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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용준의 ‘맛대가리’] 평양냉면, 진한 육향과 슴슴함이라는 형용모순

무더운 여름이면 어김없이 평양냉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본래 평양냉면은 겨울 음식이다. 가을에 추수한 메밀을 먹을 것 없던 겨울에 빻아 면을 내고, 살얼음 띄운 동치미 국물에 꿩 육수를 섞어 먹던 음식이었다. 요즘처럼 소고기 육수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였다.

2012년 ‘먹거리X파일’ 대중에 붐

맛평가는 그시절 범주서 맴돌아

익숙해지면 맛의 결 읽을수 있어

허황된 말로 내 입맛 재단 말아야

평양냉면. /조용준 제공

조용준 맛칼럼니스트

무더운 여름이면 어김없이 평양냉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본래 평양냉면은 겨울 음식이다. 가을에 추수한 메밀을 먹을 것 없던 겨울에 빻아 면을 내고, 살얼음 띄운 동치미 국물에 꿩 육수를 섞어 먹던 음식이었다. 요즘처럼 소고기 육수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였다. 조선시대에는 금우령(禁牛令) 때문에 소를 잡을 수 없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는 이들은 드물었다. 어릴 적부터 그 맛에 익숙했던 실향민의 후손들 정도가 즐기는 음식이었다. 전통 평양냉면 집들이 주로 을지로나 장충동 일대에 몰려 있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집단 거주지였던 장충동 일대는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남았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북 피란민들이 터를 잡으면서 자연스레 실향민 촌과 이북 음식 거점이 되었다.

평양냉면이 대중적 붐을 일으킨 계기는 2012년 TV 프로그램 ‘먹거리 X파일’이었다. 제작진은 인공조미료(MSG) 없는 육수를 찾겠다며 전국의 유명 냉면집을 훑었다. 결국 양의 차이일뿐 모든 집이 냉면 육수에 인공조미료를 쓰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송은 평양냉면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때 누군가가 평양냉면을 ‘진한 육향’과 ‘슴슴함’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거의 모든 평양냉면 평가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이 범주 안에서만 맴돌았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맛을 느낀다. 그런데 유독 평양냉면 앞에서만큼은 자기만의 언어가 사라졌다.

그런데 차가운 냉면 육수에서 진한 육향을 느낄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강남에서 쌀국숫집을 운영하던 한 자영업자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조미료 없이 고기만으로 진한 육수를 내기 위해 수없이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진한 육향을 내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기가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뜨거운 국물이라 분자 운동이 활발한 쌀국수조차 이런데, 차갑게 식은 냉면 육수에서 진한 육향이 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고기 다시다로 육수를 만들고 이를 식히면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고깃국물에 극도로 민감해 이를 신체 독소로 인식하여 과민 반응하는 이들이다. 또한, 태아 보호를 위해 본능적으로 미세 성분을 감지하는 임신부처럼 특수한 경우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미각이 아니다. 생존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다.

슴슴함 역시 마찬가지다. 슴슴함은 맛이 싱겁다는 의미인 ‘심심함’의 방언이다. 처음 평양냉면을 접하면 육수를 밍밍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평양냉면을 제대로 즐기는 이들이 직관적으로 감지하는 육수의 본질은 슴슴함이 아닌 ‘염도’다. 평양냉면에 익숙해지면 어느 집 육수가 더 짜고 덜 짠지에 관한 판단이 가능하다. 이런 기준이 생기면 평양냉면의 결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진한 육향과 슴슴함은 평양냉면 한 그릇 안에서 공존할 수 없는 형용모순이다. 진한 육향이 나는데 맛이 싱겁다는 뜻이니까. 유명 냉면집 중에서는 그나마 ‘우래옥’의 육수가 진한 육향이라는 표현에 가장 가까운 편이다.

누군가 만든 허황된 수식어를 들먹이며 평양냉면을 아는 척하는 것은 고상해 보이고 싶어 하는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남에게 빌린 근사한 표현으로 내 입맛을 재단하는 것만큼 멋없는 일도 없다. 맛을 느끼고 평가하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세계다.

/조용준 맛칼럼니스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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