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일부터 26일까지(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위크 2026'에 참가한다고 21일 밝혔다. 삼성전자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도입부에서 다양한 기기와 공간을 아우르는 삼성의 AI 비전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단순한 ‘대화’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실행’의 단계로 진입하면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재편되고 있다. 단순히 명령에 답하는 ‘생성형 AI(1.0)’를 지나, 스스로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에이전트 AI(2.0)’, 그리고 로봇·자율주행 등 물리적 실체와 결합하는 ‘피지컬 AI(3.0)’ 시대가 본격화되면서다.
이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단순한 소모품을 넘어 AI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지능 인프라’로 재정의되고 있다. 반도체가 하나의 부품을 넘어, AI의 추론 능력을 고도화(초고대역폭 메모리, HBM4)하고, 물리적 기민함을 부여하며(저전력 고성능 DRAM 메모리, LPDDR6), 방대한 지식을 기억하고(고용량 저장장치, eSSD),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차세대 아키텍처, CXL/PIM)하는 등 ‘AI 지능의 원천’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6세대(1c) LPDDR5X 저전력 D램 기반 차세대 메모리 모듈 규격인 SOCAMM(소캠·서버용 저전력 메모리 모듈)2 192GB 제품을 본격 양산한다고 20일 밝혔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소캠2 192GB 제품. 사진=SK하이닉스
AI 2.0 에이전트 AI 시대, “학습보다 무서운 추론 수요”… 메모리 탑재량 ‘퀀텀 점프’
증권업계에서는 현재를 ‘추론 중심 에이전트 AI’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점의 초입으로 본다. 글로벌 에이전트 AI 시장은 2025년 75억 달러에서 2034년 1990억 달러로 연평균 44%씩 고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내 AI 에이전트 도입 비율 역시 2025년 5%에서 2026년 말 40%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AI가 단순 콘텐츠 생성을 넘어 의사결정과 실행까지 수행하는 구조로 확장되면서 메모리 탑재량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됐다”고 분석했다.
핵심은 ‘학습(Training)’에서 ‘추론(Inference)’으로의 중심축 이동이다. 2026년에는 추론용 서버가 전체 AI 인프라 수요의 절반(50%)을 넘어설 전망이다. 학습 단계에서는 데이터를 밀어 넣는 속도가 중요하지만, 추론 단계에서는 AI가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정보를 동시에 기억하며 판단하느냐가 핵심이다.
에이전트 AI는 목표 달성을 위해 추론·행동·수정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연산을 감당하기 위해, 서버용 DRAM과 기업용 SSD(eSSD) 수요가 구조적 폭증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DRAM은 추론 중심 AI가 실시간으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지능의 작동 범위'을 넓혀주고, eSSD는 AI가 참고할 수 있는 거대한 '지식 도서관'을 구축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AI가 고도화될수록 다뤄야 할 '컨텍스트 윈도우’, 즉 AI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정보량이 확대된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서버당 탑재되는 DRAM 용량은 기존 일반 서버 대비 4~8배 이상 요구되고 있다. 이는 곧 서버 DRAM 시장의 구조적인 수요 확대로 이어진다.
나아가 AI가 엉뚱한 대답을 하는 '환각 현상'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은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기술을 필수로 도입하고 있다. 이는 AI가 내부 문서를 실시간으로 검색하여 답변하는 방식이다. AI 에이전트가 RAG 기술을 활용해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기업 내의 문서, 로그, 매뉴얼 등 방대한 데이터를 즉시 읽어와야 한다. 기존의 HDD(하드디스크)로는 이 속도를 맞출 수 없으며, 읽기 성능이 압도적인 고용량 eSSD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엔비디아와 같은 빅테크들은 2027년까지 AI 인프라 구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NAND(SSD의 원재료) 수요가 75~100EB(엑사바이트)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25년 전체 수요의 10%에 육박하는 규모다.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IT쇼 2026를 찾은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 특임교수가 전시된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I 3.0 피지컬 AI 시대, IQ보다 중요한 ‘신경계 속도’… 대역폭이 로봇 생존 가른다
2027년 이후 펼쳐질 ‘피지컬 AI’ 시대의 본격화는 메모리 수요의 질과 양을 동시에 폭발시킬 기폭제다.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같은 피지컬 AI는 보안 문제를 비롯해 시각, 촉각 등 방대한 센서 데이터를 ‘지연(Latency) 없이’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 때문에 클라우드를 거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On-device)’ 환경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기기 내부의 한정된 자원으로 거대 모델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초저전력이면서도 초고대역폭을 갖춘 메모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LPDDR5X, LPDDR6 등 ‘저전력 고성능 DRAM 메모리 반도체’가 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휴머노이드 1대당 DRAM 탑재량은 기존 스마트폰의 4~8배 수준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LPDDR 시장은 삼성전자(시장 점유율 약 36.6%), SK하이닉스(약 32.9%),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Micron, 약 22.9%)이 ‘3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점유율은 약 70% 수준으로 사실상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삼성전자는 P4, P5 신규 팹을 연내에 조기 가동해 초미세 공정 기반의 원가 경쟁력과 공급량 우위로 점유율 격차를 벌리려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의 클린룸을 기존 대비 3개월 단축한 2027년 2월부터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공급 물량 확대와 고성능 제품 비중 강화를 통한 '수익성 우위'의 프리미엄 전략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 확대를 위해 평택캠퍼스에 50조 원을 투입해 건설해온 4공장(P4)을 연내 풀가동한다. 회사는 당초 계획보다 6개월가량 P4의 완전 가동을 앞당기려 ‘임시 사용 승인’을 활용할 계획이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삼성전자
나아가 피지컬 AI 시대에는 HBM4, HBM4E, 고용량 SSD 등 고대역폭 메모리 수요도 동반 확대되며, 메모리 산업이 ‘질적 고도화와 양적 성장’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 들어설 전망이다. 피지컬 AI의 성능은 메모리 대역폭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그 중요성이 심화되고 있다.
피지컬 AI는 인간의 감각과 유사한 카메라(시각), 압력 센서(촉각), 라이다(위치) 등 수많은 센서로부터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인다. 고해상도 카메라와 정밀 센서가 초당 쏟아내는 수십 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를 연산 장치(NPU/GPU)로 즉시 옮기지 못하면 ‘병목 현상’(전체 시스템의 성능이나 처리 속도가 특정 구성 요소의 낮은 성능으로 인해 제한을 받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텍스트 기반의 생성형 AI는 답변이 1~2초 늦어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이 균형을 잡거나 자율주행차가 장애물을 피하는 데는 밀리초(ms) 단위의 판단이 필요하다. 메모리 대역폭이 좁아 데이터 전송에 지연이 생기면 로봇은 물리적 사고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피지컬 AI 시대에서 대역폭은 성능을 넘어 로봇의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지표다.
인간의 뇌는 연산과 메모리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뇌세포인 뉴런과 그 연결 고리인 시냅스가 저장 장치이자 연산 장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반면, 현재 대부분의 AI(컴퓨터)는 연산을 담당하는 프로세서(GPU/NPU)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DRAM/HBM)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아무리 똑똑한 뇌를 가졌어도 정보가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고도화된 지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데이터 전송을 결정짓는 대역폭이 AI의 지능을 판가름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현재 프로세서의 연산 속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읽어오는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메모리 벽(Memory Wall)’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연산 장치가 데이터를 기다리며 노는 시간을 줄이려면 고속도로의 차선을 수천 개로 늘린 것과 같은 고대역폭 메모리가 필요하다.
SK하이닉스의 12단 HBM4와 16단 HBM3E 모형. 사진=SK하이닉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4(6세대)와 LPDDR6 등 초고대역폭 제품 개발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벽’을 허물기 위해서다. 특히 공정 난이도가 극도로 높은 차세대 HBM4 등에 사활을 거는 양대 기업의 기술 리더십은 이들을 AI 혁명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는 구조적 근거가 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개발 중인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지향점은 결국 ‘인간의 뇌’를 닮는 것이다. PIM(Processor In Memory) 기술은 인간의 뇌처럼 메모리 내부에서 직접 연산을 처리해 데이터를 외부로 퍼 나르는 병목 현상을 원천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또한 CXL(Compute Express Link)은 메모리 용량의 물리적 한계를 허물고 장치 간 자원을 유연하게 공유하는 기술로, 이를 통해 거대 AI 모델 구동에 필요한 인프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기술 초격차를 확보하려는 비전을 담고 있다.
“공급자 우위 시장”… LTA와 듀얼 마켓의 확산
이처럼 AI 시대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심화되며 비즈니스 구조의 근본적 변화도 감지된다. AI 2.0과 3.0으로 갈수록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화될 것을 우려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메모리 공급 안정성을 위해 3~5년 단위의 장기공급계약(LTA) 체결에 매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수금, 위약금, 가격 밴드 설정 등 구속력 있는 계약 조건이 도입되며 메모리 산업은 점차 ‘수주형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과거 가격에 따라 수익이 요동치던 메모리 산업이 TSMC처럼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수주형 비즈니스’로 변모했음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체질 개선이 두 기업의 기업 가치를 새로 평가해야 하는 결정적 근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시장을 ‘장기공급계약 시장’과 ‘시황 노출 시장’으로 분리된 “듀얼 마켓(Dual market) 구조”로 규정했다. 장기공급계약 시장은 안정적인 가격 밴드 내에서 수익 안정성을 확보하고, 시황 노출 시장에서는 한계 물량(Marginal volume)에 의해 가격이 변동하며 추가 이익을 노리는 전략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를 기반으로 메모리 기업들이 사이클 노출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한 연구원은 평가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DRAM 가격 하락기에도 HBM 중심 계약 구조로 이익을 방어하며 이 모델의 실효성을 입증했다. 2024년 4분기 DRAM 가격이 3% 하락하고 2025년 1분기 7% 추가 하락했음에도 DRAM 영업이익은 각각 24% 증가, 보합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HBM 장기공급계약 기반의 수익 안정성이 실제로 작동한 사례로 평가된다.
향후 HBM의 가격 인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반 DRAM 가격 상승으로 HBM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상황에서 공정 난이도 증가와 주문형 반도체(ASIC) 수요 확대를 고려하면 전 제품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메모리 산업이 고수익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삼전닉스 2027년 합산 영업이익 840조원 기대
실적 측면에서도 구조적 성장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다. KB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6년 335조원, 2027년 488조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며, SK하이닉스 역시 2026년 251조원, 2027년 358조원 수준의 성장이 기대된다.
현재 시장은 수요 측면에서 AI 데이터센터가 전체 출하의 60~70%를 흡수하며 구조적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AI 서버 출하 증가율은 28%로 전체 서버 시장 성장률(13%)을 크게 웃돌고 있으며, 재고는 1~2주 수준의 역사적 저점에 위치해 있다. AI의 구조적 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1분기를 저점으로 분기별 실적 개선세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김동원 센터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1분기 실적을 저점으로 본격적인 이익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며, “주가의 단기 조정 국면을 비중 확대 기회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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