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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조선규의 문제 핵심] ai시대에 진보 보수를 넘어, 책임의 정치로 가는...

한국 정치를 지탱하던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틀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 위에서 이 구분은 명확했다.

[조선규의 문제 핵심] ai시대에 진보 보수를 넘어, 책임의 정치로 가는...

조선규의 문제 핵심. 조선규 편집위원

[뉴스클레임]

한국 정치를 지탱하던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틀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 위에서 이 구분은 명확했다.

시민들은 복지와 성장, 안보와 개혁의 문제를 이 틀을 통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장은 더 이상 보수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분배 역시 진보만의 고유한 문법으로 남아 있지 않다.

기업은 단지 세율뿐 아니라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기술 혁신 역량을 입체적으로 살피고, 시민들은 사안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복합적 존재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정보 유통 방법의 급변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AI 시대는 단순히 기술이 고도화된 시대를 넘어 공론장의 질서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과거의 안정된 중개기관 대신 유튜브, 숏폼,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이 정치적 인식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환경에서는 느리고 복합적인 설명보다 빠르고 자극적인 메시지가 훨씬 강한 파급력을 가진다. 분석보다 분노가, 사실보다 감정이 더 빨리 확산되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진영 논리보다는 '합리와 혐오'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합리란 단지 차분한 태도를 넘어 사실과 근거를 존중하는 의지다.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맞춰 사실을 선택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한 적개심으로 환원하지 않는 태도다. 또한 반대편 시민을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설득하고 경쟁해야 할 동료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혐오는 사회적 불안을 해결 가능한 문제로 다루기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감으로 치환하는 통치 기술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하나의 손쉬운 적에게 투사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혐오의 정치는 잠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는 있으나, 사회를 운영하는 능력과는 무관하다. 혐오로는 정교한 예산을 설계할 수 없고, 저출생이나 기술 전환 같은 구조적 난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혐오는 결국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시킬 뿐이다.

알고리즘이 분노를 증폭시키는 AI 시대의 정치는 이념의 상징보다 통치의 역량으로 엄격히 평가받아야 한다.

누가 더 큰 목소리로 지지층을 열광시키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복잡한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의 경로를 설계할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누가 더 강하게 분노를 표출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책임 있게 권력을 사용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 핵심이다. 진보든 보수든 스스로의 도덕적 정당성에만 취해 반대 의견을 악마화한다면 그것은 혐오의 정치와 다를 바 없다.

한국 사회는 지금 저성장, 양극화, 기후 위기, 노동 질서의 급변이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 서 있다. 과거의 전선만 반복해서는 현재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결코 풀 수 없다. 시민이 겪는 불안은 실재하며, 삶의 조건은 이전보다 훨씬 세분화됐다.

정치가 과거의 정체성 경쟁에서 벗어나 미래의 문제 해결 경쟁으로 단호히 넘어가야 하는 이유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선다는 것은 이념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이념의 간판만으로는 더 이상 사회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공적 이성이 공동체를 좀먹는 혐오의 습성을 이겨낼 때, 정치는 비로소 시민의 불안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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