI) 정상회의’ 행사장 내 대형 스크린에 구글 로고가 띄워져 있다. 사진=AP·연합
[주간한국 이주선 기자] 구글이 최근 공개한 인공지능(AI) 기술 하나가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물론 증권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주인공은 ‘터보퀀트’(TurboQuant)로, 최근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막대한 양의 메모리반도체를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이다. 현재 데이터센터 구축·운용에 있어 반도체 가격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빅테크들 사이에서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터보퀀트의 등장으로 메모리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메모리반도체 판매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을 덮치면서 두 기업 주가에 적잖은 타격을 준 것이다. 다만 터보퀀트가 현재 메모리반도체 수요 구조를 당장 바꾸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장기적으로 AI 인프라의 구조적 혁신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수 있지만, 상용화까지는 성능 검증과 관련 생태계 구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구글의 터보퀀트는 AI가 사용할 데이터를 크게 압축해 저장하는 기술이다. AI가 사용자와 이전 대화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사용하는 임시 메모리격인 ‘KV 캐시’를 성능 저하·손실 없이 압축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KV 캐시는 AI가 사용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기억해 계속 일정한 답변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AI 모델 성능이 높아질수록 KV 캐시 데이터의 양은 계속 늘어난다.
터보퀀트를 사용하면 기하급수로 불어나는 KV캐시의 크기를 손실 없이 최소 6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게 구글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HBM 6개가 하는 일을 터보퀀트 기술을 적용하면 1개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셈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최대 8배로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신기술은 구글의 사내 연구 부서인 구글리서치가 개발했다.
데이터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데이터 손상 문제는 2개의 양자 기술이 보완한다. 1차로 다양한 데이터 값을 일정하게 줄이는 ‘극좌표 양자화’(폴라퀸트) 기술을 통해 압축을 한 후, 두 번째 ‘양자화 존슨-린덴스트라우스 변환’(QJL)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 압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는 식이다. 통상 기존의 압축 기술들은 1차 양자화에 그친다.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6세대 ‘HBM4’. 사진=삼성전자
터보퀀트 충격에 흔들린 반도체주
오히려 수요는 ‘우상향’ 전망 우세
구글이 터보퀀트를 공개한 직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 주가는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달 26일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각각 4.71%, 6.23% 하락 마감했다. 마이크론 주가의 경우 7% 가까이 감소했고 샌디스크는 11% 곤두박질쳤다. 더욱이 글로벌 인터넷 보안·콘텐츠전송망(CDN) 기업인 클라우드플레어의 매슈 프린스 최고경영자(CEO)가 터보퀀트를 두고 “구글의 딥시크 모멘트”라고 표현하면서 시장의 불안은 더 커졌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 분위기는 지난해 1월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닮아 있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당시 딥시크는 저사양의 구형 그래픽처리장치(GPU)만으로 미국 오픈AI의 챗GPT와 대등한 능력을 보여주는 염가 AI 모델인 ‘R1’을 내놓으며 매년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들을 놀라게 했다.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된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조(兆) 단위 투자를 불문율로 여겨졌다. 하지만 딥시크는 챗GPT 개발 비용의 10분의 1로 이 같은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깨뜨렸다. 값비싼 장비 없이 훌륭한 AI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실제 딥시크 R1 공개 직후 “더 이상 고가 GPU가 필요 없다”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하면서 글로벌 AI 반도체 1위 기업인 엔비디아 주가는 약 17%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과 달리 AI 반도체 수요는 뚜렷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의 주력 품목인 HBM의 경우 현재 없어서 못 파는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터보퀀트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더 뜨겁게 달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금 부담 완화가 신규 AI 투자를 자극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시 말해 자원 효율이 높아질수록 해당 자원의 전체 소비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제번스의 역설’이 반도체 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번스의 역설은 생산 효율이 높아지면 비용이 낮아지고 그 결과 수요가 오히려 더 폭증한다는 경제 이론을 말한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가 제시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 역시 “AI 운영 비용이 6분의 1수준으로 낮아지면 그동안 도입을 망설이던 기업들이 AI 생태계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는 메모리 수요를 줄이는 것이 아닌 시장 전체를 키우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인수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사진=카이스트
이번 구글의 터보퀀트 연구에 한국인 연구자 한인수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참여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 교수는 터보퀀트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QJL과 폴라퀀트 연구의 공동 연구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10년 카이스트 학사 과정에 입학한 후 2021년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2024년 9월 모교 조교수로 임용됐다. 주요 연구 분야는 AI, 머신러닝, 정보 이론·부호화 등으로, 지난해 7월부터는 구글 리서치 방문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교수는 “AI 모델의 성능이 커질수록 메모리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돼 왔다”면서 “이번 연구는 이 같은 병목을 효과적으로 줄이면서도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선 기자 lee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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